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예전, 그리고 지금

by 동이의덕왕

오늘은, 그러니까 작년에 원래 있던 부서에서 쫓겨와

새로운 부서에 배치받은 지 딱 1년이 되는 날이다.


작년 이맘때가 생각난다. 큰 강의실에 몇십 명이, 나보다 연배가 몇 살은 더 먹은 사람들과 함께

용기를 가지고 희망을 찾으라는 그 빌어먹을 비디오를 넋 나간 사람처럼 보던 때가.


그 강의가 끝난 뒤 며칠 후, 스무 명이 넘는 사람들이 제 발로 회사를 나갔다.

그중에는 나의 첫 사수였던 김프로도 있었다.


"그러니까 쫓겨나지 병신아"라는 소리부터,

"감정 소비하지 말고 잘 있다가 가시라"는 점잖은 척하지만 결국 비아냥인 말들을 참아야 했다.

버림받은 초라한 자신을 마주하며, 정신을 붙잡을 수 없을 만큼의 비참함 속에서 복도 한복판에서,

그리고 회의실 안에서 소리를 지르고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나를 냉정하게 내쳤던 팀장도, 그룹장도 서로 자기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는 변명만 늘어놓았고

노조도 어쩔 수 없다고 했을 뿐, 그 누구도 나를 구원해 주지 않았다.

두렵고 비참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떤 순간에도 책을 놓지 않았다.

오히려 책으로 도피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비참하고 슬펐지만, 그럴수록 더 책을 읽었다.


그리고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책과 글쓰기로 구원받았다.

펜을 지팡이 삼아 일어서며, 더 단단해진 자신을 느끼며,

소명을 찾기 위한 여행을 다시 시작했다.


예전의 나는 AI 도구를 쓸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나는 프롬프트 엔지니어링 자격증을 땄고 글쓰기는 물론, Claude Max 유저로서 한 달에 110불을 내며 제법 잘 활용하고 있다. 정말 장하다.


예전의 나는 코딩을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나는 바이브코딩을 배우며 앱을 만들고 시연하며, 부족하지만 꾸준히 배워가고 있다. 정말 장하다.


예전의 나는 애니만 보면서 일본어를 공부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5개월간 꾸준히 일본어를 공부해왔고, 이제 한자와 동사를 익히고 있으며 올해 JLPT N4를 목표로 하고 있다. 정말 장하다.


예전의 나는 그저 게시판에 글을 쓰는 사람이었다. 지금의 나는 브런치스토리에 당당히 작가로 선정되었고, 나의 글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 정말 장하다.


예전의 나는 회사 게시판에만 글을 쓰던 사람이었고, 언제까지 계속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지금의 나는 네이버 블로그와 브런치스토리, 밸리에도 글을 쓰고 있으며 네이버 블로그의 구독자는 2,100명이 넘는다. 정말 장하다.


예전의 나는 회사를 언제 떠나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고, 모든 것이 막연했다. 지금의 나는 홀로 살아남겠다 다짐했고, 다시는 누군가에 의해 점수 매겨지며 나의 인생을 타인의 손에 맡기는 일을 거부하며, 떠날 때를 확실히 정했고 그만큼 노력하고 있다. 정말 장하다.


예전의 나는 간절함이 부족했고 안일했다. 지금의 나는 키플링의 시 「If」를 마음속에 새기며,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 일어서리라 다짐한다. 정말 장하다.


예전의 나는 투자에 있어 확실한 성과를 내지 못했고, 마음이 안정적이지 않았다. 지금의 나는 기계적으로 원칙을 지키고 있으며, 얼마 전 자사주도 그렇게 처리했다. 사람들이 폭락에 두려워하며 널뛰기를 해도 나의 마음은 평화롭기 그지없다. 정말 장하다.


예전의 나는 밸리에서 뭔가 대단한 것을 할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품고 있었다. 지금의 나는 적극적으로 글을 쓰며 더 배우려 노력하고 있다. 덕분에 얼마 전에 밸리로부터 옷과 화분까지 받았다. 이 태도는 앞으로 더 강해질 것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말 장하다.


예전의 나는 사람들을 미워하고 원망했다. 지금의 나는 여전히 그 사람들을 완벽하게 용서하지도, 똑바로 쳐다보지도 못하지만 내면은 전보다 고요해졌고, 원망은 사그라졌으며, 조금씩 성숙해지는 것을 느낀다. 정말 장하다.


예전의 나는 정말 많은 시간을 허투루, 부자처럼 썼다. 시간은 마르지 않는 샘물이 아니었고, 나의 젊음 또한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몰랐다. 하지만 새로운 곳에서 많은 것을 깨달았고, 한정된 삶을 참되고 복되게 보내기 위해 더욱 노력하게 되었다. 정말 장하다.


예전의 나는 많은 음악 장비를 가지고 있었고, 그것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지도 않았다. 지금의 나는 「퓨처셀프」를 읽은 후 기타와 맥미니를 팔았고, 그 외 많은 것들을 정리하고 있다. 가장 우선적인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항상 생각하게 되었다. 정말 장하다.


예전의 나는 큰 부상이 없었다. 하지만 새로운 부서에 온 초기에 사고를 당하며 크게 다쳤음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쉬지 않았다. 한 주에 하나씩 보고서라는, 자존심 상하는 숙제를 하면서도 단 한 번도 거르지 않았고, 나의 경력과 짬밥에 어쩌면 하찮아 보이는 임무를, 자존심을 내려놓고 후배에게서 배웠다. 나보다 어린 사람에게 머리를 낮추어 배우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새롭게 배우는 것 또한 두려워하지 않았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 움직였고 그 결과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정말 장하다.


예전의 나는 가족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날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나 자신이 이렇게 불안정한데, 언감생심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지난주, 나는 가족들과 함께 아버지 팔순에 맞춰 여행을 다녀왔다. 비행기와 호텔까지 모두 내 돈으로 해결했고, 배운 일본어를 적잖이 써먹었다. 그들의 행복한 모습에 피곤한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듯했다. 정말 장하다.


회사를 나가서도 그때의 고통을 떠올릴 것이다. 그리고 생각하겠지.

못 이겨낼 것은 없다고. 이것 또한 지나간다고. 중요한 것은 '그래서'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나는 핑계를 대지 않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잡고 생각하며 글을 쓰고 노력하면서 어려움은 지나간다고 되뇔 것이다.


두렵다면, 노력하는 자신을 믿을 것이다.

고민에 빠진다면, 옳은 선택을 하리라 믿을 것이다.

교만하다면, 고통 후에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리라 믿을 것이다.


1년간 어려움 속에서 자신의 자리와 소명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했고 가족을 돌보며, 집안의 대소사를 책임지고 일본어를 공부하고, 글을 꾸준히 쓰며 책을 놓지 않고 발전하기 위해 마른 수건을 쥐어짜듯 항상 노력했던 나는 정말 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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