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멈춘 사람들 (上)

착한 사람들이 왜 정치 앞에서는 악마가 되는가?

by 동이의덕왕

생각을 멈춘 사람들 (上)

착한 사람들이 왜 정치 앞에서는 악마가 되는가?

생각을 멈춘 사람들.jpg


프롤로그: 계엄의 밤, 그리고 여전히 우리는 싸운다


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한 지 1년이 지났습니다.

지나고 생각해 보면 참으로 급박했던 시절이었습니다. 국회의원들은 경찰과 군의 저지선을 뚫고 국회로 달려갔고, 6시간 만에 만장일치로 계엄 해제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전 세계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저력에 찬사를 보냈습니다.


하지만 그날부터 SNS는 전쟁터였습니다.


"이게 나라냐", "반국가 세력을 척결하기 위한 정당한 통치행위였다”, “시민이 민주주의를 지켰다", "반역자를 처단하라", “빨갱이 놈들” 등 같은 사건을 보면서도 우리는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진정되었을까요?


아닙니다. 오히려 더 극렬해졌습니다.


SNS과 커뮤니티 게시판을 열면 증오의 언어가 넘쳐납니다. 커뮤니티는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전쟁터가 되고, 직장에서는 정치 성향만으로 사람을 재단하며, 대학가에서는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친구를 끊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이들 대부분이 평소에는 착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입니다. 이웃에게 친절하고, 자녀를 사랑하고, 직장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평범한 시민들입니다. 그런데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눈빛이 변합니다. 마치 스위치가 켜지듯, 다른 사람이 됩니다.


언론과 유튜브, SNS는 이 광기에 기름을 붓습니다. 클릭을 위해, 조회수를 위해, 그들은 점점 더 자극적인 제목을 뽑아냅니다. "충격", "경악", "이것은 반역이다", "나라가 망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맹목적으로 소비합니다. 팩트를 확인하지도 않고, 맥락을 살피지도 않고, 그저 우리 진영의 서사에 맞으면 무조건 공유하고 분노합니다.


저는 이 광경을 보면서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왜 이럴까?


착한 사람들이 왜 정치 앞에서 악마가 될까? 합리적이어야 할 지식인들이 왜 진영논리에 갇힐까? 사랑하는 가족이 왜 정치 때문에 등을 돌릴까?


평소 이 문제를 궁금해하던 중, 회사 게시판의 한 독자님께서 똑같은 궁금증을 가지고 계시고 이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자는 댓글을 달아 주셨고, 마침 좋은 시기라 생각하여 몇 주간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하여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왜 그렇게 행동하고 반대편의 사람을 눈엣가시처럼 여길까요? 이것은 단순히 "사람들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이것은 구조적이고 과학적이며 체계적인 현상입니다. 우리의 뇌가, 우리의 진화가, 우리의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는 방식의 문제입니다.


과학의 렌즈로, 심리학의 도구로, 사회학의 통찰로, 그리고 역사의 교훈으로, 정치적 극성화가 무엇이고, 왜 발생하며, 무엇보다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살펴보고자 합니다.


특히 20세기 가장 위대한 정치철학자 중 한 명인 한나 아렌트의 저서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서 나온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중심축으로 삼겠습니다. 그녀는 나치의 홀로코스트를 주도한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을 관찰하며 충격적인 발견을 했습니다: 악은 악마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라, 생각을 멈춘 평범한 사람들에게서 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제가 알기로, 이것은 정치적 극성화를 이해하는 가장 강력한 열쇠입니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한나 아렌트 - 교보문고.jpg


이 글은 네 파트로 구성됩니다.


PART 1에서는 에른스트 블로흐의 “비동시성의 동시성”과 한나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 개념을 살펴보고, 이것이 현대 정치 극성화와 어떻게 연결되는지 살펴봅니다.

PART 2에서는 왜 착한 사람들이 생각을 멈추는지, 뇌과학, 진화생물학, 심리학, 경제학의 관점에서 살펴봅니다.

PART 3에서는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대해 여러 사례들과 함께 과학적으로 검증된 구체적 방법들과 이를 개인차원에서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프로토콜까지 살펴보겠습니다.

PART 4에서는 투자자의 관점에서 생각을 살펴봅니다. 정치적 편향이 어떻게 투자자의 포트폴리오를 망칠 수 있는지, 그리고 진정한 투자자는 어떤 마음가짐을 가져야 하는지 이야기하겠습니다.


긴 여정이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여정을 함께 걸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지금, 선택의 기로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계속 증오의 소용돌이에 갇혀 살 것인가, 아니면 생각을 되찾고 대화를 복원할 것인가. 답은 우리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참고로 오늘의 이야기는 정치적 판단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이 글을 토대로 많은 분들이 함께 생각을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며 어느 한쪽이 옳다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또한 여기에 나오는 사례와 실천적 방법들에 대해서도 반드시 옳다고 단정 짓지 않으며 판단은 각자의 몫임을 미리 밝힙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PART 1: 생각을 멈춘 순간, 악마가 깨어난다


0. "생각하는 것을 멈춘다"는 것은 무엇인가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잠시 "생각을 멈춘다"는 개념 자체를 짚고 넘어가겠습니다.

사실 "생각을 멈춘 사람들"이라는 표현은 우리 시대의 가장 심각한 문제를 지적하는 핵심 개념입니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이 주제는 학술서에서부터 대중문화까지 다양한 형태로 등장해 왔습니다.


니콜라스 카의 베스트셀러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인터넷과 디지털 기술이 인류의 사고 능력에 미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경고합니다. 그는 "인류의 사고 능력은 기술 혁명의 희생양이 되었다"고 주장하며 큰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클릭 한 번으로 무한한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시대, 우리는 정말 더 많이 생각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역설적으로 생각하기를 멈추고 있는 것일까요?


더 거슬러 올라가면, 20세기의 위대한 철학자 버트런드 러셀의 <생각을 잃어버린 사회>를 만나게 됩니다. 러셀은 "인간은 이성적인 동물"이라는 통념에 정면으로 도전합니다. 그는 현대 사회에서 사람들이 생각하기를 멈추는 현상을 날카롭게 분석했습니다. 러셀이 활동하던 20세기 초중반, 파시즘과 전체주의가 유럽을 휩쓸던 그 시기에도 "생각을 멈춘 사람들"의 문제는 핵심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진지한 주제는 의외의 장소에서도 등장합니다. 바로 일본의 유명 만화 <죠죠의 기묘한 모험>입니다.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는 이 작품에서 유래한 인터넷 유행어로, 등장인물 카즈가 생각하기를 멈추고 영원히 우주 공간을 떠돌게 되는 장면에서 비롯되었습니다.


Clipboard - 2025-12-07 19.59.49.png 죠죠의 기묘한 모험에 나오는 카즈


재미있게도, 이 만화적 표현은 우리가 다룰 주제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습니다. 카즈는 절대적인 힘을 얻었지만, 바로 그 순간 생각을 멈추고 영원한 정지 상태에 빠집니다. 이것은 강력한 메타포입니다. 우리가 절대적 진리를 가졌다고 확신하는 순간, 우리는 생각을 멈춥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우리는 성장을 멈추고 고립됩니다.


정치적 극성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100% 옳다", "그들은 100% 틀렸다"는 확신의 순간, 우리는 카즈처럼 생각하는 것을 그만둡니다. 그리고 영원히 우주 공간을 떠도는 카즈처럼, 우리도 대화가 불가능한 고립된 공간에 갇히게 됩니다.


러셀이 지적했고, 니콜라스 카가 경고했으며, 심지어 대중문화까지 표현한 이 "생각 정지" 현상. 이것이 바로 우리가 오늘 탐구할 핵심입니다. 그리고 한나 아렌트는 이 현상의 가장 극단적인 결과를 아이히만의 재판정에서 목격했습니다.



1. 아이히만의 얼굴: 악은 왜 평범한가


"가장 큰 악은 평범한 사람들이 저지른다. 그들은 동기도 없고, 신념도 없고, 악마성도 없다. 단지 생각하기를 거부했을 뿐이다." -한나 아렌트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


1961년 예루살렘. 수백만 유대인을 죽음의 수용소로 보낸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이 열렸습니다. 전 세계는 어떤 괴물이 등장할지 궁금해했습니다.


Clipboard - 2025-12-08 23.00.26.png 좌: 2차 대전 당시의 아돌프 아이히만 / 우: 아르헨티나에서 모사드에 의해 이스라엘로 납치되어 전범재판을 받고 있는 모습


그런데 법정에 나타난 아이히만은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평범했습니다. 중년의 대머리 남자. 안경을 쓰고, 진부한 말만 반복하고, 자신의 경력 승진에만 관심이 있던 관료. 재판을 담당한 정신과 의사는 그를 "완전히 정상적인 사람, 오히려 검사를 받은 나보다 더 정상"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마치 여러분의 직장 동료나 아파트 이웃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본 한나 아렌트는 충격을 받았습니다. 나치 독일을 피해 망명한 유대계 철학자였던 그녀는 이 재판을 직접 보기 위해 예루살렘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발견한 것은 악의 새로운 얼굴이었습니다.

아렌트는 이것을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 명명했습니다. 아이히만은 악마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단지 생각하지 않았을 뿐입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을 관찰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의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그가 말할 수 없는 것과 생각할 수 없는 것 사이에 밀접한 연관이 있음이 명백해졌습니다. 즉,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능력의 부재 말입니다. 깊이도 없고 악마성도 없습니다. 단지 타인이 경험하는 것을 상상하기를 거부하는 것뿐입니다. 그것이 바로 악의 평범성입니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인간이 아닌 "숫자", "통계", "해결해야 할 문제"로 봤습니다. 자신은 단지 "명령을 따랐을 뿐"이라 주장했습니다. 칸트의 정언명령을 인용하며 자신을 "이상주의자"라 불렀지만, 칸트를 완전히 오해했습니다. 그는 "보편 법칙"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고, 단지 "명령에 복종"하는 것으로 왜곡했습니다. 무엇보다, 그는 죄책감이 없었습니다. 그가 느낀 것은 오직 "임무를 완수하지 못한 아쉬움"뿐이었습니다.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아이히만과 우리는 무슨 상관일까요?

안타깝게도, 많은 상관이 있습니다.



2. 당신의 이웃이 아이히만이 되는 순간

정치 이야기만 나오면 평소와 다른 사람이 되는 당신의 지인을 떠올려 보십시오.

그 사람도 아이히만처럼 "생각을 멈춘" 것입니다.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거부합니다. 반대 진영 사람들의 고통이나 두려움, 합리적 이유를 상상하지 않습니다. 대신 진부한 슬로건만 반복합니다. "그들은 다 ○○이야", "이건 상식이야", "명백한 사실이잖아".

아렌트가 아이히만에게서 발견한 것과 똑같은 특징입니다: 무사고(thoughtlessness). 생각의 부재. 숙고의 거부.


물론 규모의 차이는 있습니다. 아이히만은 대량학살을 조직했고, 우리는 SNS에 혐오 댓글을 다는 정도입니다. 하지만 메커니즘은 놀랍도록 유사합니다.


스탠리 밀그램의 유명한 전기충격 실험(1961)을 기억하십니까? 평범한 사람들의 65%가 권위자의 명령에 따라 타인에게 치명적 수준의 전기충격을 가했습니다. 밀그램은 이 실험이 바로 "악의 평범성"을 입증한다고 말했습니다.

밀그램.png


2017년 폴란드 SWPS 대학의 Dariusz Doliński 연구팀이 밀그램 실험을 재현한 결과(실험은 2015년 실시), 여전히 90%의 참가자가 최고 레벨 전기충격을 가하는 데 동의했습니다. 2020년대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명령", "규칙", "집단의 압력" 앞에서 생각을 멈춥니다.


정치적 극성화는 바로 이 지점에서 무섭습니다. 우리는 정치적 신념을 "진리"나 "상식"으로 포장하고, 반대 의견을 "명백한 오류"나 "악"으로 규정하며, 집단의 압력을 통해 개인의 사고를 억압합니다.

이 모든 과정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생각을 멈춥니다.

그리고 주변에서 그런 이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평범한 이웃은 당신 자신일 수도 있습니다.



3. 생각의 죽음이 가져오는 것들

아렌트는 <정신의 삶(The Life of the Mind)>에서 이렇게 물었습니다.

"생각하는 행위 자체가 악을 예방할 수 있을까?"


그녀의 답은 조심스러운 긍정이었습니다. 생각하는 행위, 특히 자기 자신과의 대화(내적 대화)는 우리가 타인과의 관계에서 일관성을 유지하도록 만듭니다.


나 자신과 평화롭게 살고 싶다면, 내가 타인에게 행하는 것과 내가 스스로에게 말하는 것 사이에 모순이 없어야 합니다. 이것은 강력한 도덕적 제약입니다.

하지만 정치적 극성화는 정확히 이 "생각하는 행위"를 차단합니다. 어떻게?


첫째, 사고의 외주화입니다. 우리는 복잡한 문제를 스스로 사유하는 대신, 우리 진영의 "전문가"나 "리더"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아이히만이 나치 이데올로기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한 것처럼, 우리도 정치적 진영의 서사를 무비판적으로 내면화합니다.


둘째, 언어의 진부화입니다. 아렌트는 아이히만이 "진부한 말만 반복"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정치적 극성화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좌파 빨갱이", "수구 꼴통", "이게 나라냐", "적폐 청산" - 이런 진부한 표현들은 사고를 대체합니다.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정답이 정해져 있으니까요.


셋째, 타자의 비인간화입니다. 아이히만은 유대인을 인간이 아닌 "통계", "숫자", "처리해야 할 문제"로 봤습니다. 오늘날 정치적 극성화에서도 반대 진영은 "적", "빌런", "악"으로 프레이밍 됩니다. 일단 누군가를 인간 이하로 규정하면, 그에 대한 공격은 도덕적 문제가 아니게 됩니다.



4. 데이터가 말하는 극성화의 실체

수치로 봅시다. 미국 퓨 리서치 센터의 2022년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원과 공화당원의 호감도 차이가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습니다. 1994년에는 평균 17포인트였던 차이가 2022년에는 63포인트로 확대되었습니다.


더 무서운 건 "부정적 당파성(negative partisanship)"의 증가입니다. 즉, 자기 정당을 지지해서가 아니라 상대 정당을 혐오해서 투표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는 것입니다. 2016년 미국 대선에서 트럼프와 힐러리에 투표한 사람들의 각각 70% 이상이 상대 후보에 대한 혐오가 주된 동기였다고 답했습니다.


우리나라라고 다를까요?

2022년 한국의 사회동향 보고서(통계청/국가통계연구원)에 따르면, 한국의 정치 양극화는 정서적 양극화(affective polarization)가 주된 특징입니다.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지자의 감정온도 차이는 평균 39점으로, 이는 2016년 미국 대선의 정서적 양극화(40.9점)와 거의 동일한 수준입니다.


2023년 28개국 32,000명을 대상으로 한 글로벌 조사에서 한국은 브라질, 멕시코, 프랑스, 영국, 일본, 네덜란드, 독일, 이탈리아와 함께 정치·경제 양극화 위험국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고려대 KU-POPS의 2023년 조사는 더 섬뜩합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르면 결혼 상대로 고려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20대에서 43.7%에 달했습니다. 즉, 젊은 세대의 절반 가까이가 정치적 이유로 사랑하는 사람을 포기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경제적 양극화가 이를 더욱 악화시킵니다. 2025년 1월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소득 상위 10%와 하위 10% 가구 간 소득 격차가 처음으로 연 2억 원을 초과했고, 자산 격차는 15억 원 이상으로 벌어졌습니다.


이것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닙니다. 이것은 아렌트가 말한 "생각의 죽음"이 사회 전체로 확산되는 현상입니다. 우리는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를 거부하고, 오직 우리 진영의 서사만을 진리로 받아들이며, 반대 진영을 인간 이하로 취급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요? 왜 착한 사람들이 정치 앞에서 악마가 될까요?



5. 에른스트 블로흐의 통찰: 같은 공간, 다른 시간

답을 찾기 전에, 또 다른 20세기 철학자의 통찰을 빌려봅시다. 독일의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에른스트 블로흐(Ernst Bloch)입니다. 아렌트가 "악의 평범성"으로 무사고의 메커니즘을 밝혔다면, 에른스트는 "비동시성의 동시성(Gleichzeitigkeit des Ungleichzeitigen)"이라는 개념으로 극성화의 구조를 설명합니다.


같은 시간, 다른 세계

에른스트의 핵심 통찰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2025년이라는 똑같은 물리적 시간을 살고 있지만, 사람들의 의식과 가치관은 각기 다른 역사적 시간대에 머물러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달력을 보지만, 서로 다른 시대를 살고 있는 것입니다.


계엄의 밤을 예로 들어봅시다. 같은 사건을 목격했지만, 사람들의 반응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왜일까요? 에른스트의 렌즈로 보면 명확해집니다.


그룹 A - 현재의 시간에 사는 사람들

이들에게 2025년은 정말로 2025년입니다. 민주주의 절차와 현대적 법치 시스템이 당연한 21세기를 살고 있습니다. 헌법은 최고의 규범이고, 국회는 국민의 대표이며, 군은 정치에 개입해서는 안 되는 존재입니다. 이들에게 계엄은 "있을 수 없는 과거의 야만"입니다. 마치 중세의 마녀사냥이나 공개 교수형을 21세기에 다시 하자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것입니다.


그룹 B - 과거의 시간에 사는 사람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의 의식은 여전히 1960-70년대, 혹은 1980년대에 머물러 있습니다. 이들이 살고 있는 "마음속 시대"에서는 국가의 안보나 위기 상황에서 강력한 공권력이나 군사적 개입이 가능했습니다. 5.16 군사정변도, 긴급조치도, 광주의 계엄도 그 시대에는 "국가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으로 정당화되었습니다. 이들에게 계엄은 "가능한 해결책의 하나"입니다. 극단적 위기에는 극단적 수단이 필요하다는 논리입니다.


시대착오의 충돌

결과는 무엇일까요? 비동시적인 사람들의 동시적 충돌입니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사건을 보면서도, 서로 완전히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만나는 것입니다.


A가 보는 B는 "아직도 쌍팔년도 독재 시대에 살고 있는 미개한 사람들"입니다. 과거에 갇힌 존재, 역사의 진보를 거부하는 퇴행적 인간들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시대착오에 대한 경멸입니다.


B가 보는 A는 "국가 위기를 모르는 철없는 이상주의자들"입니다. 현실 감각이 없는 존재, 안보의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순진한 사람들입니다. 이것도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닙니다. 그것은 현실 감각 결여에 대한 분노입니다.


왜 대화가 불가능한가

에른스트의 개념이 설명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정치적 증오는 정책 차이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서로가 서로를 "말이 통하지 않는 외계인"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다른 시대에서 온 사람처럼 느끼기 때문입니다.


21세기 민주주의 언어로 말하는 사람과 20세기 권위주의 언어로 말하는 사람이 만났을 때, 통역이 불가능합니다. "민주주의", "법치", "인권", "절차" 같은 단어들이 완전히 다른 의미를 갖기 때문입니다. A에게 "법치"는 어떤 상황에서도 지켜야 할 절대적 원칙이지만, B에게 "법치"는 평상시에만 적용되는 상대적 원칙입니다.


에른스트가 본 파시즘의 뿌리

에른스트는 이 개념을 1930년대 독일에서 발전시켰습니다. 왜 독일 사람들이 나치를 선택했는가? 그의 답은 이것이었습니다. 바이마르 공화국 시대 독일에는 여러 "시간대"의 사람들이 공존했습니다. 현대적 도시 노동자들은 20세기를 살았지만, 농촌의 농민들은 여전히 19세기적 가치관을 유지했습니다. 금융 위기와 인플레이션으로 몰락한 중산층은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했습니다.


나치는 이 "비동시성"을 천재적으로 이용했습니다.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에게 "과거의 영광"을 약속했고, 현재에 불만인 사람들에게 "미래의 제국"을 그렸습니다. 모든 비동시적 요소들을 하나의 파시즘적 현재로 통합했습니다.


한국의 비동시성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 사회는 압축 성장을 했습니다. 불과 60년 만에 산업화, 민주화, 정보화를 동시에 겪었습니다. 결과는 무엇일까요? 다양한 "시간대"의 사람들이 한 공간에 밀집해 있는 것입니다.


일제강점기의 기억을 가진 세대, 한국전쟁과 분단의 트라우마를 가진 세대, 독재를 경험한 세대, 민주화 운동을 이끈 세대,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여기며 자란 세대, 디지털 네이티브 세대.


이들은 같은 나라에 살지만, 완전히 다른 "역사적 경험"을 내면화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치는 이 비동시성을 악용합니다. 보수 정당은 과거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동원하고, 진보 정당은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을 동원합니다.


비동시성과 SNS

더 무서운 것은 SNS가 이 비동시성을 강화한다는 점입니다. 알고리즘은 같은 "시간대"에 사는 사람들을 모아줍니다. 필터 버블 안에서, 사람들은 자신의 시간대가 "유일한 시간대"라고 확신하게 됩니다.


A는 자신의 타임라인에서 "당연히 계엄은 반역이다"라는 의견만 봅니다. 그래서 B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충격적입니다. "21세기에 아직도 저런 사람이 있다니!"


B는 자신의 타임라인에서 "당연히 안보가 우선이다"라는 의견만 봅니다. 그래서 A가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위험하게 느껴집니다. "나라가 위험한데 저렇게 순진할 수 있나!"


아렌트와 에른스트의 만남

흥미롭게도, 아렌트의 "악의 평범성"과 에른스트의 "비동시성의 동시성"은 서로 보완적입니다.


아렌트는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설명합니다.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을 멈추고 악에 참여하게 되는가?


에른스트는 "왜 이것이 동시에 일어나는가"를 설명합니다.

같은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는가?


아이히만은 생각을 멈췄습니다. 그리고 나치 독일의 많은 사람들도 생각을 멈췄습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동시에 생각을 멈췄을까요? 에른스트의 답은 이것입니다. 그들은 각자 다른 "시간대"에서 왔고, 나치즘은 이 비동시적 요소들을 하나의 파괴적 현재로 통합했기 때문입니다.


희망은 있는가

다행히도 에른스트의 철학은 비관적이지 않습니다. 그는 "희망의 원리(Das Prinzip Hoffnung)"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비동시성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첫걸음입니다.


우리는 서로 다른 시간대에서 왔습니다. 다른 역사를 내면화했습니다. 이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A는 B가 "악"이 아니라 "과거에 갇혀 있는 것"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B는 A가 "순진한 것"이 아니라 "다른 미래를 보는 것"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함께 "동시적 현재"를 만들어야 합니다. 과거도 아니고 미래도 아닌, 지금 이 순간을 함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이 에른스트가 제시한 해법이고, 이것이 Part 3에서 탐구할 구체적 방법들의 철학적 기초입니다.



PART 2: 왜 우리는 생각을 멈추는가 - 여섯 겹의 덫


6. 첫 번째 덫: 정치를 '생존 위협'으로 착각하는 뇌

인간의 뇌는 약 20만 년 전 아프리카 사바나에서 설계되었습니다. 그 시절, 위협은 명확했습니다. 맹수, 독사, 적대적 부족. 이런 위협 앞에서 뇌는 단순하게 반응해야 했습니다: 싸우거나, 도망치거나, 얼어붙거나.

이 반응을 담당하는 것이 편도체(Amygdala)입니다. 아몬드 모양의 작은 구조물이지만, 우리의 공포와 분노, 그리고 생존 반응을 담당하는 사령탑입니다.


QDRD5Q52ZTQJGCX33PKCTQS5XY.gif 20만 년 전부터 중2병 발생의 원인이 되고 있는 무시무시한 편도체


문제는 편도체가 21세기의 복잡한 정치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편도체에게 정치적 반대 의견은 적대적 부족의 위협과 다를 바 없습니다.


2017년 UCLA의 Jonas Kaplan 연구팀은 40명의 강한 정치적 신념을 가진 피험자에게 fMRI를 통해 그들의 신념에 도전하는 정보를 보여주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정치적 신념에 도전받을 때 편도체와 뇌섬엽이 강하게 활성화되었습니다. 편도체는 생명 위협에 반응하는 부위이고, 뇌섬엽은 상한 음식을 봤을 때 활성화되는 부위입니다. 즉, 뇌는 정치적 반대 의견을 물리적 위협이자 오염원으로 처리한 것입니다.


더 흥미로운 발견은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MN)의 활성화였습니다. DMN은 "자아"와 "정체성"을 담당하는 네트워크입니다. 정치적 신념이 도전받을 때 DMN이 과활성화되었다는 것은, 우리의 뇌가 정치적 신념을 자아의 일부로 저장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정치적 반대 의견은 단순한 "다른 생각"이 아닙니다. 그것은 "나"에 대한 공격입니다.


2006년 Emory 대학의 Drew Westen이 당파적 추론을 연구한 결과는 더욱 충격적입니다. 30명의 강한 당파성을 가진 피험자(민주당 15명, 공화당 15명)에게 자기 진영 후보의 모순된 발언을 평가하게 했습니다. 이 실험의 결과에서 이성적 사고를 담당하는 배외측 전전두피질은 활성화되지 않았습니다. 대신 감정 처리와 관련된 복내측 전전두피질과 전대상피질이 활성화되었고, 편향된 결론에 도달한 후에는 보상 회로(복측 선조체)까지 활성화되었습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정치적 문제를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편향을 확인할 때마다 뇌는 보상을 줍니다. 마치 도박이나 마약처럼 말입니다.


정리하자면 정치적 극성화는 중독입니다. 우리는 우리 진영을 옹호하고 상대 진영을 비난할 때마다 도파민 보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보상 회로는 우리를 더 극단으로 몰아갑니다.



7. 두 번째 덫: 부족주의를 강화하는 호르몬

옥시토신(Oxytocin), "사랑의 호르몬"이라 불리는 이 물질의 이면을 아십니까?

암스테르담 대학의 Carsten De Dreu가 2010년 Science에 발표한 연구는 다소 충격적입니다. 옥시토신을 투여받은 피험자들은 자신의 집단에 대한 신뢰와 협력이 증가했지만, 동시에 외집단에 대한 공격성도 증가했습니다. 즉, 옥시토신은 "사랑의 호르몬"이 아니라 "부족주의의 호르몬"입니다. 우리 편에게는 천사처럼, 남의 편에게는 악마처럼 행동하게 만듭니다.


정치 집회에 참석하거나, 같은 진영의 사람들과 토론할 때, 우리 몸은 옥시토신을 분출합니다. 우리는 연대감과 소속감을 느낍니다. 하지만 바로 그 순간, 반대 진영에 대한 적대감도 함께 증가합니다.


세로토닌(Serotonin), "행복 호르몬"으로 알려진 이 신경전달물질도 우리의 정치적 행동에 깊이 관여합니다. 그러나 그 방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릅니다. Oxford 대학의 Molly Crockett 연구팀이 2010년과 2015년 Science에 발표한 일련의 연구는 세로토닌의 놀라운 역할을 보여줍니다. 연구팀은 피험자들에게 세로토닌 전구체인 트립토판을 투여하거나 결핍시킨 후, 도덕적 딜레마 상황에서의 판단을 관찰했습니다.


결과는 예상 밖이었습니다. 세로토닌 수치가 높을수록 사람들은 "해를 끼치는 것"에 대해 더욱 극단적으로 혐오했습니다. 유명한 트롤리 딜레마(한 사람을 희생시켜 다섯 사람을 구하는 상황)에서, 세로토닌이 풍부한 피험자들은 "절대 한 사람을 밀어서는 안 된다"고 더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이것이 정치와 무슨 관계일까요? 매우 큰 관계가 있습니다.


첫째, 세로토닌은 도덕적 절대주의를 강화합니다. 세로토닌 수치가 높을 때, 우리는 "해를 끼치는 행위"를 더욱 용납할 수 없는 것으로 여깁니다. 이것은 평소에는 좋은 특성입니다. 하지만 정치적 맥락에서는?

우리는 반대 진영의 정책을 단순히 "다른 접근"이 아니라 "도덕적으로 해로운 악"으로 규정하게 됩니다. 타협의 여지가 사라집니다. 왜냐하면 악과는 타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세로토닌과 사회적 지위의 관계는 복잡합니다. 영장류 연구에서 세로토닌은 사회적 계층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지배적 위치에 있는 개체는 높은 세로토닌 수치를 보이고, 복종적 위치의 개체는 낮은 수치를 보입니다.


흥미롭게도, 낮은 세로토닌 수치는 충동적 공격성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Duke 대학의 Michael McGuire가 영장류를 대상으로 한 1980년대 연구는 이를 명확히 보여주었습니다. 세로토닌이 결핍된 개체들은 계획적이지 않은 폭발적 공격성을 보였습니다.


정치적 극성화의 맥락에서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 사회적으로 소외된 위치, 미래에 대한 불안 - 이 모든 것이 만성적으로 낮은 세로토닌 상태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는 정치적 담론에서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반응으로 이어집니다.

SNS에서 폭발적으로 분노하는 댓글들, 이성적 토론 없이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행태들 - 이것은 단순히 "나쁜 성격"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만성적 스트레스와 사회경제적 불안이 만들어낸 신경화학적 상태일 수 있습니다.


셋째, 역설적으로 높은 세로토닌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University College London의 2015년 연구는 세로토닌이 "내집단 선호도"를 강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세로토닌 수치가 높을 때, 우리는 우리 집단의 규범을 더욱 엄격하게 따르고, 외집단의 규범 위반에 더욱 강하게 반응합니다. 반대로 낮으면 충동적 공격성, 사회적 불안, 폭발적 반응이 나타납니다. 어느 쪽이든, 정치적 극성화를 악화시킵니다. 즉, 세로토닌은 양날의 검입니다.


코르티솔(Cortisol), “스트레스 호르몬”이라 불리는 물질도 문제입니다. 장기간 높은 코르티솔 수치는 전전두피질의 기능을 억제하고 편도체의 반응성을 증가시킵니다. 즉, 스트레스를 받을수록 우리는 덜 이성적이고 더 감정적이 됩니다.


그리고 만성적 스트레스는 세로토닌 시스템도 교란시킵니다. 장기간의 코르티솔 노출은 세로토닌 수용체의 민감도를 떨어뜨리고, 세로토닌 재흡수를 변화시킵니다. 결과적으로 우리는 도덕적 판단에서 더 극단적이 되거나, 충동적으로 공격적이 됩니다.


2020년 코로나 팬데믹 동안 정치적 극성화가 급증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 기간 동안 전 세계적인 스트레스 상황은 코르티솔 수치를 높여 편도체를 과활성화시켰고, 세로토닌 시스템을 교란시켜 도덕적 판단을 극단화시켰으며, 옥시토신 분비를 촉진하여 부족주의를 강화했습니다.


그리고 2024년 계엄의 밤 이후 우리의 호르몬 시스템은 정점을 찍고 내달리고 있습니다.



8. 세 번째 덫: 확증편향, 심리적 방어기제의 작동

동기화된 추론(Motivated Reasoning). Dan Kahan(Yale)이 2013년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결론을 먼저 정해 놓고 그에 맞는 증거만 찾습니다. 더 충격적인 것은 교육 수준이 높을수록 이 경향이 강하다는 것입니다.


왜일까요? 똑똑한 사람들은 자신의 편견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만드는 데 더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2012년 Kahan의 연구는 수학 능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된 데이터를 해석할 때 더 큰 편향을 보였음을 발견했습니다.


이것을 "지능의 역설"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 똑똑한 사람은 자신의 편향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더 잘 구성하기 때문입니다. 즉, 교육 수준이 높다고 해서 편향에서 자유로운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더 정교한 자기기만을 할 뿐입니다.


나이브 리얼리즘(Naive Realism)은 이러한 편향을 강화합니다. Lee Ross(Stanford)가 제안한 이 개념은 간단합니다.


"나는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고, 너는 편향되어 있어."


거의 모두가 이렇게 생각합니다. 많은 연구가 사람들이 자신의 나이브 리얼리즘을 인식하지 못함을 보여주었습니다. 즉, 우리는 우리가 편향되어 있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합니다.


Stanford 대학의 Charles Lord가 1979년 발표한 고전적 연구가 이를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사형제도에 대해 강한 입장을 가진 피험자들에게 사형의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를 제시했습니다. 찬성과 반대를 모두 지지하는 연구를 함께 보여주었습니다.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양쪽 모두 자신의 기존 입장을 강화하는 증거만 받아들였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동일한 자료를 본 후 양쪽의 입장이 더욱 극단화되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을 "태도 양극화"라 합니다.


즉, 우리에게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이 현상은 정치적 맥락에서 더욱 강렬합니다. 2015년 PNAS에 발표된 Northwestern 대학의 연구는 정치적 확증 편향이 얼마나 강력한지 보여줍니다. 피험자들에게 정치인의 거짓말을 팩트체크한 자료를 보여주었을 때, 상대 진영 정치인의 거짓말은 즉시 받아들이고 더욱 비난했지만, 자기 진영 정치인의 거짓말은 거부하고 "맥락이 중요하다", "의도가 좋았다", "저 반대편은 더 나쁘다" 등의 변명을 만들어냈습니다.


동기화된 추론이라 불리는 이 현상은 우리가 진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신념을 방어하려 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반대 의견에 노출되는 것이 우리를 더 극단적으로 만든다는 역설적 발견입니다. 왜일까요? 우리는 반대 의견을 정보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공격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현상은 교육 수준이 높고 똑똑한 사람일수록 더욱 강화됩니다.



9. 네 번째 덫: 집단 정체성 – 우리 vs 그들

인간은 진화적으로 부족 동물입니다. 10만 년 전, 호모 사피엔스의 조상들에게 집단에서 배제된다는 것은 죽음을 의미했습니다. 혼자서는 맹수를 피할 수 없고, 사냥할 수 없고, 생존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자연선택은 "진리 추구 본능"이 아니라 "집단 동조 본능"을 선호했습니다. 진실을 찾는 것보다 집단에 남는 것이 생존에 더 유리했기 때문입니다.


2012년 Hugo Mercier와 Dan Sperber는 『The Enigma of Reason』에서 혁명적 주장을 펼쳤습니다: 추론 능력은 진실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을 설득하고 변명하기 위해 진화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의 "이성"은 변호사와 같습니다. 판사가 아니라 말입니다. 변호사는 진실을 찾지 않습니다. 그는 이미 정해진 결론을 옹호할 증거를 찾습니다.


Henri Tajfel과 John Turner의 사회적 정체성 이론은 극도로 단순한 실험으로 입증되었습니다. 사람들을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눕니다. 심지어 동전 던지기로 나누어도 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즉시 자신의 집단을 선호하며, 다른 집단을 차별하고 집단 간 경쟁에서 개인의 이익을 희생했습니다. 심지어 자기 집단의 총이익이 줄어들더라도 상대 집단과의 격차를 벌리는 선택을 했습니다. 즉, "우리가 얼마나 잘 되는가"보다 "그들보다 우리가 더 잘 되는가"가 더 중요했던 것입니다.


정치적 정체성은 이 원시적 회로를 극대화합니다. 2018년 Stanford의 Shanto Iyengar 연구에 따르면, 부모의 42%가 자녀가 반대 정당 지지자와 결혼하는 것을 "불편해" 합니다. 1960년에는 이 비율이 5%에 불과했습니다. 놀랍게도 이것은 인종 간 결혼에 반대하는 비율인 14%보다 높습니다. 정치적 정체성이 인종 정체성보다 더 강력해진 것입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서 언급한 KU-POPS 조사의 20대 43.7%가 정치적 이유로 결혼 상대를 거부하겠다는 응답은, 정치가 단순한 의견을 넘어 정체성의 핵심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집단 정체성은 또한 "집단 사고"를 만들어냅니다. Irving Janis가 1972년 케네디 행정부의 피그스만 침공 실패를 분석하며 발견한 이 현상은, 집단이 합의를 유지하려는 압력 때문에 비판적 사고를 억압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정치적 극성화에서 집단 사고는 더욱 강력합니다. 정당은 현대판 부족입니다. 우리 진영의 잘못을 지적하면 "배신자" 취급을 받습니다. 반대 진영에 대해 온건한 입장을 취하면 "순진하다" 혹은 "매수당했다"는 의심을 받습니다. 극단적 입장일수록 집단 내에서 칭찬받고 지위가 올라갑니다. 결과는 합리적 개인들이 모여서 비합리적 집단을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뉴스로 매일 보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뇌는 여전히 사바나에 살고 있습니다.



10. 다섯 번째 덫: 결핍이 훔쳐 가는 인지 능력

하버드의 Sendhil Mullainathan과 프린스턴의 Eldar Shafir가 2013년 Science에 발표한 연구는 충격적이었습니다. 인도 타밀나두의 464명 사탕수수 농부를 대상으로, 같은 사람을 수확 전(빈곤한 시기)과 수확 후(풍요로운 시기)에 인지 능력 테스트를 했습니다.


동일한 농부가 빈곤한 시기에 13 IQ 포인트 낮은 점수를 기록했습니다. 13포인트 차이는 완전한 수면 부족이나 음주운전 수준의 혈중 알코올 농도에 해당합니다.


이 차이는 무엇 때문일까요? Mullainathan은 이를 "인지 대역폭 세금(Cognitive Bandwidth Tax)"이라 불렀습니다. 가난하거나 스트레스받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걱정에 시달립니다. 이런 걱정이 생각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나면 남는 인지 자원은 없어집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대다수 사람들을 만성적 스트레스 상태로 몰아넣습니다. 일자리 불안정, 주거 비용 상승, 의료비 부담, 노후 불안 등 모든 것이 인지 대역폭을 소진시킵니다.


그리고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2025년 1월, 한국의 소득 격차와 자산 격차가 사상 최대를 기록했습니다. 상위 10%와 하위 10%의 소득 차이는 연 2억 원을 넘어섰고, 자산 차이는 15억 원 이상입니다.


미국 노스웨스턴대의 스콧 베이커(Scott Baker), 스콧 블룸(Nicholas Bloom), 스티븐 데이비스(Steven Davis) 세 교수가 개발한 “경제정책 불확실성(EPU지수: Economic Policy Uncertainty Index)”는 경제 정책의 불확실성 정도를 측정하는 지표입니다.


2013년 경제정책 불확실성(EPU) 지수는 2008년 이후 장기 평균의 약 2배 수준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정치적 극성화가 경제 불확실성을 증가시키고, 이는 다시 스트레스와 인지 자원 고갈로 이어져 극성화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의 고리가 됩니다.


Line chart showing global economic policy uncertainty between 1997 and.jpg


이미 토마스 피케티가 그의 저서 <21세기 자본>에서 말했듯, 전 세계적으로 불평등은 이미 예고된 저주와 같습니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라는 악순화의 고리에 빠진 사람들의 인지 자원은 급속하게 소모됩니다. 인지 자원이 고갈된 사람들은 복잡한 정책을 이해할 여유가 없습니다. 또한 뉘앙스와 맥락을 파악할 능력이 없습니다. 이로 인해 단순한 메시지("우리 대 그들", "선 대 악")에 취약해지며 포퓰리즘과 음모론에 쉽게 빠집니다.


경제적 불평등이 정치적 극성화를 부추기는 악순환이 되는 것입니다.



11. 여섯 번째 덫: 분노를 파는 미디어

마지막 덫은 가장 최근의 것이자, 가장 강력한 것입니다. 알고리즘 미디어입니다.


전통 미디어 시대에는 "게이트키퍼"가 있었습니다. 편집자, 기자, 프로듀서들이 무엇을 보도할지 결정했습니다. 이들이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최소한의 사실 확인과 균형은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소셜 미디어 시대에는 게이트키퍼가 사라졌습니다. 대신 알고리즘이 지배합니다.


현대 미디어와 소셜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은 “관심 경제(Attention Economy)”에 기반합니다. 광고 수익은 사용자의 체류 시간에 비례합니다.


무엇이 사람들을 붙잡아 둘까요? 분노와 공포입니다. 시쳇말로 ‘어그로를 끈다’는 말이 바로 이것에 해당합니다.


2021년 MIT의 Sinan Aral 연구팀이 Science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트위터에서 거짓 뉴스는 진실보다 6배 빠르게 퍼지고, 10배 많은 사람에게 도달하며 20배 많이 리트윗됩니다.


왜일까요? 거짓 뉴스가 더 참신하고, 더 감정적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분노와 혐오를 유발하는 콘텐츠는 가장 빠르게 퍼집니다.


페이스북 내부 문서(2021년 Frances Haugen이 폭로)는 알고리즘이 의도적으로 논쟁적이고 극단적인 콘텐츠를 증폭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사용자 참여를 최대화하기 때문입니다.


유튜브의 추천 알고리즘도 마찬가지입니다. 2019년 Zeynep Tufekci의 연구에 따르면, 유튜브는 체계적으로 사용자를 더 극단적인 콘텐츠로 유도합니다. 예를 들어, 채식 관련 영상을 보면 비건 극단주의 영상을 추천하고, 정치 뉴스를 보면 음모론 영상을 추천하며, 운동 영상을 보면 스테로이드, 극단적 다이어트 영상을 추천합니다. 왜일까요? 더 극단적인 콘텐츠가 시청 시간을 늘리기 때문입니다.


네이버, 다음, 틱톡, 모든 플랫폼이 같은 원리로 작동합니다. "클릭", "조회수", "체류 시간"을 극대화하는 것이 목표이고, 그 목표는 극성화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텔레비전에 나온 “니가 원하는 것만 보여줄게”라는 틱톡 광고의 그 말은 독이 든 사과를 건네는 마귀할멈보다 섬뜩하게 느껴집니다.


우리는 이처럼 우리의 생각을 멈추게 하는 겹겹이 놓인 덫을 마주하고 있습니다. 진화되지 않은 뇌의 구조, 자신을 속이는 호르몬, 편향과 심리적 방어기제, 집단적 정체성, 경제적 결핍에 의한 인지능력 대역폭의 축소, 그리고 미디어의 착취.


이제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해야 합니다.

과연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이번 시간은 여기까지입니다.

드라마도 아니고 정작 중요한 부분에서 자르다니, 너무 하는 거 아니냐고 하실 수도 있지만 한 주에 다 담기엔 분량이 제법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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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제는 제 전공 분야가 아닙니다. 더구나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어느 방향으로든 오해받기 쉬운 주제이기도 합니다. 위험한 곳임을 알면서도 폭탄을 짊어지고 들어가는 제 자신이 미쳤다는 생각이 지금도 들지만, 어차피 한 번은 다뤄야 하는 주제이기에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는 심정으로 이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모두가 납득할 만한 글을 쓰기 위해서 자료를 찾고 이해하며 정리하는 데 유례없이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여러 번 고쳐 썼고, 수없이 검토했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하며 결코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을 것입니다. 현실세계에서 완벽한 라그랑쥬 포인트는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극성화라는 민감한 주제를 다루는 만큼, 최대한 균형 잡힌 시선을 유지하려 노력했지만, 저 역시 어딘가의 편향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입니다. 혹시 이 글에서 불편함을 느끼신 부분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제가 미처 인식하지 못한 저 자신의 편향이며 모자람일 것입니다. 그 점에 대해서 겸허히 인정하며 넓은 아량으로 바라봐 주시길 바랍니다.


그럼에도 이 글이 우리가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하려는 노력의 시작점이 되기를 바랍니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완벽을 향해 함께 나아갈 수는 있습니다. 생각을 멈추지 않고, 대화를 포기하지 않으며, 타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려는 시도를 계속하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리는 조금씩 나아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생각을 되찾기 위한 개인과 사회의 전략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투자자의 마인드와 연결해 보겠습니다.


긴 글 끝까지 읽어주신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도 같이 공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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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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