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Who am I Oct 05. 2023

남매의 의미

우린 서로 달라. 그러니까 좋은 거야

나에게는 두 살 많은 오빠가 있다. 그리고 지금 나에게는 세 살 차이 나는 아이가 둘이 있다. 아이 둘을 키우면 나의 과거와 아이들의 현재가 교차되면서 알게 되는 여러 가지들이 생겨난다. 이것은 마치 기존에 한 번 쓰인 각본을 다시 재수정해서 쓰는 것이라고나 할까. 각본은 다시 재창조되고 변형되지만 거기에 변하지 않는 요소들이 들어간다는 것이 특징이랄까. 매일 싸우고 다시 만나는 관계를 좀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고, 그때는 모르고 지나친 여러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게 하면서 새로운 의미를 알게 되기도 했다. 나는 내 인생의 편집자이고 각본가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자기가 누군가의 아이였고 동생이었고 형이었거나 언니 누나였다는 출생의 기존질서를 그대로 인정한 채 수긍하며 살아가는 사람에 비해서는 그나마 조금 나은 정도랄까.

 


나이 차가 뭐긴..


출생의 순서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동생으로 태어난 나는 인생의 첫 지점부터 별다른 선택 없이 오빠의 뒤를 따라야 했다. 어쩌다 태어나 보니 내 앞에 이미 오빠가 있었고 오빠가 모든 것을 갖고 있었다. 가족의 사랑도 물건도 다. 나는 살아가기 위해 그 틈새시장을 노리는 온갖 전략을 연구하는 아이였다. 오빠가 못하는 것, 부족한 것 안 쓰는 것 이런 것들을 틈틈이 공략하고 부모님의 사랑을 탈취하는 둘째의 눈치전략과 영악함을 어린 나이부터 본능적으로 익힌 셈이다. 때로는 약한 척, 때로는 큰 이익을 위해 나의 이익을 양보하는 계산, 심지어 부모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춘기 같은 변화조차도 일부러 늦추는 신체까지도 일종의 전략이었다. (결국은 올 것은 오고 말지만)

어릴 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메워질 수 없는 약점을 느끼며 살았다. 성 차이는 물론이고 신체적으로 더 크고 지능이나 학업성적에서도 차이가 많이 나는 오빠를 이기기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었다. 힘으로 빼앗기고 얻어맞는 일이 있다 해도 과격하게 싸워도 정신력으로 승부하며 사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 결론을 내렸다. 청소년기 내내 둘째라서 기회가 막혀 있다고 생각했다. 오빠 입장에서는 반대였겠지만.

사실은 우리는 그냥 다른 존재였는데 말이다. 경쟁의 요소가 끼어들기 어려울 만큼


부모가 되고 나니.

그래도 어렵네


 

30년의 격차가 있는 나와 아이의 세월의 차이에 비하면 고작 2년 앞서 태어났느냐 뒤에 태어났느냐는 고만고만한 차이다. 그러나 각자의 속에 꽉 차 오르는 그 질투와 선망과 경쟁심의 감정은 그들 자신이 아니면 이해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는 걸 안다. 지난날의 오빠는 기어오르는 동생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고 나의 큰 딸은 자기 공간을 수시로 침범하는 망아지 같은 동생을 참아내지 못하듯.

따지고 보면 남매의 2년 차는 객관적으로 큰 게 아니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이 살아가야 하는 그날들은 불타는 나날들이었다. 만약 더 크게 5년 또는 10년 차라고 해서 그런 문제가 제기되지 않았을까? 그건 숫자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의 문제로 봐야 하는 게 맞다. 그러나 그 당시에는 머리로 인정해도 감정이 인정하지 못해 늘 싸웠던 것 같다. 만약 지금의 내가 그때로 돌아간다면 좀 더 쿨하게 인정해 줄 수도 있었을 텐데.


어릴 때 무난하다는 말을 듣고 자랐던 사람. 사춘기 없이 자랐던 사람. 자고 일어나면 항상 방긋거리면서 웃으며 일어나는 사람. 부모님 속을 한 번도 안썪이고 착하게 살아온 사람. 주변에 이런 사람들을 한 번씩 관찰해 본다. 혹시 같이 자란 형제가 유난히 드세거나 문제가 많았거나 욕심이 너무 많았다거나 하지는 않았는지. 아니면 부모가 제대로 돌봄을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상황이었는지. 정말 평탄하고 무난하게 살아서 외동으로 자란 경우 성격에 아무런 그늘이 없을 수도 있지만, 만약 후자의 편이라면 그것은 '가리어진 그늘' , '상대적 그늘'인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이 거쳐가는 그런 과정, 마음의 복잡함과 상대성을 배워가는 그 과정을 익혀야 할 시기를 가질만한 여유조차도 없이 누군가를 도와주고 인생을 버텨내야 했던 건지도 모른다.  나 역시 오빠의 사춘기를 보면서 나는 저러지 말아야지 많이 각성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많이 자신을 미루고 살았다. 그때는 자기중심적으로 살아가는 그가 정말 이상해 보였으니.

그런 나를 포함한 동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말이 있다. '자연스럽게 감정을 흘러가게 내버려 두자. 그러나 내가 쏟아내는 건 언젠가 내가 치워야 한다'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감정의 쓰레기 통으로 만드는 건 부적절한 일이다.


악동뮤지션을 보다가

하고 싶은거 다하는 현실남매


둘의 인터뷰는 남매로 살아간다는 게 무엇일까 생각하게 한 계기였다. 어쨌든 둘은 서로 떨어질 수 없는 팀이다. 힘들더라도 맞춰야 한다. 그러나 맞는 만큼 서로 다르고 서로 어긋난다. 같은 무대에 서도하고 싶은 것이 다르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해도 웃으며 넘어가야 한다. 그런 상황에서 갈등이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어렵다. 동생은 오빠를 참느라. 오빠는 답답한 것을 참느라.

하지만 사람도 음악도 완성본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 각자가 겪는 변화를 그대로 다 드러내며 사는 건 당연한 일이다. 늦게 온 사춘기를 번갈아 겪는 것도 그것을 서로 참아내는 것도 서로의 부재와 공백을 견뎌내는 것도 받아들이는 게 맞다. 언제나처럼 고정된 모습으로 인형처럼 살아가는 것이 정신적인 억압과 스트레스로 작용한다고 생각할 때.

정말로 변하지 않는 것은 그들이 음악이라는 하나의 요소로 뭉친다는 것. 같이 해나가야 할 공통의 요소가 있다는 것. 적어도 본인이 책임지고 있는 음악이라는 분야에서 만큼 프로라면 충분하다. 직업의식으로서의 윤리, 자신의 음악을 들어주는 사람에 대한 인지를 깨달을 때 비로소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닐까.

유퀴즈에 나온 두 남매의 현실문자..


항상 잘난 오빠 그 밑의 순종적인 동생. 어릴 때는 이 질서가 고정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질서는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다. 오빠는 약해질 수도 있고 동생이 강해질 수도 있으며 각자의 장점으로 서로를 도와줄 수도 있다. 앞서가다 뒤처지면 서로 밀어줄 수도 있는, 그러나 결국은 같이 가는 그런 관계. 결국 60이 되고 70이 되었을 때 내가 좀 더 늙었으니 젊었으니 툭탁거릴 수 있는 서로 닮았지만 너무나 다른 존재. 그게 남매가 아닐까. 그나마도 세월이 흐르면 얼굴 볼 기회조차 없어지지는 것 조차 현실남매의 삶이란게 안타까울 뿐.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 이 무거운 침묵을 깰 수 있다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