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 예외는 없다
작년 10월, 독일 폭스바겐이 공장 3곳 철수와 대규모 인원 감축을 발표했다. 독일 자동차 산업의 대표 주자이자 자존심인 폭스바겐조차 글로벌 경쟁, 높은 인건비, 에너지 비용, 복잡한 규제 등의 문제들 때문에 결국 이런 초강수를 둔 것이다. 독일 내에서 충격이 컸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자동차 수요에 비해 과잉 생산이 이루어지고 있었고, 회사 입장에서는 비용 절감 조치를 반드시 시행해야 했기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을 것이다.
결국 12월에 노사 협의 끝에 공장 폐쇄는 철회했고, 2030년까지 3만 5천 명을 단계적으로 감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강제 정리해고 대신 퇴직 프로그램과 노령 근로시간 단축 등 '사회적으로 허용되는' 방식을 통해 인력을 감축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해고나 다름없다. 이미 해고 대상자 명단에 오른 사람들은 회사에서 아껴야 할 '비용'으로 분류된 것이기에, 위에서 아무리 "너는 훌륭한 직원이다. 다른 자리를 찾아보겠다. 기다려 봐라."라고 말해도 현실적으로는 대부분 해고될 가능성이 크다.
코로나가 끝나갈 무렵,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작된 테크 기업들의 대량 해고 바람이 베를린으로도 번졌다. 그 시기에는 친구나 지인을 통해 두세 다리 건너면 해고된 사람을 쉽게 만날 수 있을 정도였다. 내가 속한 엑스팻 페이스북 커뮤니티에서는 독일 실업자 수당 신청 방법을 묻는 질문들이 평소보다 급증했다.
'운 좋게' 직장을 유지한 사람들조차 불안한 상황이었다. 회사가 '더 이상의 해고는 없다'고 공언해도, 매니지먼트와 재무 부서에서 비용 절감이 필요하다는 결정을 내리면, 몇 달 만에 또 다른 해고가 이어지는 경우를 자주 봤다.
그러던 작년 12월 중순부터 해고 소식이 또 다시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지인들이 갑자기 링크드인 프로필을 'Open to Work'으로 바꾸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었다. 이 해고 바람은 크리스마스를 기점으로 끝나는 듯했지만, 1월이 되면서 매니지먼트 회의 후 새로운 경비 절감 계획이 발표되었다.
우리 회사도 예외는 아니었다.
작년 10월에 이어 또다시 해고가 진행되었고, 특히 흡수 합병된 회사의 영국 본사에서 큰 타격을 받았다. 베를린 오피스에서도 3명이 나갔는데, 이들 역시 합병된 회사의 직원이었다. 이유는 포지션이 겹쳐 비용 절감을 위해 불필요하다고 판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지난주에 영국에 있는 내 최종 면접관이자 두 단계 위의 보스가 갑자기 팀즈로 전화를 걸어왔다. 점심시간이라 놓쳤지만, 두 번이나 시도한 것을 보고 다시 전화를 걸었다. 보스는 빙빙 돌려가며 "비용 절감 조치"와 "런던 매니지먼트 회의" 이야기를 꺼냈다. '내 차롄가...' 순간 엄청난 불안감이 엄습했다.
결론적으로 나는 해고되지 않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게 전화를 건 보스가 해고되었다.
그녀는 합병된 회사에서 5년 넘게 일했던 매니저였는데, 미국 팀과 역할이 겹친다는 이유로 해고되었다.
(다른 이야기지만, 이렇게 따지면 세일즈가 가장 강함 미국 팀의 입김이 가장 센 것이 확실하다. 아이러니하게도 모든 인수 합병한 기술을 보유한 회사들을 독일 회사라는 것이다. 확실히 미국이 자본력도 강하고, 큰 소비 시장인 것은 확실하다.)
참 그 상황에서 뭐라고 위로를 해야할지 말이 나오지가 않았다. 물론 그녀는 돈을 잘 버는 남편이 있고, 사랑스러운 아이들 2명도 있고, 에딘버러에 정말 예쁜 2층 집고 있고, 대기업부터 작은 기업까지 잔뼈 굵은 경험이 있기에 그녀가 더 좋은 기회를 얻을 것이란 사실과 그녀의 웰빙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지만 커리어 경험이 많든 적든, 해고를 당한다는 것은 정말 별로인 기분이다.It just sucks. :*(
그녀는 정말 나이스하게도 "그래도 내가 떠나니까 너와 XX(내 바로 위 시니어 디렉터)가 더 성장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기는 거니까 좋은거야. 너는 정말 잘하고 있고, 나 말고 우리 팀 잡은 다 안전하니까 걱정하지마." 라고 말을 해주는데, 눈물이 줄줄... 내가 이렇게 말했다. "너무 고마워. 정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너도 알지, 아무도 안전하지 않아..."
"너무 고마워. 정말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너도 알지, 아무도 안전하지 않아..."
안그래도 이전 직장의 아시아 오피스(싱가폴)를 본사에서 문을 닫는 결정을 내렸고, 내 아시아 오피스의 직원들이 하루 아침에 직장이 사라진 사실에 완전 충격받았는데.....작년 9월엔 보스톤에 본사를 둔 홈데코 기업인 Wayfair가 베를린에 위치한 독일 지부를 전체 폐쇄해서 무려 800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해고됐다.
소식을 들은 금요일 오후 내내, 아니 지금까지도 나는 마음이 복잡하다. 내 바로 위 시니어가 궁금한 것이 있으면 편하게 물어보라고 월요일 1:1 미팅에서 자세히 이야기하자고 나를 배려해줬다.
정말 너도나도 살기 힘들다고 하는데, 코로나 이후로 자르기 힘들다고 알려진 유럽의 회사들조차 '경영 악화', '경비 절감' 등의 이유로 너무 쉽게 사람을 자르는 모습을 보게 된다. 무섭게 치솟은 물가, 에너지 비용, 집세, 공보험 비용까지. 예전에는 반쯤 농담으로 "그래, 정말 살기 힘들어졌어."라고 말했지만, 이제는 그 말이 현실로 뼛속까지 느껴진다. 문제는 암울한 세계 경제, 아니 독일 경제다. 경제가 활발하다면, 설령 해고를 당하더라도 다음 직장을 비교적 수월하게 구할 수 있다. (물론 이 수월함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그러나 지금 베를린만 봐도, 해고 후 1년 넘게 직장을 구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여기에 더해 느린 행정 절차, 변화를 거부하는 분위기, 고소득 합법 이민자마저 배척하려는 극우 정당의 득세, 탈원전 정책은 좋은 의도였겠지만 서민들을 괴롭히는 폭등한 에너지 비용까지… 독일 경제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
내가 생각했을 때 해고의 가장 큰 문제는 정신 건강에 미치는 악영향이다. 자기 비난과 자괴감에 빠지게 된다. 자신의 잘못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내가 못나서 잘린 거야."라는 생각이 들고, 앞으로 더 나은 미래를 설계해야 할 동력을 갉아먹는다. 여기에 경제적 고충까지 더해지면 삶이 갑자기 땅바닥에 내리꽂히는 기분이다. 길거리의 노숙자 중에서도 10년 전만 해도 멀쩡하게 수트를 입고 출근하던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씁쓸하다.
굳이 긍정적으로 생각하자면, 이런 위기를 기회로 삼아 더 열심히 배우고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안감과 무기력감이 더 크다. 열심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저 대체 가능한 소모품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런 불안한 감정에 사로잡히기보다는, 마음을 다잡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이 지금 가장 필요한 것 같다. 결국, 회사가 나를 내보내기 전에 내가 먼저 준비를 마치고 떠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