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란 원래 반복적이고 단순한 성장이다
몇 년 전부터 뜨개질을 하고 있다. 물론 잘하는 건 아니다. 타고난 똥손인지
작품이 제대로 끝난 적이 별로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계속하고 싶어 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이유는 패턴이다. 같은 패턴으로 몇 단까지 가다가 다음 단에서는
바꿔서 또 계속 가는 일. 단순 작업 같지만 생각보다 잘 헷갈린다. 매번 틀린다.
속으로 나는 컴퓨터나 기계보다도 못한 것인가. 스스로를 자책하는 생각마저
종종 든다. 그러나 이 단순 작업은 패턴을 지키는 것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라
작업할 때는 아무런 생각이 안 들어서 좋을 때가 있다. 도무지 해결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세상 일을 보다 보면 이런 단순한 패턴의 반복이 주는 즐거움에 더 빠지고
싶어진다. 어떻게 보면 코딩 같기도 하고 같은 모티브를 가지고 변형되는 노래
같기도 하다. 세상 모든 것은 복잡하지만 공통된 패턴이 서로 만나고 겹쳐서
이루어진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불면증..
지난날부터 나를 괴롭게 한 것이지만, 나이가 들면서 더 힘들게 하는 게
지나치게 피곤할 때 잠을 못 자는 것이다. 잠만 푹 잘 수 있다면 노벨상도
부럽지 않다. 반대로 노벨문학상을 탄다고 해도 20년간 불면증에 시달려야 한다면
받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는 그렇게 잠에 목숨을 거는 사람이다.
그런데 여행을 가도, 자는 장소가 바뀌어도 쉽게 잠을 잘 수가 없다.
너무 바쁜 날도 너무 활동이 없는 날도, 너무 즐거운 날도
너무 슬픈 날도 잠이 안 온다. 그날 하루가 좋고 나쁘고 관계없이 패턴이 깨지는
날은 잠을 잘 수가 없다. 잠을 못 자면 그다음 날은 집중력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감기 같은 병도 잘 걸린다. 어떨 때는 사소한 일에 짜증이 나고, 집에 돌아와
쉬면서 다시 원래의 패턴으로 복귀시켜야 한다. 온갖 좋은 파티와 행복한 모임도
행복하게 여길 수가 없다. 피곤하고 지친 몸으로는.
다행히도 그런 날은 일 년 중에 몇 번, 휴가 중에 몇 번 말고는 일어나지도 않게
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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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네 명의 생활패턴이라는 것이 서로 얽혀있다. 아이들은 나에게 의존해서
밥을 먹고 학교를 가고 생활을 한다. 내가 컨디션이 떨어지면 가족 네 명이
모두 엉켜버린다. 그러니 어쩔 수 없다. 아무리 달려가고 싶은 목표가 있고
벌어야 할 돈이 있고 하고 싶은 공부가 있더라도 최대한 생활패턴을 일관된
방향으로 잡는 수밖에. 그런 자신과 비교해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사는 미디어
속 사람들의 모습은 그냥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 같다. 그렇다고 뭐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안정감을 먹고 자라니까. 나 역시도 안정적인
패턴으로 사는 것이 급하게 늙지 않도록 만드는 방법일 것이라고 믿는다.
장수의 비결이란 것이 뭐 특별한 것인가. 인생 그 자체를 가늘고 길게 오래
천천히 사는 것 그것 아니겠는가.
뇌과학자들은 뇌의 기능 자체를 연구하지만 나는 그보다 중요한 것이 뇌를
쓰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컴퓨터라는 기계가 어떻게 만들어졌느냐를 알면
더 좋겠지만, 그렇지 않고도 우리는 활용 쪽에 무게를 두고 좀 더 기능적으로
좋은 기계를 다룰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우리의 두뇌 시스템이라는 것이
일반적으로 좋고 나쁘다는 것을 떠나 일관된 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기능적인 측면에서만 놓고 봤을 때 두뇌가 명령하는 어떤 행동 중
나쁜 것은 지나치게 중독적이고 반복적인 패턴이나 혹은 지나치게 명령어가
많은 환경 일 것이다. 담배나 술 마약 미디어 중독이 나쁜 것은 그것이 주는
쾌감 때문에 뇌가 지나치게 편중된 방향으로 사고를 이끌어 간다는 점일 것이다.
어딘가에서의 지나친 편중과 지나친 부족으로 인해 두뇌 회로는 엉키기 시작한다.
아마 내 머릿속에서도 지나치게 많은 명령어가 입력되던 날 회로가 엉키면서
오류가 계속 발생했을 것이다. 그런 오류로 가득한 하루는 결국 후회감이라는
감정을 불러일으켜 깊은 숙면을 방해한다. 그렇게 마무리된 날들이 연속되면
정신건강과 몸건강이 나빠질 것이다.
불면증을 치료하고 싶다. 주의 산 만에서 벗어나 그래도 일관되고 안정적으로
생활하고 싶다. 이제는 자신의 생활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시각적으로 바라보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느낀다. 큰 목표도 필요 없다. 반복적인 일상에
몇 가지는 기분전환할 수 있는 활동을 집어넣보기로 한다. 우리는 어차피
이 하루에 모든 것을 다 이루어낸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지 않은가.
그러나 되든 안되든 일단 다이어리에 하루 일과와 목표로 하는 것을 적기라도 한다.
그러면 두뇌는 스스로 계산한다. 어떻게 하면 실행을 할 수 있을지를.
그다음에는 억지로 실행하지 않아도 그냥 자연스럽게 맡겨 놓는 거로.
실행이 안되었다고 자책할 필요도 없다. 그건 내 주변 환경이 그날 안 맞았던
것이니까. 목표를 조금 낮추면 된다. 그래서 다시 패턴화 시키면 언젠가
내 생활로 자리 잡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