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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 am I May 13. 2022

너의 성장은 나에게  기다림의 유니버스

-언제 클거냐고 제발 묻지마세요-

코엑스에 있는 별마당 도서관에서 그 규모에 놀란 적이 있다. 햇살이 가득한 3층 규모의 서가에서 책들은 그 자체가 멋진 구조물을 이루고 있었다.

수가 많다. 책은 별이고 도서관은 우주다. 우주를 찍은 사진을 보면 빛나는 먼지처럼 보이는 셀 수 없이 많은 별들이 모여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구에서 봤을 때 별들은 먼지처럼 작지만 사실은 가까이 가보면 결코 규모가 작지 않다. 작아 보이는 것은 아주 멀리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책은 별이고 나를 둘러싼 이 수많은 별들 사이에서 하나의 우주를 탐험하는 탐험가다.


아이도 나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우주이다. 아침에 일어나니 책상에 앉아서 헤드폰을 끼고 뭔가를 만들고 있다. 아이는 아이만의 세계 속에 사는 주인공이다. 이 주인공은 나를 쳐다보더니 한마디 한다. "나 학교 간 동안 내 책상 건드리지 마. 치우지 마". 자기 세계를 침범하지 말라는 뜻이다. 그래 엄마는 아무리 책상이 우주 한복판 같아도 손대지 않으마.


이 우주에도 질서가 있다면, 나는 아이에게 무엇을 주어야 할까. 돈이나 재산이 아니라 내가 죽어도 남아있을 정신적인 유산 같은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오늘도 적어본다.


첫 번째는 기다림과 자율성이다. 유치원에서 아이를 하원 시키는데 유치원 밖에서 오빠를 기다리는 어린 동생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닫힌 문을 두드린다. 그래도 안되니 문을 흔들어본다. 아이의 머릿속에는 '두드리면 열릴 것'이라는 하나의 생각이 있었나 보다. 한 번 두드려보고 안되면 또 두드려보고, 뒤돌아섰다가 다시 두드려본다. 정 안되니 돌아서서 다른 놀이를 찾는다. 이 작고 귀여운 행동을 보니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기다리는건 내가 선수지


내 아이와 나는 원하는 것이 바로 이루어지지 않을 때 기다리는 법을 알고 있는가? 해결과 미해결 사이에 어떤 수단을 찾는 문제해결력을 갖고 있는 걸까?  24개월 아이는 어떻게 하면 문이 열릴까 라는 문제를 놓고 고민을 한 것이고, 열기 위해 문을 두드린 행동을 한 것이다. 그것이 안되자 다른 수단을 찾았고 그것도 안되자 관심을 돌렸다. 시간이 되자 문은 열렸다.

사실 세상에서 제일 지루한 것은

라면의 물이 끓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일정 시간이 지나야 해결이 되는 문제를 조급하게 기다리다 보면 섣부르게 손을 대서 결과를 망치는 일이 많다. 그럴 때는 그 꼬마처럼 관심을

다른 쪽으로 돌리는 수밖에 없다. 쉬운 일이지만 '기다리는 것'도 배워야 하는 일 중에 하나이다.


둘째 아이는 아직도 기다리는 일에 익숙하지 않다. 아침에도 눈을 떠서 내가 없으면 울음부터 터뜨린다. 그래서 나는 누운 자리에서 울지 말고 집 이곳저곳을 찾아보고 엄마를 부르라고 했다. 찾아보면 엄마가 어디선가 나올 거라고. 아직도 기다리는 것과 스스로 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둘째는 손이 많이 가는 6살이다. 그러나

이 아이도 기다리면 언젠간 성장하겠지. 엄마도 기다리는 법을 배워야 한다.  


육아를 시작한 지도 10년이 다되어간다. 10년 전에 아이를 10개월 내내 기다리면서

 매일매일이 궁금했었다.

이 아이는 어떻게 생기고 어떤 성격을 가진 아이일까. 초음파 검사가 있다고는 하지만 임신 기간 자체가  기다림이었다. 지금은 매일매일 보는 얼굴을 보기 위해 그때는 매달 병원에 찾아가서 힘들게 검사를 받아야 했던 것. 아이를 낳고도 신생아실 유리문에 붙어서 한 번이라도 더 보려고 기다렸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 아이는 기다림이었고, 10년이 지난 지금 아직 미처 다 알지 못하는 성장의 과정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애쓴다.


첫아이를 가졌을 때, 미혼인 친구가 놀러 와서 '어떤 아이면 좋겠냐'라고 물었다. 나는 화분에 꽃씨를 심었는데 그 꽃이 피기까지 어떤 꽃인지 알 수 없는 거라고. 그냥 시간의 흐름에 따라 기다리는 것이라고 대답했었다. 마치 랜덤 선물 박스에서 무엇이 나올지 알 수 없는 것처럼.


정말로 아이는 나에게 랜덤 선물 상자가 되었다. 어떤 날은 기대치 않게 줄넘기를 잘하다가. 어떤 날은 피아노를 배우다가. 그림을 그리고 만들기를 해낸다. 어떻게 자신의 흥미를 자기만의 작품으로 연결시키는는 걸까. 나와 남편에게는 없는 그런 재능이 어디에서 나왔는지 나도 모른다. 그런 이 아이도 받아쓰기나 숫자를 배우는 부분은 영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매일 저녁 시간을 정해 놓고 일정량을 공부시키지만 아이에게 공부는 아직도 너무 어려운 과제인가 보다. 이것도 조급해서는 풀 수 없는 문제이니 방법을 찾으면서 기다리는 수밖에. 그래도 해결이 안 되는 날에는 관심을 돌리는 수밖에. 세상에는 교육전문가들이 많지만 그 사람들에게 맡기는 대신 아이 인생의 해법은 아이 스스로 찾도록 도와주는 역할만 하자.

이렇게 믿는다.


내가 아이에게 꼭 물려주어야 할 인생의 원칙이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스트레스를 스스로 해결하고 조절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다. 살면서 겪는 스트레스를 이겨내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 재능과 운에 따라서 사람은 성공할 수도 있고 아닐 수 도 있지만, 중요한 것은 이 하루를 잘 견뎌내고 이기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생각보다 많은 사고가 필요하다. 아침에 눈뜨는 순간부터 저녁에 눈감는 순간까지 물 흐르듯 진행되기 위해서는,

내 마음의 중심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피아노도 체육도 아이가 커서도 힘들 때면

'안되는 일'을

 이겨내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한 것이다. 마음이 흔들릴 때는 책을 보고, 음악을 연주하고. 친구랑 만나고, 무언가를 만들고, 운동을 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어서이다. 그런 방법을 안다면 조금 어려운 일이 닥쳐와도 관심을 다른 곳으로 잠시 돌리는 법을 배울 수 있을 것 같다. 마음대로 이루어지지 않아도 기다리는 법을 배울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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