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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 아이만 공부가 안 되는 걸까?

짧은 패턴 반복이 결국 공부의 힘이다.

by Who am I

우리 집의 흔한 풍경


#1. 집에 돌아와 저녁을 먹이고 아이들이 비교적 일과에서 자유로워진 시간. 나는 둘째 아이의 상태를

확인한다. 오늘 해야 할 학습 패드를 시키기 위해서다. 방금 전 안방에 패드를 들고 들어간 둘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아이는 이불 속에 들어가 숨어있다. 내가 부르자 이불속에서 나오며 말한다.

"이불속에서 학습패드 보고 있었다고~" 나는 잔소리를 다시 시작한다. "밖에 나와서 앉아서 공부해!"

학습 관리 선생님에게는 문자가 날아온다. 학습 참가율이 100퍼센트이긴 한데 안 읽고 넘긴 문제가

38개나 된다는 말이다. 오답률도 덤으로 말해준다. 나는 문자를 읽고 돌아와 내 일을 마무리한다.

고쳐지지 않는 문제의 고리에 갇혀버린 느낌.


#2. 수학학원을 마치고 돌아오는 5학년 큰 딸을 차에 태워서 집에 데리고 들어오면서 개념노트를

제안했다. 엄마는 솔직히 네가 학교나 학원에서 돌아와서 그날 배운 것만 정리해도 시험 실수가

줄어들 거 같다고 말해본다. 그것만 잘해도 학원비를 버는 거라고 말하지만, 딸은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딸의 머릿속에는 집에 돌아가 밥을 먹고 친구와 약속되어 있는 게임에

대한 기대뿐이다. 딸은 "솔직하게 말해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정리라고. 난 그걸 할 자신이

없어"라고 말을 닫는다. 집에 돌아온 아이가 옷을 갈아입고 간단히 씻은 다음 하는 것은

방에 들어가 친구와 가상공간에서 만나서 노는 것.




가끔은 항변하고 싶어진다. 어쩌면 내 인생은, 아이를 낳고 난 후 나의 인생은 모두 아이 둘을 중심으로

맞춰져 버렸다. 아이가 다니는 기관, 학교, 학원 스케줄이 곧 나의 일과의 핵심이 되어버린지

오래다. 직장을 다닌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내가 설사 돈을 엄청나게 버는 워킹맘이라고 해도 나는

자녀 교육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내가 돈을 번다해도 그건 아이의 학원비로 들어가는

것이지, 내 입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이사를 가도 학군을 따져야 하고 아파트를 봐도 아이방의 크기부터

생각해야 한다. 공부방, 책상, 가구, 인테리어 모든 것이 아이를 중심으로 맞춰진다.

그런데 정작 공부를 하는 본인들은 태도가 저렇다고? 나는 불만이 터져 나온다. 마치 남을 위해 공부하는

것처럼 의무적으로 학교에 다니고 학원에 다닌다고? 그렇게 20년을 투자하는데 결국은 '공부가 내 체질이 아니고, 엄마의 강요에 의해한 것이며 나는 결국 내 길을 갈 거야'라는 결말을 본다고?

나는 왠지 부당한 처지에 벗어날 수 없는 고리에 갇혀 이 길을 가고 있는 걸까? 스스로 생각에 빠지고 만다.


누군가는 나의 이런 이야기를 흔한 넋두리라고 여길지 모르겠다. 그런 당신은 어릴 때 부모님 말씀에

따라 공부만 했던, 단 한 번도 어겨본 적이 없는 그런 사람이었냐고? 당신은 부모님은 당신 같은 생각을

안 했겠냐고? 맞다. 나는 그 말을 인정한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그 고리에 갇혀 사는 대신 벗어나는

방법을 찾는 것도 필요하다고. 반박 시 당신의 모든 의견이 맞다. 내가 지금 여기서 이야기하는 것은

내가 생각하는 의견일 뿐이다.


한때 현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 교육에 의문을 가진 적이 있다. '왜 우리 집 아이는 1년이나 학교에

결석도 가급적 안 시키고 잘 가는데, 구구단도 못 외우고 시계도 못 보는가? 학교 교육이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첫째에 이어 둘째를 학교에 보낸 학부모로서, 이 질문은 결코 풀릴 수 없는 해답 같은

것이었다. 분명 아이는 학교에서 수업을 받고 돌아와 집에 와서 패드로 학습과정을 복습한다.

그러나 아이의 실력은 생각만큼 좋아지지 않는, 그 미스터리는 무엇 때문일까? 어떻게 이 질문에서

나는 빠져나올 수 있을까


혹은 좀 더 예전으로 가서, 나 역시 그렇게 오랜 시간 비싼 돈을 내고 학습에 투자했는데 지금 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으로 돌아가본다.


교육이란 정말로 효용이 없는 것일까?




나는 문득 이 이 질문에 대한 아주 간단한 답을 생각해 냈다. 아이들이 그렇게 오랜 시간 비용을

들여 힘든 교육을 받고도 막상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이유 말이다. 그것은 학교교육의

시스템 적인 문제, 여러 가지 문제를 다 떠나, 단 한 가지 이유였다. 그것은 학교나 학원이

학습을 동기화하고 수업을 통해 지도하는 역할을 할 뿐, 배운 내용을 반복, 강화, 연습시켜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건 아주 단순하지만 명백한 진실이다. 우리가 배운 지식의 대부분은 학습이 끝난 후 몇 시간

내에 다시 반복 강화 시켜주지 않으면 그냥 사라져 버린다. 그것은 마치 밭에 씨앗을

통째로 들어 뿌리는 것과 비슷하다. 일부는 땅에 떨어져 싹이 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고작 한 두 개 정도만 남을 뿐 대부분은 공중에서 사라진다. 지식도 마찬가지다.


나 역시 단순히 배운 내용을 다시 정리하는 그 작업만 했어도 내 인생의 시간을 낭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이 부분을 아주 귀찮아한다. 나도 그렇다. 보통은 수업에 참여하고

시험을 보는 노력에 비해 연습은 아주 적은 정도로 투자한다. 우리의 머리는 한때 자극받았지만.

딱 거기까지만.

공부로 받은 스트레스는 그저 없어져야 할 대상일 뿐. 본인이 왜 스트레스받았는지는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리고 그 패턴을 계속 반복한다.


예전의 학교는 달랐냐고? 예전의 학교는 학생들에게 원하는 정도가 그렇게 많지 않았다.

사회가 교육을 원하는 부분과 목적이 그렇게 크지 않아서 교육과정도 단순했다. 그렇기

때문에 반복적이고 지루했지만 오히려 그것들이 머릿속에 많이 남았다. 단순하고 지루한

암기라도 그것만 하면 되니까 아이들은 그렇게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창의적이거나

서술형으로 글을 쓰지 않아도 객관식 문제를 풀 수 있었다. 학교는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면이 있어서 선생님의 역할도 단순했다. 사회는 학교는 학교일 뿐 지금처럼 많은 것

을 다양하게 가르치라고 요구하지도 않고, 부모들은 그냥 학교에서 알아서 가르치려니

하고 관심이 없었다. 그리고 아주 단순하게 학교에 있는 수업시간을 길게 늘여 초등학생도

6교시를 마치면 오후 늦은 시간이고, 토요일까지도 학교에 가니 학원은 고작 1~2 개정도

다닐 수 있는 시간만 주어졌다. 그렇다고 그때가 마냥 옳았다는 것은 아니고 그때는

그 당시의 단순한 시스템이 먹혔다는 것뿐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우리가 아는 기본적인 학습의 원리에 대해서 말이다. 아까 이야기

했던 두뇌라는 밭에 씨앗을 뿌리는 심정으로 말아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나는 어쨌든 학습자가 교육의 중심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마다

어느 정도로 지식을 받아들일 수 있는지 차이가 있고, 사실 교육이 그것을 바꿀 수는 없다.

그리고 학습자가 가진 재능에 따라 언어나 수학 음악등 이해 분야가 확실하게 달라지는

부분도 존재하기 때문에 학습자의 나이 학습의 양과 방법 속도도 일방적으로 정할 수 없다.

그러나 일반적인 관점에서 말하자면. 적어도 공부가 어렵고 잘 안 되는 관점에서 설명하자면


나는 1회 학습양을 줄이고 대신 반복과 강화를 길게 오랫동안 반복하는 패턴을 추천하고 싶다.

여기엔 포기하지 않는다는 조건이 반드시 필요하다.

외국어를 예를 들자, 초급자에게 외국어로 된 책 한 페이지를 주고 모두 외우라는 것은

굉장히 힘들고 비효율적인 방법이다. 하지만 한 줄의 문장을 주고 해설을 한 뒤에

3번 정도 반복하는 것은 그렇게 어렵지 않다. 그렇게 전체적인 학습량을 줄이고

자극과 반복을 같이하는 패턴을 반복한다.


학습 동기화- 의미 해설 학습- 반복 훈련-쉼


공부를 모두 마치고 한꺼번에 복습하는 건

정말인지 너무나 하기 싫고 귀찮은 작업이라 오히려 미루게 된다. 그렇기 때문에

짧은 공부시간에 학습과 연습을 같이 넣어야 한다. 처음엔 학습의 양이 1이면

반복은 3배 정도로 한다.


양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짧은 공부와 휴식 짧은 공부와 휴식을 반복하면서 꾸준함을

기르는 게 더 중요하다. 나이가 어릴수록 옆에서 지켜봐야 하고

집중력이 짧을수록 이 패턴 반복이 더 중요하다.

어쨌든 우리가 원하는 목표는 하루에 한 장의 외국어 책을 공부하고 잊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한 달에 걸쳐 공부를 해도 머릿속에 남는 그런 방식이 아니겠는가?

좀 더 시간이 걸리고, 훈련과 패턴에 적응하는 게 힘들 뿐 방식은 달라도 결국

가는 길은 같다.


내가 패턴으로 공부하고, 자신을 조금씩 강화하는 방법이 다른 방법보다 훨씬

효율적이라고 믿는 또 다른 이유는 지금 내가 있는 레벨의 학습이 다음 단계

학습의 발판이 된다는 점 때문이다. 레벨 1에서 기본이 되어야 레벨 2까지

갈 수 있고 확장과 응용을 할 수 있다. 레벨 1에서 강화되지 않는 부분은

결국 다시 돌아와서 고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단언컨대, 다시 강조해서 말하지만 이 모든 것은 개인의 몫이란 것이다.


엄마나 교육자 보조자 멘토 모든 사람들은 도와주는 역할일 뿐, 결국 공부는 스스로 하는 것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본인이 직접 배우려고 노력해서 뭔가를 해낼 때

얼마나 많은 것이 바뀌는지 느끼고 체험해야만 한다.


학습환경이 공부의 모든 것인가?


부가적으로 학습 환경에 대한 질문이 존재한다. 대부분의 엄마들이 거기에 몰두해 있고

그렇게 못해준 것에 대한 책임을 본인 스스로 지려고 하니까. 그러나 나는 기본적으로

학습원리에 따른 반복이 1번이고 학습환경은 부가적인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장인은 장비 탓을 안 한다는 말이 있듯, 공부할 마음이 없어서 문제이지

공부를 하려는 아이가 무슨 책상에 앉는지를 그렇게 따지는 가?


우리가 어떤 환경에서 어떤 방식으로 공부를

해야 더 효율적인지는 솔직히 하나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꼭 책상 앞에 앉아서 정자세로

책을 읽어야 머릿속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고 말이다. 우리 집 큰 아이는 소파나 침대에

기대서 편한 자세로 수학을 푼다. 그렇게라도 본인이 풀겠다고 마음먹는 것이 가상해서

그리고 본인이 그 자세가 집중이 더 잘된다고 하니 더 이상 잔소리를 하지 않았다. 솔직히

아이는 수학자체를 싫어하지는 않고 생각보다 꼼꼼하게 해내니 말이다.


공부의 내용에 따라 반드시 영상시청이나 쓰기가 필요하지 않다면, 외국어를 서서 읽고 말하고 반복하는

것이 그렇게 나쁜 방법인가?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책상 앞에서 하는 공부가 좋다는 것은, 글씨를 쓸 때 바로 앉은 자세가 제일 적합한

면이 있다는 이유다. 더욱이 내가 쓰는 필기구 노트 재료들이 항상 제자리에 있고 굳이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언제라도 공부를 시작하기 좋은 상태다. 글씨와

숫자를 딱 맞추어 깨끗이 쓰는 것 자체가 공부의 시작이니 말이다. 태블릿이나 PC

스마트 폰을 보조도구로 써서 도움을 받을 수는 있지만, 역으로 집중이 흐트러질

수 있는 단점도 생각해야 한다. 인공지능은 분명 좋은 학습 멘토이고 학습

스케줄을 짜거나 쉬는 시간 알람 설정도 도움이 된다.


성공한 사례와 실패한 사례


덧붙여, 사실 이 패턴 반복 강화를 통해 공부해 온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다. 나는 지금도 이 방법이

나에게 먹힌다는 것이 놀랍다. 나는 초등학교 때 학습지 한 종류로 초등부터 고등 영어 전 과정을 마스터했다.

나에게는 영어공부가 루틴이 있었다. 그 방법으로 쓰기와 읽기는 상당 부분 효과를 얻었다.

문법이나 쓰기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영어 단어는 어려웠지만 노력으로 극복했다.

그러나 제일 어려웠던 부분은 말하기인데, 그건 내 시대가 말하기에 대해 거의 가르치지 않는 시대였다는 점, 그리고 외국인과 말하기에 소극적인 태도, 제2 외국어로서의 한계가 존재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인공지능 덕분에 해결할 수 있는 길이 생겼다. 내 목표는 말하기를 정복하는 것, 그리고 일본어라는 새로운

언어를 배움으로 인해 외국어를 배우는 새로운 재미를 찾는 것이다.


실패한 사례도 명백하게 존재한다. 나의 가장 큰 실패는 (영어만 놓고 보자면 ) 누군가가 추천한 방식

대로 영어 방송을 계속 틀어놓고 생활하는 것이었다. 나는 이 방식에 대한 실패가 가장 뼈아픈데 왜냐면

이것은 효과는 둘째치고 스스로에게 공부에 대한 강박과 스트레스만 남겼다는 것 때문이다. 집중하지

않은 상태에서 반복되는 영어는 일종의 소음이나 다름없었다. 만약 내가 그날 공부한 내용이나 아는

내용에 대한 내용,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거나 한 부분이었으면 그나마 조금이라도 기억에 남아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학습받지 않은 부분에 대한 길고 빠른 영어는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다.

앞선 사례와 다르게 학습 없는 의미 없는 반복이라는 나쁜 경우이다.

경우 1이 수업만 듣고 반복이 없는 과정이라면 경우 2는 수업 없이 반복 훈련만 경우인 것.

둘 다 학습효과가 의미 없기는 마찬가지지만 경우 2가 1번 보다 더 나쁜 것은 지루함과 강박

스트레스라는 부작용만 남겼다는 점에서가 아닐까 싶다.

나는 심지어 밤에도 영어로 된 내용을 들으며 잠에 든 적도 있는데 그 노력에 비해 아무런

효과도 보지 못했다. 어떤 경우에는 내용을 모르고 듣고 따라 읽기만 해서 발음에 익숙해지라는

말도 안 되는 방법을 하다가 실패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의미 없는 방식으로 어린 유아들을 영어에 노출시키라는 방식을 누군가 계속 이야기

한다는 것이고, 이게 어디선가 쓰인다는 것. 그러나 생각보다 그 결과는 정말 끔찍하다.

인간은 나이를 떠나 자기에게 의미 없는 것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는다. 타고나면서부터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차단한 기능이 있는 것처럼. 듣기가 지겨워지도록 만든다

어쩌면 공부에 대한 내 잔소리도 이랬던 것은 아닐까?

쓰기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같은 문장을 의미를 잘 모르고 반복해서 쓰는 것. 그것 역시

공부에 대한 흥미를 뚝 떨어뜨린다.

나의 경우 비싸게 신청한 인강을 몰아서 듣는 것도 결국 돈만 낭비하고 끝났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몇 년 동안 지속되어 온 고민은 이 아이가 기초적인 학습이라도 해낼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었다. 내 딸이 자신감 있게 이 교육과정에 정착할 수 있을까?라는

힘든 질문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초기 학습에 대한 진도가 도무지 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배우고 학습하는 과정에 대한

흥미도나 참여도가 높지 않다는 점 때문이었다. 나는 쉽고 짧은 지식이라도 계속해서

아이에게 가르쳐주고 싶었고 어떤 계기에서든 동기화시키고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 말을 하면서 다시 한번 느끼는 것이지만

'배우고자 하는 의지는 아이가 여는 것이지 부모가 여는 것이 아니다'라는 생각이 다시 든다.

그리고 조금은 내려놓게 된다.

어쩌면 내가 아이의 속도에 맞추지 못하고 내 속도에만 너무 몰두했는지 모르겠다.

나는 어쨌든 부모이지 지도에 경험 있는 교사는 아니니까 말이다.


그리고 정말 슬픈 것은 아이가 엄마와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학습에

대해 이야기 하니 어쩔 수 없이 도망간다는 것. 아이는 단지 그냥 엄마와 편하게 쉬고

싶을 뿐인데 집에 와서 뭔가 다시 공부를 해야 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는 것뿐이다. 그것이

너무 상처가 되지 않길 바랄 뿐


나는 내가 태어난 대한민국의 교육적 상황을 거부할 수 없다. 내가 그렇게 자라고 나 역시

아이들을 같은 방식으로 키운다. 그건 정말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환경 탓만 하면서 인생을 낭비하는 건 정말 어리석다고 믿는다. 호랑이 굴도

정신만 차리만 산다는데 여기서 정신을 차리는 건 대체 누구인가. 그건 호랑이 굴에 들어간

그 사람 자체가 아닌가. 그 사람에게 이런저런 고민 따위가 필요한가?


글을 정리하며


집중력이 아주 짧은 사람이 있다. 체력이 남들보다 약한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타고난 약점이라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그것은 행동과 휴식을 반복해서 진행하는 것이다.

한꺼번에 무엇을 해야 한다고 믿지 않으면 된다. 포기하지 않는다고 믿으면 된다. 공부도

운동도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쉬고 걷고 쉬고 걷고를 계속하면 된다. 그렇게 완전히 주저

앉지 않으면 언젠가 다시 일어나게 되어있다. 길게 쉬는 건 밤에 자는 시간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분명 남들처럼 쉬고 즐거운 날도 분명히 올 것이다. 그러면 그때 즐기면 된다.

그러나 그전까지는 거북이처럼 계속해서 가야 한다. 본인이 목표로 한 그 길을.

그 길이 의미 없다고 하지 말 길. 우리는 모두 그렇게 성장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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