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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Who am I Dec 28. 2021

기적의 능력, 네 안에 있어

디즈니 <엔칸토-마법의 세계> 리뷰

마법의 집


집은 자연물로 만들어진 후, 단지 재료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딱딱하고 아무 감정 없어 보이는 돌이나 나무는 사람의 손길이 닿으면서 살아있는 집이 된다. 긴 휴가가 끝나고 텅 빈 집에 들어왔을 때의 그 냉기란 어떤지. 어디까지나 사람이 없는 집은 생기가 없는 죽은 집 같은 느낌이다. 더욱이 그 집이 3대가 역사를 이어 살아온 집이라면 그 의미는 더 깊을 것이다.

디즈니의 <엔칸토- 마법의 세계>에 나오는 집은 살아있다. 스페인어로 여성형을 붙여서 집을 사람처럼 부른다. 영화 속의 집은 미라벨과 할머니 그리고 삼촌 가족까지 3대가 지금까지 살아온 ‘기적의 집’이다. 집은 가족들에게 직접 편의를 제공해주고, (심지어 아침 식탁까지 차려준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 가족들과 소통하며 가족들에게 ‘기적의 능력’을 선물해주었다. 가령 미라벨의 엄마는 치유의 능력, 큰 언니는 엄청난 힘, 둘째 언니는 꽃을 피우는 능력, 고모에게는 날씨를 바꾸는 능력을, 사촌에게는 작은 소리를 듣는 능력과 변신 능력을 선물해주었다. 할머니는 이 기적을 처음 받은 창시자이자 가족의 중심이다. 할머니의 창가에는 늘 기적의 초가 타올랐다.

하지만 주인공인 미라벨은 아직까지 특별한 능력을 받지 못했다. 어린 시절 능력을 받으려고 하는 시점에 이유를 알 수 없지만 갑자기 집이 그 능력을 거두어버렸다. 마법의 특별한 능력을 받는 가족들은 모두 자신만의 특별한 방을 받게 되고 그 안에 자신만의 세계가 생기는데, 미라벨이 기적을 받기로 한 날 문 앞에서 빛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그 이후 이 기적의 가족 사이에서 미라벨 만이 있는 듯 없는 듯 평범한 존재로 살아왔다. 여기까지가 과거의 시점이다.


다시 시점을 현재로 돌아오면, 미라벨의 가족들은 한창 행사 준비로 바쁘다. 미라벨의 사촌동생인 어린 안토니오가 집으로부터 기적을 선물 받기로 한 날이다. 기적의 세례식을 앞두고 들뜬 사촌 동생을 미라벨은 직접 만든 인형을 선물로 주고 안아준다. 미라벨은 이것저것 장식을 하려고 하지만 이 기적의 집에서는 그런 평범한 행동이 잘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집은 혼자서도 자신을 장식할 수 있고 가족들은 특별한 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 노력하지 않아도 능력이 충만한 하니까. 할머니는 ‘미라벨이 실수만 하지 않으면’ 잘 끝 날 것이라고 말한다.

자기보다 한 참 어린 사촌 동생이 기적을 선물 받는 것을 보는 미라벨은 마음이 복잡하다. 이 기적의 행사에는 마을 사람들도 찾아왔는데, 미라벨은 그 사이에 끼어서 그 모습을 지켜본다.  안토니오가 부끄러워 망설이자, 미라벨은 안토니오를 위해 손을 잡고 빛나는 방문까지 나아간다. 하지만 미라벨의 역할은 거기까지가 다이다. 동물을 사랑하는 안토니오는 성공적으로 기적을 선물 받는 순간 신기한 세상에 빠져든다. 방에는 새로운 정글의 세계가 펼쳐진다. (마법의 집에서는 공간이 무한대란다) 모두들 축하하고 행복해하는 그 순간 미라벨만 그 행복에서 빠져있다. 가족사진에 그녀가 없는데도 아무도 그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그녀가 이런 소외의 감정을 느끼면서 혼자 로비로 나왔을 때 그녀는 처음으로 보았다. 오래되고 특별한 자신들 만의 집이 갈라지고 깨지고 금이 가는 모습을. 이 행복한 날 닥쳐온 위험의 징후를 그녀는 망설임 없이 사람들에게 알린다. 하지만 사람들의 눈에는 그런 위험의 징후가 보이지 않는다. 그 때문에 그녀는 다시 비난의 대상이 되고 만다.

미라벨은 집을 구원할 또 다른 기적의 소녀가 될 것 인가. 아니면 그저 기적의 가족 사이에 낀

천덕꾸러기가 될 것인가.


형제사이에 아이들의 비애

아이를 키우는 집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형제자매가 많은 집에 둘째들이 자기 자리를 못 찾는다는 말을 자주 듣곤 한다. 보통 첫째는 부모님의 기대를 받고 자란 장녀 또는 장남이라서, 막내는 귀여운 역할을 주로 맡는 쪽이라서 이렇게 저렇게 사랑을 받는 반면 둘째들은 관심에서 벗어나 있는 듯하다. 부모 역시도 마음으로는 다 안다. 이렇게 저렇게 해줘야지. 하면서도 막상 다른 아이들에게 관심과 사랑을 다 주고 나면, 둘째에게는 주고는 싶지만 몸과 마음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다. ‘알아서 잘하면 다행’이고, 못하면 그야말로 집안의 못난이가 따로 없다.

실제로 둘째 아이와 같은 어린이 집을 다니는 아이 친구 엄마가 얼마 전 막내아들을 낳았다. 위로 딸만 둘을 키우다가 아들을 낳은 이 엄마에게, 둘째 칭찬을 했더니 막상 대답이 부정적이었다.

늘 자기 고집 대로만 하려고 한다는 것이다. ‘아 그래요’ 이렇게 대답을 하고 말았지만, 나는 객관적인 면에서 그 아이는 다른 아이들보다 신체조건도 우수하고 인지능력도 빠르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다만 그 엄마의 입장에서는 순한 첫째와 돌쟁이 막내 사이에서 둘째가 하는 자기주장을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가끔 집으로 향하는 모습을 볼 때, 엄마와 언니 동생의 뒤에서 혼자 휘적휘적 걷고 있는 둘째 아이의 모습을 보곤 한다.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안 따라가는 것도 아닌 그 모습.

미라벨의 엄마도 안토니오의 기적의 세례식 이후에 미라벨을 위로하려고 하지만, 안경이 멋지고 우리 딸이 똑똑하다는 식의 칭찬이 주인공이 겉과 속으로 받은 상처에 그렇게 위로가 되진 않는다. (심지어 '그 일' 이 터지고 난 후에 실망한 미라벨을 위로하다가 다른 누군가가 부르니 '기다려'하고 가버리는 엄마의 모습이라니. 진정 엄마에게는 내가 첫 번째가 될 수는 없는 건가요. 나쁜 엄마도 아니지만 좋은 엄마인지는..)

미라벨은 그보다는 닥쳐올 위험에 대해 가족들에게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만, 웬일 인지 다들 말을 꺼내고 싶어 하지도 않는다. 미라벨만 모르는 비밀이, 금기 시 되는 비밀이 있긴 한데 다들 알려주질 않는다. 그리고 이 집에는 알려지지 않은 뭔가가 분명히 있었다. 모두들 제일 상상하고 싶어 하지 않는 ‘그것’과 관련된 뭔가 말이다.


집의 상징성

집은 어떤 의미에서 내면을 상징화한 것이다. 힘이 장사인 큰 언니의 내면에는 (내면이 있는지 모르겠다만 방을 보여주지 않는 것을 보는 것으로 짐작) 장녀로서의 부담감이 항상 있었다. 내가 뭔가를 항상 보여줘야 할 것 같고 그래야만 인정받을 수 있을 것 같아 끊임없이 일만 하는 그녀. 반면 둘째 언니는 늘 공주처럼 방 안에서 안전하게 지낸다. 그리고 그녀가 도달할 수 있는 최종 목표는 결혼이다. 그녀는 새롭거나 특별한 것을 시도한 적이 없었다. 미라벨은 그런 언니들의 모습을 통해 이 집의 균열이 사실은 각자의 내면에서 온 균열이란 것을 조금씩 눈치챘다.


맨 처음 할머니가 외부의 박해로부터 집을 빼앗기고 피난을 떠났던 시절, 위협은 분명 밖에서 온 것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강으로부터 기적을 선물 받고 모두들 부러워하는 좋은 조건에 좋은 능력을 갖추고 사는 지금 위협은 안에서부터 자라난 것이다. 그러나 그 위협이 눈에 보이지 않고 각자의 내부에 감추고 살아가기 때문에 쉽게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눈에 보이지 않는 불안을 매일매일 눈에 보이는 성취로 애써 감추며, 외적인 확장만이 중요했다. 문제는 덮어버리고 겉으로만 성장한 이 가족과 집은 스스로를 개혁하고 바꾸지 않으면 안 되는 과제에 직면한다. 누구를 위한 가족과 누구를 위한 집인지. 그 목표를 찾아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좀 위험한 발언이긴 하지만, 나는 이 영화를 보면서 영화 <기생충>을 떠올렸다. 그전까지는 그저 배경에 불과했던 집의 역할을 중심에 놓았다는 점에서.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그분’ 때문.  그러나 어디까지나 여기는 디즈니의 세계이기 때문에 영화  <기생충>처럼 그렇게 날카롭지는 않다. 다만 '소외된 자가 반전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공통점이 있다고 생각했다. 또 결말을 짓는 과정에서 집이 모두에게 평등한(?) 방법으로 징벌한다는 점이 좀 신선했다. 어디까지나 해결의 중심은 과거에 분열을 일으켰던 세대가 아닌 문제를 개혁할 수 있는 새로운 세대에게 주어져있다. 개혁의 칼자루는 한두 번 인정을 받았던 그들이 쥐는 게 아니다. 새로운 미래는 과거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던 가장 순수한 상태의 그녀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지금껏 가진 능력은 잃었지만 그런 것은 중요치 않다. 그 능력이 없이도 살 수 있는 또 다른 능력을 가질 테니. 차별이나 소외가 없는 집 비밀이 없는 집, 서로를 위해 희생하지 않는 집, 자신을 잘 아는 집, 그리고 외부세계와 가장 잘 소통하는 집 그리고 가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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