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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 am I Apr 25. 2022

인식의 문을 열며

-인문학과 문화 사이에서 관찰자로 살아가기

아이는 한글을 깨친다. 깨친다는 말에는

인식과 개념이 열린다는 뜻이 있다. 전에는

단지 의미 없는 문자였던 것이 갑작스레

의미로 다가온다는 것이다.

어른도 깨친다. 단지 주입식 교육을

받았던 어린날의 자신이 아니다. 그때

그 의미 없이 느껴졌던 배움의 순간이

한 순간에 자기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의식이 발전한다. 부모가 되어 막연히

이전의 부모와 사회가 자신을 길렀던

그 방식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재평가한다

그리고 선택한다. 


지금껏 배웠던 그대로.

살 것인가

바꿀 것인가


책을 읽다가 음악을 읽다가 공통적인

단어를 찾았다.

책 중 하나는 하루키이고 다른 하나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였다

하루키는 에세이에서 짐 모리슨을 이야기

했는데 그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도어스의 음악을 들었다.

하루키라는 문

그리고 도어스의 음악은

10대와 20대 시절에 열었던

음악과 문학의 문이었다.

그들은 모두가 똑같은 길을 걷던 세상에 

아 이렇게 살수도 있구나 를

알려주었던 인물이었다.

물론 특별한 재능의 축복이 그들에게는 별처럼 내렸지만

https://youtu.be/mbj1RFaoyLk


최에 나는 다시 이 3가지 각기 다른 인물을

다룬 내용을 읽으며 하나의 공통적인

코드를 읽었다


문 ( Door )


최근에 연암 박지원의 삶을 다룬 

 <작품으로 읽는 연암 박지원>이라는 저서에서

주영숙이라는 저자는 연암 박지원의 문체를 이야기하면서

"대문이 여러 겹이어도 열어놓기만 했다면 화살 하나로 단번에

통과하듯"이라는 문장 묘사법을 이야기했다.

실제로도 그의 책은 과거 조선이 근대로 향해가는 과정에서

조선 선비들의 인식의 문을 바꾸어가는 큰 역할을 했다.

책을 읽다 보면 마치 현장에 있는 듯 이곳저곳 우리는

낯선 세계로 통하는 문들을 통과하게 된다.

그 문을 통과한 후 낯선 자신의 모습을 보고

우리 자신의 세계관과

인식이 달라져있는 것을 느낀다.

실제로 독자인 내가 마음을 열었을 때 

저자가 쏘는 화살은

깊이 박혀 한동안 벗어날 수 없었다.

굳어버린 의식을 뚫고 깨진 틈으로 

변화가 스미고 있었다.


인문학


인문학은 인간과 관련한 사상과 문화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나는 이것이 인식의 문을 여는 학문이라고 정의한다.

그 어떤 것 시작도 

깨치지 않고 나아가는 것은 거짓이다.


나는 대학에서 인문학을 전공했고

사람들은 제일 취업이 안 되는 학과라고 말했다.

맞았다. 

나는 삶에 필요한 직접적인 도구를 얻지 못했다.

그래서 정확한 직책과 명함도 돈도 얻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내 전공 덕에 목적을 이루기 위한 도구보다 

방법을 많이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내가 졸업한 학과는 나에게

사람이 열어야 할 마지막

문을 미리 열도록 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거울을 본다. 거울에는 고려와 조선으로부터 피를 받은 

한 사람의 여성이 서있다. 키 160에 검은 머리 납작한 코, 황색 얼굴, 그리고 북방계 얼굴

인류 최초의 여성인 루시의 후손인 나는 그녀와 100 퍼센트 다른 존재가 아니다.

나는 엄마나 할머니와 비슷하게 늙어갈 것이고 그렇게 죽을 것이다.

과거에 나는 이렇게 저렇게 꾸미려고 노력을 많이 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먹히지 않는다. 거울 앞에 있는 나는 

그냥 나다.

그걸 인정하는데 꽤 오래 걸렸다.

그리고 힘들었다.

하지만 나는 진화를 위해

알을 깨고 나오는 중이다.



메타 학습에 대한 은유


인문학자 글래드윈은, 유럽인과 트루크 족 선원이 망망한 태평양 한가운데에

있는 작은 섬들 사이를 작은 배로 항해하는 방법을 대조적으로 비교해서 설명했다.

유럽인은

항해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항해를 시작할 방향과 위도와 경도와

각도, 목적지에 도착할 시간 등에 대해 조사를 하고 계획을 세운다.

일단 계획이 완성되고 적합하다는 것이 확인되면 선원은 항해를

시작하게 되고, 하나하나 예정대로 그 위치에 도달했는지를 확인하면서

항해를 계속한다. 그는 이 항해를 위해서 컴퍼스, 지도, 별의 위치 등

가능한 모든 수단을 사용한다. 만약 그에게 어떻게 여기로 오게 되었냐고 물으면

그는 쉽게 그 모든 것을 설명해 줄 것이다.

여기서 유럽 항해사는 왼쪽 두뇌 방식을 사용했다.


트루크 족 선원

다른 섬의 위치를 염두에 두고 목적지와의 거리를 추측하면서

항해를 시작한다.

항해를 하는 동안 위치가 달라짐을 인식하게 되면 계속해서

방향을 재조정하며, 끊임없이 인근의 어떤 표적이나 태양의

위치, 바람의 방향을 측정해 가면서 궤도를 바로잡아 나간다.

이렇게 그는 어디에서 출발했으며 어느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또 현재의 위치와 목적지까지의 거리는 어느 정도인지를

감지하면서 방향을 조정해가는 것이다.

그에게 아무런 도구나 계획표 없이 어떻게 그토록

항해를 잘해 나갈 수 있었느냐고 묻게 되면 그로써는 도저히 다

설명할 수가 없을 것이다. 왜냐 하면, 그들이 말로써 설명하는데

익숙해 있지 못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그 과정을 말로써 설명하기엔

너무나 복잡하며 너무나 많은 변화의 과정을 거쳐왔기 때문이다.

이 트루크 족 항해사는 그의 항해를 위해 오른쪽 두뇌 방식을 사용한 셈이다.

-파라데스와 햅번 <분리된 두뇌와 문화 인식의 역설, 1976>


어떤 교사가 교실에 들어간다. 학습지도안과 학습계획표 교과서를

가지고 계획된 수업을 진행하려 한다. 그는 정해진 시간까지 정해진

수업 목표를 30명의 학생들에게 지도한다. 

이것이 유럽 항해사의 방식이다.

반면 다른 교사가 교실에 들어간다. 그는 교과서도 없고 계획표도

없다. 그는 학생들에게 수학에 대해 이것저것을 질문한다.

한 학생들은 교사에게 대답하면서 어떤 부분을 알고 싶다고

대답한다. 교사는 제시한 문제를 두고 학생 개개인이 자신의 문제 풀이 방법을

어떤 식으로 내놓는지 듣는다. 그리고 어떤 방법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일지

생각해보게 한다. 학생들은 각자의 답을 찾아서 자신의 노트에 적는다.

그리고 다른 문제에 이것을 적용해 본다. 이것은 트루크 항해사의 방법이다.


나는 어떤 쪽에 가치를 두려고 말을 한 것이 아니다. 다만 학습자 스스로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는데서 학습을 시작하는 메타 학습법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을 뿐이다.

최근 메타 학습에 대한 저서로 많은 이야기를 한 리사 손 교수는

"배움은 자신이 모르는 것에서 시작한다. 그것을 아는 것이 

시작이다"라고 말했다.

유럽 항해사가 가진 가장 큰 오류는 자신이 바다를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바다는 항상 변하기 때문에 예외를 두지 않으면 안 된다.

트루트족 항생 사는 오늘의 바다와 내일의 바다가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하며 항해를 시작한다. 매일의 항해는 매일의 배움의 과정이다.

그 경험을 통해 법칙들을 깨달을 것이다. 하지만 그 역시도

자신의 섬 근처가 아닌 다른 바다에 직면했을 때는 자신의

인식을 다 부숴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자신의 경험을 다른 이에게 전달하는 효과적인 수단을

고민해보아야 한다.



 나는 하나의 문을 선택했다.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를 글로 정리하면서,

그 당시 지식인들의 인식의 문이 열리는 과정과 현재를 살아가는

나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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