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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ice Oct 26. 2024

결국 행복하지 않았다

행복을 찾아 떠난 해외 살이, 그 끝자락에서

내가 한국을 떠난지도 벌써 거의 7년이 다 되어 간다. 


시작은 남들처럼(!) 호기로운 퇴사였다. 


아직도 기억나는 마지막 날 집으로 향하던 너무나 익숙했던 - 6년 넘게 다니던 회사였다 -

4호선 동대문 역으로 향하던 차가운 12월의 밤바람에도 나는 홀가분하게 웃고 있었다. 

지치고 빡센 대기업 문화가 너무 싫었다. 밥 먹듯한 야근에 고집불통 같은 수직 문화... 

그래서 퇴사 시 너무 행복했다. (사실 지금도 후회는 -1000% 없다)


20대 중반의 정신이었니, 뭔들 무서우랴.


퇴사에서 백수로 백수는 모은 돈을 해외 공부(MBA)에 눈을 돌리게 만들었고,

학교를 알아보려 우연히 참가했던 현지 Summer School Program은 그냥 준비랄 것도 없이 나를 해외 살이 외노자로 이끌었다. (캐리어 2개로 시작 - 겨울 옷을 엄마가 부쳐줘야 했다)


아무 계획 없이 시작한 해외 살이는 마냥 행복했다.


젊은 나이답게 "것봐라, 하면 되잖아"라는 자신감으로 우쭐했다.


걸핏하면 들려오는 인종차별도,

은근한 일부 로컬 동료들의 인종차별적 발언도

로컬 브랜드와의 협력에서 은근히 배제되는 박탈감도,

어마무시 독일 세금 떼고 집세 내고 뭐 하면 남는 거 정말 없는 박봉도,

집에 가면 혼자 밥 먹는 것과 연휴에도 혼자인 것도,


상관없이 그냥 다 좋았다. 

난 혼자 원래 잘 놀았으니까.

한국에서도 어차피 독립하면 똑같은 삶 아닌가? 라고 자조하며.


그렇게 처음에는 너무 좋아서 3년을

중간에는 그냥 익숙해져서 1년 반을 보내니

코로나가 터졌다.


향수병은 미친듯이 밀려왔고,

회사는 구조조정에 살벌했고, 

우크라이나 사태로 마구 오른 에너지 경비와 미친 물가는 오른 집세와 슈퍼에서 실감했다.


독일에 정착하려고 온 것은 아니였기에 영주권도 굳이 따지 않은 나는 '한국에 가야하나'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딸 생각은 없었다. 독일에서 살거야? 물으면 1초만에 '아니'라고 답이 늘 튀어나오기에 굳이 왜...라고 생각했다. 여기세 나를 묶어두기도 싫었다. 솔직히 말하면 한국이 싫어서 탈출한 사람들처럼, 한국 아니고 선진국이면 돼, 라는 마음으로 싫고 여전히 이방인이고 차별 당하지만 영주권을 거지 같은직장에서 지옥같은 시간을 버티며 살고, 그래서 영주권을 따도 별로 나아지지 않은 이방인 상태의 삶을 보면 '비자'라는 이유로 마음에도 없는 나라에 나를 묶어두기가 싫었다는 알량한 자존심이랄까. 만약 비자가 갱신되지 않아서 나가야 한다면, 아쉽긴 해도 '뭐 그런가보다' 할 자신이 있었고, 지금도 그렇다.)


몇 번의 이별과 한 때는 베프였으나 문화적 차이 등으로 쉽게 멀어지는 가변운 친구 관계 등..


그렇게 2023년에도 나는 혼자 밥을 꾸역 꾸역 먹고, 더 잦아진 홈오피스로 미팅 외에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 날들도 잦아졌다. 그래서 지난 1년 간 계속 나에게 질문했다. 


"나, 여기서 뭐 하는거지?"



정확히 말하면 "뭘 바라고 계속 있는거니?" 였고, 

답은 늘 "....모르겠어." 였다.


그러다 한 지인을 만났다. 


"해외에 산다고 자랑은 아니지만..."을 말끝마다 부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 지인은 전공과 전혀 상관없는 막노동에 가까운 일을 비자 때문에 연봉 3천도 안되는 돈에 (세금 때면....) 4년이나 하고 있었고 마치 영주권만 따면 다 될 거라는 듯이 말을 했다. 그런데 독일이라는 나라를 딱히 좋아하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과연 영주권을 딴다고 삶이 나아질까?, 그리고 이 사람은 행복할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아차' 싶었다.

어쩌다 흘러온 해외 살이에 미련한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나 같았달까.


나도 말은 '독일 미련 없다'라고 하지만 굳이 기어나온(!) 해외인데 다시 들어가기 싫다는 고집이 아니었을까.


지금도 여전히 사람들이 '해외(즉, 미국/캐나다/호주, 영국, 일부 유럽 선진국만 포함) 살면 좋겠다'라고 하지만, 얼마나 많은 이들이 정말 볼품없이 사는지 모를 것이다. 우물쭈물 자신의 권리조차 내세우지 못하는 일이 태반이고, 그래놓고 한국 커뮤니티에 서로 한풀이가 한 가득이다.


당연히 오히려 더 나은 삶을 펼친 사람도 많다. 나도 안다.

그런데 나는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도 미련을 버리지 못하는 곰처럼 그렇게 꾸역꾸역 맛없는 밥을 먹듯 눌러 살고 있었던 것이다.


'안 되면 어디든 가지, 아님 한국 가도 되고.' 하던 호기는 다 어디갔을까.

더 열린 세상을 보려고 나왔는데, 오히려 시야가 좁아진 것은 아닐까.


무엇보다도 더 행복하려고 왔는데, 

결국 행복하지 않(았)다.


#해외살이 #베를린 #해외취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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