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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 am I Apr 22. 2022

현타가 왔다

사는 게 공부지. 일찍 깨달아서 다행이야

현타가 왔다. 현실 자각 타임이. 그것도 아주 세게 왔다. 그 여파로 며칠 동안 계속 같은 말만 반복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충격이 가시지가 않아서.


얼마 전에 아이 담임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받아쓰기할 때 보니 한글이 부족하니 보충을 더 해야겠다고. 딸은 거부 반응을 보였다. 나머지 공부가 싫은 건, 야근이 싫은 어른이나 다를 바가 없다. 혼자만 남는다니. 그건 자존심의 문제였다.

아이를 어르고 달랬다. 작년에도 비슷한 경우가 있었지만, 수업이 시작되자마자 울어버리는 통에 선생님이

귀가 조치를 했던 일이 있었던 것. 그래도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인 것 같아 결국 수락을 했다. 한글을

배우긴 했지만 통 자신감이 없는 아이였기 때문

문제는 기존 스케줄이었다. 일주일에 두 번 보충수업을 받고 나면 기존에 다니던 예체능 학원과 겹치고, 공부방과도 겹친다. 학원 시간을 미루면 할 수 있겠지만, 이번에는 보충수업 후 학원을 가야 하는데 체력이 한계일 것 같았다. 무엇보다 보충수업 후 터덜터덜 공부방으로 또 가야 하는 아이의 모습이 그려지니 왠지 가혹하게 느껴졌다.


그러다가 문제는 생각지 못한 곳에서 터졌다. 공부방을 마치고 돌아오는데, 선생님이 쓰는 게 부족하니 틀린 부분을 집에 가서 다시 보라며 가볍게 말했던 것. 집에 와서 나는 아이와 공책을 펴고 불러주기 시작했는데, 아이는 모음과 자음을 다시금 헷갈리며 계속 틀리기 시작했다. 한글을 알고 있는 아이로서는 기초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모음과 자음을 틀리는 것을 보니 나도 화가 났다. 그래서 몇 번을 다시 가르쳐주고 설명해주려고 시도했는데 이번에는 눈물을 흘린다. 설명을 해주려고 해도 자꾸만 보고 쓰겠다고 하는 아이에게 나도 모르게 화를 내고 말았다. 한글을 배운 지가 몇 년인데, 아직도 이걸 모르니? 그건 아이에게 한 말이기도 했고

나 자신에게도 한 말이었다. 선행학습이라고 6세부터 한글을 시작했는데 아이는 아직도 ㅁ과 ㅂ의 차이를 잘 모른다. ㄱ과 ㄲ의 차이를 모르고, ㅜ와 ㅠ도 헷갈린다.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게 별것이 아닌 문제인지 모르겠다. 예전에 공부방 선생님과 이야기했을 때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듯 이야기를 받아들였다. "애들이 원래

왔다 갔다 하면서 잊어먹기도 하고 그래요. 심각하게 여기지 마세요". 그 말에 나는 내가 유난스러운 건가

고민했었다. 그래 시간이 지나면 언제 한글을 떼었냐고 물을 정도로 잊어버릴 거야.

그러나 그날은 정말 화가 났다. 아이가 보충수업을 작년에 이어 올해도 받을 만큼 실력이 부족하다는 건 지금껏 해온 선행학습이나 학습지가 도움이 안 되었다는 건데, 학교와 학원을 이중으로 공부하고 이중으로 지적받고 보충한다는 것이 부당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결국 공부방 선생님께 감정을 읍소하고 장문의 문자를 썼다.

이중으로 학습을 해야 하는 게 마음이 너무 안 좋다는 식의 내용이었다. 그만두고 싶다는 말도 썼다.


세 가지 딜레마

첫 번째 학원과의 통화에서는 코로나 이야기를 주로 했다. 코로나 덕분에 아이들이 자주 빠지고, 학습이 잘 안 된다. 양성이 온 다음에 아이들이 쉽게 회복이 안된다는 이야기였다. 코로나가 두뇌에도 영향을 줘서 우리 집

아이도 그날 앉아있기는 하지만 멍한 상태로 내용을 이해를 못 하더라는 식의 이야기도 했다. 나도 그 부분은

인정은 했다. 하지만 나는 지금의 시국을 모르는 것이 아니고 아주 기초적인 부분에서 부족한 것을 이야기했다. 그러나 그분은 3년을 공부했던 것을 그 정도 받아쓰기 때문에 그만두시겠다고 하는 건가요?라는 반응을

보였다. 받아쓰기 정도가 아니라 기초 한글의 문제는 지금 잡지 않으면 못 잡는 것이라고 대답했더니,

그럼 공부시간을 늘리는 걸 제안했다. 주 5일을 공부방을 나와서 매일 하면서 받아쓰기도 반복하다 보면

자신감도 늘고 이겨나갈 수 있을 겁니다. 내 대답은 "노"였다. 지금도 3일을 힘들게 가고 있는데 5일이라니.

상담을 할수록 아이의 학습시간이 부족해서 라는 쪽의 결론으로 이끌어가는 것 같았다.

그러면 학교 숙제도 해야 하는데. 내 이 말이 허약하게 느껴졌다. 숙제가 그렇게 많은가요?

이 말에는 함정이 있었다. 적다고 하면 별것 아닌 걸로 여겨질 것이고, 많다고 하면 공부방에서 하면

된다는 식의 답이 있으니까. 나는 애써 빠져 오면서 선을 잘랐다. 시켜보건대 초등학교 2학년이 집에 와서

엄마와 틀린 글씨를 3번 반복하는 일이, 어른의 관점과는 다른 것임을. 어른이 별거 아니라고 하는 그 숙제를

아이는 놀고 싶은 걸 참고 온몸의 의지를 다 써서 써야 한다는 걸. 나는 아이의 숙제를 시키려고 그동안 얼마나 많이 싸웠는가. 다시 마음을 잡았다. 이건 아니다. 그렇게 나는 프랜차이즈 학습지 공부방 상담이 얼마나 영업전략을 갖고 있는지 새삼스레 느꼈다. 어쨌든 나는 부딪혀서 깨지는 알이 되더라도 중단을 바꿀 생각이 없었다. 그렇게 1차 전쟁을 마치고 자려고 누웠는데 머리가 아파왔다. 지금까지 대체 무얼 한 거지. 적지 않은 비용과 시간을 주고. 지금까지 과정을 오려고 그렇게 오래 했는데 여기서 그만두는 게 뭔가 석연치 않았다. 공부한 것이 날아갈 것 같았다. 게다가 둘째의 문제도 있었다. 둘째는 첫째가 했던 똑같이 과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인데, 그만두면 처음부터 계획을 다시 세워야 한다. 다른 학습지를 하지 않는다면 내가 아이들을 책임져야 한다. 과연 공부가 될까? 등등


두 번째로 , 학습장애에 대해 자료를 찾아보았다. 학습장애란 지능에는 문제가 없지만 학습의 특정한 영역

특히 국어의 읽기나 쓰기 듣기, 수학의 수 연산 같이 특정 부분의 학습이 진행되지 않는 것을 뜻한다. 이 말은

학령기 초기 아이들이 흔히 실수라고 다뤄지는 읽기나 쓰기, 수 계산의 실수가 지속적으로 반복되거나 문제가 될 경우 학령기 후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나는 이 말에 공감을 했다. 비록 한글이 서툰 저학년이긴 하지만 큰 아이가 보이는 한글의 어려움은 단지 복합적인 받침이나 띄어쓰기, 소리 나는 대로 쓰기

이 정도에서 나타나는 어려움이 아니었다. 아이는 글자를 그림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나는 ㄱ과 ㅏ 분절된 음소의 조합이 한글이라는 식의 관념을 갖고 있지만, 아이의 머릿속에는 그런 분화과정이 없었다. 아이는 모든 글씨를 통으로 외워서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반복되는 구문이나, -했습니다. -었습니다. 와 같은 부분도 공통된 부분임을 강조해서 그대로 응용하면 되지 않겠냐고 했지만 아이는 결국 따라오질 못했다. 사고력도 자신감도 없었다. 모든 것이 결국의 어른의 관점에서, 이미 터득한 사람의 관점에서 다뤄지고 있었나 보다. 어린 시절의 수학 공부를 어려워했던 걸 다시 생각해보면서, 나 역시 학습장애가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학년 시절의 수 학습장애는 결국 고등학교 때까지 고쳐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역시 수포자였지만 나를 이해해주는 선생님은 단 한명도 없었다.

그날도 한글 깨기는 실패로 돌아갔다.


세 번째, 학습법을 바꾸겠다고 마음먹었다. 아이의 머리 못지않게 한 곳에 머물러 있었던 내 머리도 서서히 깨지기 시작했다. 나는 지금껏 아이와 무슨 공부를 하고 있었나? 내 방식은 무엇이 잘못되었나? 의문이 따라왔다. 지난겨울 내내 칼바람을 맞으면서 공부방으로 공부하러 다녔던 기억이 났다. 매번 가기 싫다는 아이를 손을 잡고 공부방에 넣어주고, 데리고 오기를 1년도 넘은 것 같은데 아이는 스스로 가고 오기를 아직도 힘들어한다. 같이 가줘. 데리러 와. 이 말을 할 때마다 동생을 집에 두고 가기도 뭐하고 데리고 가기도 힘든 상황이 반복되었다. 한 번은 둘째의 하굣길에 짐을 잔뜩 든 상태에서 큰애를 데리고 가다가 둘째가 울어서  큰애를 못 데리고 오고, 큰 아이 혼자 걸어오는데 길이 엇갈렸던 일도 있었다. 그렇게 집에 오는데 길 한편에서는 한 무리의 엄마들이 모임을 가진 후 웃으면서 집에 가고 있었다. 둘째와 같은 반 엄마들이었는데, 아이가 하나이고 학교를 다니기 전이라 시간이 자유로운 엄마들이었다. 문득 나는 왜 이러고 있나 이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각기 다른 아이의 스케줄을 맞춰서 학교를 보내고 확실히 학원을 보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아이가 완전히 스스로 학원을 다닐 수 있기 전까지는 말이다.


집중을 못해서인가 시간이 부족해서인가

집에서 공부하기 힘들어하는 아이. 엄마와 학습이 어려운 아이. 그것이 큰 아이가 공부방을 가는 이유였다.

잘할 때는 그럭저럭 문제가 없었지만 하기 싫어지면 한 없이 밀렸다. 흐름이 깨지고 나면 연산도 계속 틀리고

집중을 못했다. 나는 사실 기초수학에서는 반복이 제일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세대에서 자랐다. 학습지 열풍이 지금 못지않았다. 그래서 학습지를 시켰던 것. 반복적인 연산에 익숙해지면 결국 언젠가는 수학에 자신감을 얻게 되고 어려운 문제도 풀게 된다. 이것이 나의 믿음이었다. 영어도 마찬가지. 자꾸 파닉스를 듣고 말하는걸 무수히 반복하면서 쓰기랑 독해도 할 수 있게 된다고. 사실은 영어 측면에서는 나에게는 그것이 고등학교까지 도움이 되었다. 하지만 내 경우는 언어 쪽에 재능이 있어서 인지도 모른다. 큰 아이는 언어능력이 나보다 약한 것이다. 그래서 시대와 기본적인 능력 차이로, 나처럼 되겠지 했던 예상은 벗어나 버린 것이다.

아이 아빠는 종종 투덜거렸다. 비싼 돈을 주는데, 한글도 제대로 못한다고. 수학도 진도 빼기에 바쁘다고.

그러나 나는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오히려 반복 학습이 가성비야. 앞으로 할 공부의 밑거름이 되고 공부습관을 잡아줘서 지금 투자하는 게 오히려 앞으로 학원을 덜 다니게 할 거라고. 학년이 올라갈수록 기초가 안돼서 고생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지금의 고생이 그때를 다 상쇄할 거라고 그렇게 확고하게 믿으면서 할 수 있는 만큼 최대한 성실하게 매일매일 교재 풀이를 시켰다. 나의 이런 노력에 아이들은 힘들어하면서도 적응해갔다. 힘들다 싶어도, 학원에 목매고 보내는 다른 지역의 엄마들의 교육열에 비하면 나는 한참 떨어진 거라고. 우리 집 아이는 노는 거나 다름없다고 그렇게 자신을 달랬다. 영어학습지도 마찬가지였다. 2학년 정규과정에 없기 때문에 사교육으로 해야 하는 부분인데, 늦어도 한 참을 늦은 거라는 생각에 대한 보상으로 그렇게 학습지 과정에 포함시켰던 것. 그렇게 주말에 할머니 집에까지 싸들고 다니면서 할 정도로 충실했다.  


그 놈의 사고력이 무엇이냐..

그러나 시간이 가도 입학 후 일 년이 지나도 아이는 자기가 공부방을 왜 가야 하는지 이유를 잘 이해하지 못했다. 반면에 학교는 달랐다. 학교는 친구를 만나고 내가 인기도 많고 등등 가기 싫다는 말이 없었다. 아침이면

알아서 가방을 챙겨서 스스로 나가는 걸 보면 말이다. 온라인 수업으로 못 갔던 작년에 비하면 학교 가는 게

너무 귀하고 행복해진 건지도 모른다.

공부방을 그만두겠다고 하자 아이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말 그대로 엄마가 시켜서 간 것이라는

말이었다. 더 어려운 걸 할 거면 그냥 원래대로 하자고.  이 말이 왠지 마음을 아프게 했다.

아이가 공부방에서 배우는 건 사고력 수학인데, 아이는 공부방에 갈 때 자기 생각은 어쨌든 빼고 시키는 대로

하고 있었던 것. 그 공간은 일종의 인큐베이터이고 아이들은 지식을 머리에 수혈받고 있었던 건 아니었을까.

매일매일, 매주 해야 할 양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양을 채우려면, 한 문제라도 더 풀려면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한다. 잔머리를 잘 못쓰는 큰 아이 같은 경우 진행 속도가 느렸다. 꼼꼼하게 하나하나 짚어가야 하는 성격상 진도가 안 빠지면, 서술형은 보조 선생님이 불러주는 대로 받아 적기라도 해야 했다. 그게 지금까지 아이가 해왔던 공부였던 것. 그래도 공부방 선생님 말에 의하면 그만큼 잘 따라오고 시키는 대로 잘 따라 하는 애도 없다고 했다. 엄마는 그 결과지를 받고 늘 잘해오고 있다고 좋아했던 것이다.

하지만 막상 학교에서 문제풀이가 많은 사고력 중심의 수학을 배워오면, 어떤 부분은 아주 잘했지만 어떤 부분은 문제를 날리는 수준이었다. 1학년 때도 한 면은 모두 맞았지만 뒷면은 모두 다 틀린 시험지를 가져온 적이 있었다. 왜 냐고 물어봐도 대답을 안 했다. 그냥 하기 싫어서 이 말이 전부였다. 나는 나를 닮아서 감정의

기복이 있나 생각했을 뿐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다.  국어 같은 경우에도 느낌을 쓰라면 "좋았다" "싫었다"

이 것이 다였다. 학년이 올라가도 아이의 사고력은 자란 것이 아니었고, 그 상태로 복잡한 수학 교과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태에 이르고 만 것. 심지어 싫어도 왜 싫은지 조차 말하기가 힘들어지는 그 상황이라니.


그렇게 공부방 선생님의 갖은 회유와 영업을 견디면서, 가까스로 그만둔 이후 나는 '다행히도' 다른 프랜차이즈로 넘어가지 않았다.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온갖 학습지가 다 있었지만 나는 학습지의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깨달은 직후여서 넘어가지 않기로 했다. 다시 한번 정리하자면 학습지란, 학습시스템이란 그 자체로 완벽한 것을 추구한다. 학습 회사가 제공하는 콘텐츠들이란 교육적으로 아무런 하자를 달 수 없는 훌륭함 그 자체다. 하지만 문제는 그 학습시스템에 따라가야 하는 개개인 들이다.  완벽한 학습시스템이 있을 지라도

학습자라는 개별적인 존재들이 그것을 똑같이 따라 하기란 변수가 너무 많다. 특히 아이들 같은 경우에.

완벽한 선행학습이라는 무지개만 보고 따라가자면, 그 밑에서 따라가는 아이들은 끊임없이 반복하고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그 과정이 비록 하루에 몇십 분으로 나누어져 있더라도 여러 과목이 중첩되어있고 학교와 완벽하게 동선이 맞지 않는다면, 선순환이 되지 않는다면 결국 부담과 스트레스로 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교재는 반복이 심한 내용이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공부의 중심에서 계속해서 학습자가 소외당한 다는 것. 오늘은 이 문제를 더 알아보고 싶지만, 밀린 숙제를 마저 해야 한다. 모르는 게 있지만 일단 다른 문제부터 다 풀어야 한다. 초등학교 2학년에게 주 5일 공부방이라면, 초등학교 3학년에게는 대체 몇 시간이 필요한가. 공부를 잘하면 그 시간은 줄어들 것인가.

그 사이에서 아이는 방과 후 학교도 가고 싶고, 예체능도 해야 하며, 친구도 만나야 한다.

이런 딜레마를 끊으려면 전환이 필요했다.  더 늦기 전에. 아이 중심으로


긴 이야기를 썼다. 여기까지 읽어주셨다면 그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려야 갰다.

어제는 처음으로 아이와 디지털 교과서라는 걸 열어보았다. 예전의 우리와는 비교도 안될 만큼

공교육에도 학습자료들이 디지털로 통합, 공개되어있고 가입만 하면 학부모와 학생 누구나 집에 와서

복습할 수 있다. 부족한 자료는 E-학습터에서 강의를 들을 수도 있고, 이것을 통해 교사와도 이야기할 수 있다. 실제 교육현장에서는 얼마나 활용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초 2의 수준에서는 교과서와 익힘책 활동책만

터득해도 충분해 보였다. 문제집도 필요 없어 보였다.

나는 지금까지 사교육을 통해 공교육을 이해시키겠다는 잘못된 전략을 써온 것이다.

나는 일단 디지털 교과서를 통해 자기 주도 학습과 메타 학습을 아이에게 제시하고자 한다. 다행히도 아이는

새로운 복습 방식과 노트북에 펜을 써서 문제를 푸는 것을 재밌어하는 편이다. 독서 노트도 한 권 만들어보자고 제안했다. (둘째의 문제는 또다시 생각해보자고 했지만,) 앞으로 다가올 그 많은 어려움을 앞에 두고

일단 변화는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이한테 미안하다고 말했던 것도 적어본다.

미안해. 공부 못한다고 해서. 공부 못하는 게 너의 잘못이 아닌데. 지금까지 너 탓만 해왔어.

이제부터는 바꿔보자 엄마도 노력할게


우리 스트레스 없이 이 학창 시절을 잘 견뎌보자. 공부보다 중요한 건 이 모든 걸 잘 견디는 거야.

그러기 위해 건강해지자. 몸도 마음도.

너는 분명 나 보다 훨씬 잘 살 거야. 너는 희망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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