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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 am I Apr 07. 2022

미스터리 인생

- 인생에 일어난 몇 가지 우연 아닌 우연들

1. 그 많은 마스크는 누가 다 썼나

 2019년 즈음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 가을 미세먼지가 엄청 심할 때였다.

나는 쇼핑앱에서 뽀로로 kf94 어린이용 마스크를 주문했다. 그런데 수량 미스였다.

같은 마스크를 3배쯤 주문한 나는 후회했다. 이 많은 걸 언제 쓰지..

심지어 6살인 딸아이는 얼굴이 작아서 안 맞는다며 한번 쓰고 거부했다.

게다가 Kf94 마스크의 답답함이란. 이런저런 이유로 마스크 처리를 

못하자 중고 마켓과 맘 카페에 물건을 내놓았다. 하지만 웬일인지 

물건은 한 개도 안 팔렸다. 심지어 드림으로 해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정말 우연하게 다음 해 초 코로나가 터졌다. 마스크 부족으로

약국마다 마스크를 구하는 사람이 줄을 섰다. 

그래도 여전히 딸아이는 뽀로로 KF94는 못쓰겠다 했다.

그렇게 다른 마스크에 밀렸다.


6살이던 아이는 3년이 흘러 9살이 되었다. 3월 신학기에 코로나가 

학급에 퍼졌을 때 나는 저장되어있던 그때 그 마스크를 건넸다.

9살인데 이제 와서 뽀로로 라니. 딸은 처음에는 이런 유치한 캐릭터를 어떻게 쓰냐 물었다

나는 그래도 이 마스크가 줄 조절이 되어서 귀가 제일 안 아프다라고 했다

그리고 한마디 덧붙였다. "누가 뽀로로를 비웃으면? 눈 크게 뜨고

니들이 뽀로로를 알아?" 이렇게 한번 해~"

딸은 일단 알았다 하고 쓰고 나갔다. 

친구들은 딸이 생각한 것만큼 마스크가 뽀로로인지 아닌지 

관심이 없었다. 6살이던 시절 그렇게 커 보이던 마스크도 딸의 얼굴이 커져서 9살에 드디어 맞게 된 것. 

거기다가 그렇게 답답하다 노래 불렀던 그 Kf94도 매일 쓸 만큼 마스크에 적응을

해버린 탓인지, 이제는 별 말을 하지 않는다. 

심지어 이 마스크는 밀착력이 있어 줄넘기나 체육을 해도 벗겨지지도 않는다

그렇게 매일 쓰다 보니 없어질 것 같지 않던 뽀로로 마스크도 

이제는 거의 다 써간다. 처음 살 때 이 많은 걸 이렇게 끝까지 다 쓸 거라고 생각지도 않았었는데..

이걸 다 쓰면 그때는 업그레이드된 포켓몬 마스크를 새로 사줘야겠지. 그전에 끝나면 더 좋고..


 

2. 우연찮게 한 아이를 살렸다.


3년 전쯤, 유모차를 몰고 동네를 휘적휘적 산책한 적이 있었다. 평소에 거기까지는 가지도 않았는데

가다 보니 언덕 너머 다른 동네까지 가게 되었다. 그곳에서 우연히 길을 헤매던 4살 남자아이를 발견했다.

주변을 보니 엄마도 없고 어른도 없었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왔다. 벤치에 앉아있는 할머니들에게

이 아이 보호자냐 했더니, 모르는 아이라 했다. 아이는 휘적휘적 걷다가 대로변으로 가고 있었다. 나는

아이의 손을 잡아서 다시 공원 쪽으로 데리고 올라왔다. 그 순간 저 언덕 너머, 어린이 집 선생님이 헐레벌떡 달려왔다. 산책 왔다가 애가 하나 없어져서 찾고 있었다고. 

거참. 사실 나는 그날 그 길로 갈 생각이 없었는데, 정말 우연히 아이를 살린 일이 지나고 봐도 신기했다.



3. 내 이름과 똑같은 사람을 처음으로 만나다


나는 그때까지 본명과 같은 이름을 가진 사람을 만난 적이 없었다. 엄마가 워낙 이름을 특이하게 지은 탓인가.

하지만 단 한번 아주 의외의 장소에서 만난 적이 있다. 엄마가 어디에 가고 집에 없던 날 아빠가 갑자기

다리의 통증을 호소하셔서 응급실에 오빠와 같이 갔다. 그날 응급실에서 만난 주치의의 명찰에 내 이름과

똑같은 이름이 쓰여있었다. 심지어 남자인데. 우연치고는 너무 재밌었다. 처음으로 만난 동명이인이 응급실의 남자 의사라니. 처방전을 들고 약국에 가서 약을 타는데, 약봉지에 담당의사 이름이 쓰여있는 게 너무 웃겨서 아빠에게 내가 약을 지은 거라 했다.


4. 큰 딸과 작은 딸의 이름이 겹치는 집

학기 초에 유치원에 입학하는데, 둘째 아이와 이름이 가운데 한 글자만 뻬고 겹치는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성도 같고 돌림자도 같았다. 그 아이 엄마가 인사를 해왔다. 이름이 참 비슷하네요.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그 집도 큰 아이가 있고 우리 딸과 나이가 같았다. 반 까지 물었는데, 반은 2반과 3반이었다. 큰 아이의 이름도 한 글자만 빼고 이름이 같았다. 재밌는 점은 그 집은 아들이 하나 더 있다는 건데.

농담 식으로 그 엄마가 말했다. "하나만 더 나았으면 똑같아졌을걸 그랬네요~". 



 5. 7과 관련이 있는 딸

큰 아이는 7월에 태어났다. 그 후 7월이 되면 집에 새로운 일이 주로 생긴다. 7과 관련된 일이 많은지 작년엔 7반이었고, 7층에 살게 되었고 지금은 7반은 아니지만 번호가 7번이다. 가끔 마트에서 행운의 추첨 같은 걸 하면, 아이한테 시킨다. 1등은 아니지만, 선풍기 같은 걸 타오기도 한다. 


이런 우연한 사건들은 "왜?"라고 물어도 답은 없지만, 깨알 같은 재미를 주는 것들이다. 이밖에도 우연 아닌 우연 같은 사건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것 같다. 


 


좀 다른 측면이긴 하지만 코로나가 있기 전인 2019년, 우연히 오디오 채널에서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듣고, 오디오북에서 들었으며, 또 그 책을 도서관에서 찾아서 읽었던 날들이 생각난다. 한 여름의 폭우가

쏟아지던 날 비가 너무 세차게 내려 한동안 도서관에 갇혀서 <페스트>를 읽었다. 그때는 전염병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때였는데, 그다음 해가 되니 문득 그때 그 도서관에서 읽었던 내용들이

다 살아났다. 그때는 몰랐던 것이다. 이 책의 상황이 내가 사는 곳에도 벌어질 줄 말이다.



초등학생(국민학생) 시절, 학습지 선생님은 공부를 잘하면 책을 한 권 씩 상으로 주곤 했다. 그때는 <소피의

세계>라는 어린이용 철학책이 유명세를 타던 시절이었는데, 그 작가가 쓴 좀 덜 유명하지만 무게가 있는

책을 선물로 받게 되었다. 제목은 <카드의 비밀>이었다. 

내용은 사실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스토리도 평범했다. 하지만 아직도 한 구절은 남아있다.

그것은 너와 내가 만난 것, 우리의 인생이 얼마나 우연이란 것이 많은지에 관한 내용이었다.

대략 유럽에서 페스트가 유행하던 시절 살아남은 사람들의 수, 그리고 그 사람들이 살아서

다른 사람과 결혼하고 아이까지 낳을 확률이 얼마나 낮은가에 관한 내용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는 아주 적은 확률로 이 세상에 태어난 존재라고. 더군다나 이 이야기를

전달할 누군가를 만나 것조차도.

어떻게 해석하면 로맨틱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단지 그것 만은 아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것도, 6.25 전쟁 중에 신생아로 태어난 아빠가 죽지 않고 고비를 넘겼기 때문이다.

서른 살이 된 아빠가 엄마를 만난 것도 '우연찮게'였다. 나를 낳은 것도 그랬다. 


가끔은 삶이 얼마나 희귀한 것인가. 또 그 희귀한 것은 또 얼마나 하잘 것 없이 여겨지는 가 생각하곤 한다.

자연의 법칙처럼 합리적이고 냉철하게 맞아떨어진 것들과 달리 주변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왜 이렇게 많은가. 


다시 말하지만, 운은 운일뿐이다. 하지만 운이란 글자를 잘 살펴보면 '움직인다'는 뜻도 포함하는 걸 알게 된다. 즉 운이 많은 사람은 많이 움직이고 좋은 걸 많이 얻어가는 사람이라는 뜻이 아닐까. 탄생도 인연도 그렇게 얻어지는 경험도 모두 의미가 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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