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머니 속의 전쟁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 철도를 놓으려는 사람들

by 동이의덕왕

주머니 속의 전쟁

폭탄이 떨어진 자리에 철도를 놓으려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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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덕왕입니다.

「모든 전쟁에는 고객이 있다」 상하편에 보내주신 관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많은 분들이 같이 고민해 주셨고 덕분에 덕왕도 하얗게 밤을 불태운 보람을 느끼며 잠시동안의 휴식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상편에서 전쟁의 고객을 찾았고, 하편에서 포트폴리오의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면, 이번 글에서는 그 고객들이 몰래 주문한 '상품'이 무엇인지를 함께 뜯어보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이번 편의 제목은 '주머니 속의 전쟁’입니다. 이것은 1989년에 나온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건담 0080: 주머니 속의 전쟁(ポケットの中の戦争)」의 제목입니다. 아마 건담을 좋아하시는 분이시라면 알고 계시겠지요.

기동전사 건담 0080 주머니 속의 전쟁 - 나무위키.jpg 건담의 팬이라면 놓치지 말아야 할 명작입니다


일년전쟁 말기, 지온군의 과격파 킬링 중령은 연방군이 비밀리에 개발 중인 신형 건담의 정보를 입수합니다. 그는 특수부대 사이클롭스를 파견해 중립 콜로니 '리보'에 숨겨진 건담을 강탈하려 하고, 실패하면 리보에 핵 미사일을 투하해서라도 적에게 넘어가지 않게 하겠다는 잔혹한 계획을 세웁니다.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리보에서 평범하게 살고 있던 초등학생 알프레드가 있습니다. 강대국의 전쟁이 아이의 일상을 파괴해 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그린 명작입니다.


이 작품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이란 전쟁과 놀랍도록 닮은 점이 많습니다. 강대국들이 자신들의 이해관계를 위해 중립 지역을 전장으로 만들고, 그 과정에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 부서집니다. 킬링 중령이 리보에 핵을 쏘겠다고 한 것처럼, 트럼프는 카르그 섬의 석유 시설을 날리겠다고 위협합니다.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면 모든 것을 파괴해서라도 적에게 넘기지 않겠다는 논리. 그리고 리보의 알프레드처럼, 가자의 아이들, 걸프 국가의 시민들, 호르무즈 봉쇄로 기름값에 시달리는 우리 모두가 '주머니 속의 전쟁'을 겪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꺼내 유가를 확인하는 순간, 장바구니의 허전함을 느끼는 순간, 전쟁은 이미 우리의 주머니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번 전쟁은 이념의 전쟁이 아닙니다. 철저히 돈과 이익에 의한, 하지만 해방이라는 명분 속에는 누군가의 꿈과 누군가의 비극이 철저히 감춰져 있습니다.


이 글은 미국-이란 전쟁에 대한 시리즈의 마지막 편이 될 것입니다. 전쟁은 계속될 수 있겠으나, 전쟁을 분석하는 도구와 투자자의 시선은 바뀌지 않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어떤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그 아래 누가 고객이며, 무엇을 얻으려는지 냉정하게 분석하는 습관을 함께 들여봅시다. 그 도구는 이 세 편의 글에 모두 담겨 있습니다.


오늘도 평소만큼 긴 글이 될 것입니다. 덕왕 글의 찐독자시라면 이미 알아서 커피 한 잔을 준비하셨을 것 같습니다. 열차 출발합니다.


1부: 전쟁, 왜 끝나지 않는가?


호르무즈를 잠근 이란


2026년 2월 28일 미국과 이스라엘의 합동 공습 '에픽 퓨리 작전'이 시작된 지 수시간 만에, 이란 혁명수비대(IRGC)는 VHF 채널로 전 세계 선박에 경고했습니다.

"어떤 선박도 호르무즈 해협의 통과가 허용되지 않는다."


전편에서 언급한 바 있듯이 해협의 최협부 폭은 33km이며 이마저도 실제로 유조선이 다닐 수 있는 항로는 편도 3.2km에 불과합니다. 이 바늘구멍을 하루 약 2,000만 배럴의 원유가 통과합니다. 세계 해상 원유 수송량의 약 27%, 전 세계 LNG 교역량의 약 20%입니다.


이란은 이 바늘구멍을 어떻게 막았을까요? 핵항공모함으로? 천만에. 이란이 꺼내든 무기는 훨씬 싸고 교활했습니다. 수천 개의 기뢰, 수백 척의 고속 공격정, 연안에 배치된 대함 미사일, 그리고 떼로 몰려드는 자폭 드론. 적벽대전에서 화공 하나로 조조의 80만 대군을 물리친 제갈량처럼, 이란은 비대칭 전략의 교과서를 썼습니다.


이란의 자폭 드론 중 핵심은 샤헤드-136(Shahed-136)입니다. 이 '카미카제 드론'의 이력서는 화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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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는 2022년 이란으로부터 6,000대를 총 17.5억 달러에 구매하고 자체 생산 라인(엘라부가 경제특구)까지 구축했습니다. 우크라이나 하늘에서 울리는 특유의 오토바이 엔진 소리는 공포의 상징이 되었고, 젤렌스키 대통령에 따르면 57,000대 이상이 발사되었습니다. 이 드론의 핵심 장점은 가격이 아니라 양입니다. 연간 수만 대를 찍어낼 수 있어 방어 측에게는 악몽입니다. 미국까지 이 드론의 효과에 감탄하여 복제품을 만들었다면, 적에게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찬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진짜 봉쇄는 물리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봉쇄 선언 직후 해상보험 프리미엄이 4~6배 뛰었습니다. 배가 물리적으로 지나갈 수 있더라도, 보험료가 화물 가치를 초과하면 아무도 그 길을 지나가지 않습니다. 개전 초기에 그리스 선박 등 몇몇 선박이 통과한 경우는 있으나 그 후 따라했다가 대차게 얻어맞은 후 어떤 선박도 무모한 도전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야말로 이란은 미사일 몇 발과 싸구려 드론으로 '경제적 봉쇄'를 완성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해협의 교통량은 95% 감소했습니다.


3월 5일부터 이란은 더 영리한 전략으로 전환했습니다. 모든 배를 막는 대신 선별적으로 통과시키기 시작한 것입니다. 중국, 인도, 파키스탄 국적 선박에 '안전 수로'를 제공했습니다. 미국의 동맹국은 막고 비판적 국가는 통과시켜 국제사회 분열을 유도하는 고도의 외교전입니다.


미국은 왜 봉쇄를 막지 못하는가? 그리고 왜 멀리 빠져 있는가?

세계 최강 해군을 가진 미국이 폭 33km의 해협을 왜 열지 못할까요? 좁은 곳에서는 큰 배가 불리합니다. 항공모함 전단은 대양에서는 무적이지만, 호르무즈처럼 좁은 해역에서는 양안의 대함 미사일과 기뢰, 자폭 드론의 타격 범위 안에 놓이는 때리기 좋은 먹잇감에 불과합니다. 마치 골목길에서 탱크가 오토바이 부대에 포위당하는 것과 같습니다.


특히나 비용 비대칭은 심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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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 분석에서 말하는 '소모전의 비대칭'입니다. 매출은 압도적이어도 원가구조가 80배 비싸면 장기전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미국의 자세입니다. 미국의 호르무즈 경유 원유 수입은 전체의 고작 2.5%, 약 50만 배럴입니다. 한국의 3분의 1도 안 됩니다. 미국은 이 해협이 막혀도 자기 집 보일러는 잘 돌아갑니다.

image.png (출처: EIA, Vortexa, 2025 Q1)


자기는 안전한 곳에 앉아서 "합리적인 가격에 호위해 줄 테니 돈 내라"고 합니다. 중국에게는 "너네도 석유 통하는 길인데 같이 지켜라"라고 합니다. 남들에게 불타는 건물에 뛰어들라고 하면서 자기는 소화기 팔겠다는 포지션. 투자자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옵션 매도자'의 포지션입니다. 리스크는 남에게 전가하고, 프리미엄(호위비)은 자기가 거두는 구조. 역시 금융의 나라답습니다.


실제로 다른 나라들은 미국의 호위 제안을 거절했습니다. NATO 동맹국도, 일본도, 한국도 참여하지 않았습니다. 자기들만 위험해지니까요.


이란의 전면적 반격과 UAE가 가장 많이 맞는 이유


이란의 반격은 미국과 이스라엘에만 향한 것이 아닙니다. UAE, 바레인, 쿠웨이트, 카타르 등도 공격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유를 이해하려면, 중동에 미국이 얼마나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지를 알 필요가 있습니다.

image.png (출처: CFR, CRS, 2025년 6월 기준)


합계 약 4~5만 명이 10개국 이상에 배치되어 있으며, 2026년 전쟁 개시 전후로 항공모함 2척(에이브러햄 링컨, 제럴드 포드), 150대 이상의 전투기, 수십 척의 전함이 추가 전개되면서 2003년 이라크 침공 이후 최대 병력이 집결했습니다. 군사 기지만이 아닙니다. 석유 메이저들의 중동 자산, 금융 첩보 네트워크, 방산 계약의 공급망까지 포함하면, 미국은 이 지역 곳곳에 경제적 DNA를 심어놓았습니다.


이란의 논리는 단순합니다.

"네 땅에서 우리를 폭격하는 비행기가 뜨는데, 너는 공범이 아니라고?"

기지가 있는 나라는 모두 타겟입니다.


특히 UAE가 가장 많이 맞는 이유는 '삼중 타깃'이기 때문입니다. 첫째, 미군 기지(알다프라)가 있고, 둘째, 아브라함 협정으로 이스라엘과 수교(2020)했으며, 셋째, 미국이 주도하는 차세대 경제 계획(IMEEC)의 핵심 물류 허브이기 때문입니다.


UAE의 약자를 재미삼아 풀어보면 이 나라의 역사가 보입니다.

이란에게 아부무사·대퉁브·소퉁브 3개 섬을 뺏기고(1971년) 영국이 지켜주지 않았을 때의 고통스러운 '우...(U)'. 그 이후 깨달음과 함께 절치부심하며 군비를 증강할 때의 '아!(A)… 이제 믿을 건 힘과 진정한 내 편 뿐이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1,420억 달러나 쓰면서 미국 무기를 사들였는데도 이란 드론에 뚫렸을 때의 '에(E)...? 이렇게 돈을 쓰는데도 공격받는다고?'. 이 세 글자가 UAE의 안보 딜레마를 요약합니다.


디에고 가르시아의 미사일, 과연 누가 쏜 것일까?


3월 20~21일, 인도양의 디에고 가르시아 섬에 있는 미-영 합동 군사기지에 2발의 중거리 탄도미사일이 발사되었다는 보도가 나왔습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두 발 모두 기지에 명중하지 못했고, 하나는 미 군함이 격추했고 다른 하나는 비행 중 실패했습니다. 이스라엘 군 참모총장 에얄 자미르는 "4,000km 이상 사거리의 2단계 대륙간탄도미사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영국의 차고스 제도 반환 어리석다더니… 트럼프, 돌연 “스타머 총리 최선의 협정”.jpg


그런데 이란은 이를 전면 부인하며 "이스라엘의 자작극(false flag)"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이란 외무부 대변인은 "NATO 사무총장조차 이스라엘의 주장을 확인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실제로 NATO의 마크 뤼터 사무총장은 CBS 인터뷰에서 "이란의 ICBM이라는 이스라엘의 주장을 확인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이란에게 디에고 가르시아를 공격하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을까요? 그 섬에는 민간인이 거의 없고, 군용 시설만 약간 있을 뿐입니다. 4,000km 밖의 작은 섬에 탄도미사일을 쏘는 것보다, 그 미사일을 이스라엘이나 주변 미군 기지에 쓰는 것이 조건상 훨씬 합리적입니다. 이란이 "자발적으로 2,000km 이하로 미사일 사거리를 제한해왔다"고 공언해 온 점을 생각하면, 갑자기 그 2배 거리의 목표물을 때리는 것은 자기 손으로 '유럽 위협'이라는 명분을 적에게 선물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것은 자작극일까요? 역사적으로 자작극은 드문 사례가 아닙니다. 1964년 통킹만 사건을 떠올려 봅시다. 미 해군 구축함 매덕스호가 북베트남의 공격을 받았다는 보고는 미국이 베트남 전쟁에 본격 참전하는 명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수십 년 후 기밀 해제된 문서와 로버트 맥나마라 국방장관의 회고록을 통해, 두 번째 공격은 실제로 일어나지 않았으며 조작된 정보였음이 밝혀졌습니다.


전쟁을 부추기는 세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전쟁이 계속될수록 이익을 얻는 존재들이 있습니다. 방산업체, 특정 정치 세력, 지역 패권을 원하는 국가들과 트럼프의 가족들이 그렇습니다. 또한 이스라엘은 수십 년간 미국에 이란 군사작전을 로비해 왔습니다. 디에고 가르시아 사건이 진짜 이란의 소행인지, 전쟁 확대를 원하는 세력의 자작극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이런 의심은 충분히 해 볼 만합니다.


비싼 미사일로 싸구려 드론을 막는 형편없는 거래


이스라엘의 방공 시스템은 세계에서 가장 촘촘합니다. 5개 층으로 구성된 다층 방어망은 그 자체로 군사 공학의 걸작입니다. 하지만 이번 전쟁에서 심각한 '비용 불균형 (Cost Imbalance)'이 드러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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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4월 이란이 드론 170대, 순항미사일 30발, 탄도미사일 120발 이상을 동시 발사했을 때, 이란의 공격 비용은 약 5,000만~8,000만 달러. 방어 비용은 3.45억~13.5억 달러. 방어가 공격의 최소 7배. 100원짜리 물풍선을 막으려고 10만 원짜리 우산을 쓰는 격입니다. 물풍선을 계속 던지면 우산은 사도 사도 모자랍니다.


2026년 3월 1일, 이란은 팟타흐-2(Fattah-2) 극초음속 미사일을 최초 실전 투입했습니다. 마하 13~15(이란 주장)의 극초음속활공체(HGV)를 탑재, 비행 중 궤적 변경이 가능하여 기존 방공망 요격이 극도로 어렵습니다. 그리고 최근 이스라엘은 요격 미사일 부족을 공식적으로 인정하며 미국에 도움을 청했습니다. 첨단무기와 싸구려 드론들의 경쟁은 진행 중입니다.


이 와중에 오만은 왜 안전한가, 이름은 오만하지만 가장 겸손한 나라


걸프 국가들이 미사일 세례를 받는 와중에 오만은 상대적으로 안전합니다. 나라 이름은 '오만(Oman)'하지만, 실제로는 중동에서 가장 오만하지 않은 나라입니다. 오히려 모든 이들에게 친근한, 겸손의 외교를 50년간 실천해 온 나라입니다.


오만의 중립은 1970년 카부스 빈 사이드 술탄이 즉위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의 외교 독트린은 "모든 이의 친구, 누구의 적도 아닌(Friend to all, enemy to none)". 핵심은 오만의 종교에 있습니다. 오만 인구 대부분은 수니파도 시아파도 아닌 이바디파(Ibadism)를 따르는데, 이 소수 종파는 관용과 절제를 강조하며 어느 편에도 서지 않는 신학적 완충재 역할을 합니다.


카부스 술탄은 이 독특한 위치를 50년간 외교 자산으로 활용했습니다. 이란-이라크 전쟁(1980~88) 때 양측에 비밀 휴전 협상을 주선했고, 2009년부터 미국-이란 비밀 접촉을 중재했으며, 2013~2015년 JCPOA 핵협상의 비밀 채널('무스카트 채널')을 열었습니다. 1999년 클린턴 대통령이 이란에 보낸 역사적 서한도 카부스를 통해 전달되었고, 미국인 인질 석방도 오만이 중재했습니다. 2020년 카부스 사후 즉위한 하이삼 술탄도 이 노선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이란에게 오만은 외교적 생명줄이고, 미국에게도 유용한 중재자입니다. 양쪽 모두 오만을 건드릴 이유가 없습니다. 여기에 숨은 이유가 하나 더 있습니다. 호르무즈 해협의 4개 해저통신케이블(AAE-1, FALCON, GBI, Tata-TGN Gulf)이 모두 이란 영해를 피해 오만 수역에 부설되어 있습니다. 오만이 불안해지면 석유만 막히는 것이 아니라 데이터도 멈춥니다. 이 이야기는 뒤에서 더 합니다.


동맹국에게 참전을 요구한 트럼프


전편인 「모든 전쟁에는 고객이 있다」에서 서술했듯, 한중일 삼국의 군함이 호르무즈 해협에서 나란히 떠 있는 머쓱한 마주침이 실제로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지만 며칠 전 중국이 쏙 빠졌습니다. 중국은 이란에 '씨에씨에(谢谢, 감사합니다)'를 외치며 호르무즈 해협 선별 통과 대상국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25개년 4,000억 달러 파트너십, 이란 석유 수출의 최대 구매국, 차바하르항 투자까지 이란에 천문학적인 돈을 쏟고 있는 중국에게는 당연한 결과입니다. 이란도 자기편은 챙깁니다.


중국뿐만이 아닙니다. 이란은 파키스탄, 인도 등 중립 노선을 지키는 나라들에게도 호르무즈 해협을 개방했습니다. 이란 외무장관 아라크치는 일본과도 선박 통과를 협의하겠다고 언급했습니다. 봉쇄는 전면적이되, 통과권은 외교적으로 차등 적용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동맹에게는 자물쇠를, 미국에 비판적이거나 중립적인 나라에게는 열쇠를 건네는 고도의 분열 전략입니다.



2부. 돈은 중동이 내고, 재주는 이스라엘이 넘는다


중동은 미국 방위산업의 최대 고객


중동 국가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돈을 미국 무기에 씁니다. GCC 국가들과 오만은 미국 재래식 무기 이전의 17.3%, 중동 전체로 약 33%. 미국 무기의 3분의 1이 중동으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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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웨이트는 91억 달러를 쓰고도 이란 드론에 직접 피격당했습니다. 비싼 보험을 들었는데 사고가 나도 보상이 안 되는 상황입니다.


미국에서 이스라엘로 흘러가는 돈과 무기


이스라엘은 미국 역사상 최대 원조 수혜국입니다. 건국 이래 누적 3,100억 달러(인플레이션 조정) 이상의 원조를 받았으며 현재에도 앞으로도 나라가 존재하는 한 계속 받아낼 것입니다. (이정도면 이스라엘이 미국 대통령의 비디오를 갖고 있다고 봐도 무방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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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가 1,420억 달러를 써서 미국 무기를 삽니다. 그 돈은 록히드마틴, 레이시온, 노스롭그루먼의 매출이 됩니다. 미국 정부는 그 방산기업이 만든 무기를 이스라엘에 무상 제공합니다. 그야말로 돈은 중동이 내고 재주는 이스라엘이 넘는 구조입니다.


방위를 담보 잡힌 소국들, 그리고 빈 살만의 양다리


걸프 소국들은 방위를 담보 잡힌 상태입니다. 자체 군사력으로는 이란에 대응할 수 없으니 미국의 안보 우산이 필요한데, 그 우산의 가격은 미국이 정합니다. 보험료는 올리면서 보험금은 안 내주는 보험회사를 해지하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해지하면 보험 자체가 없어지니까요.


여기서 주목할 인물이 있습니다. 사우디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 이 양반은 세계를 상대로 바람을 피우고 있습니다. 미숙이(미국)와 오랫동안 사귀어 왔지만 최근에는 중희(중국)와도 만나고 있습니다. 미숙이에게는 1,420억 달러어치 무기를 사주며 환심을 사고, 중희에게는 위안화로 석유를 팔며 눈을 맞춥니다. BRI(일대일로)에도 가입되어 있으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IMEEC에도 참여합니다. 미숙이도 좋고 중희도 좋아! 연인 관계에서는 절대 용서할 수 없는 양다리지만 국제정치에서는 엄연한 현실이며 줏대가 없다는 비난에 오히려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며 호기로운 모습마저 보입니다. 강대국 사이에 낀 중견국가의 생존 전략으로 보면 대단히 용의주도하고 합리적입니다.


페트로달러, 키신저가 설계한 50년의 시스템


1971년 닉슨이 금본위제를 폐지하면서 달러에 대한 글로벌 수요가 급감했습니다. 위기의 순간,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천재적인 구상을 해냅니다. 1974년 6월, 키신저는 사우디 파이살 국왕·파흐드 왕세자와 비밀 협상을 벌였습니다.


핵심 거래는 이랬습니다. 사우디가 모든 석유를 달러로만 판매하고, 잉여 석유 수입을 미국 국채에 투자하면, 미국은 사우디의 군사적 보호를 보장한다. 같은 해 미-사우디 경제협력공동위원회(JCOER)가 설립되었고, 1975년까지 모든 OPEC 국가가 이 체제에 참여했습니다. '페트로달러 리사이클링'이라는 용어 자체를 키신저가 만들었습니다.


이 시스템은 자기 강화적 순환 구조입니다. 전 세계가 석유를 사려면 달러가 필요하고, 달러 수요는 미국이 재정적자를 감당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미국의 국가부채가 35조 달러를 넘는데도 파산하지 않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것입니다.


드라마 「카지노」를 보신 분은 아실 것입니다. 카지노에서 고객들에게 무료로 발행하는 '콤프(Comp)', 즉 호텔 숙박권, 뷔페 이용권, 쇼 관람권입니다. 카지노의 주인공인 차무식은, 정작 고객들은 도박에 정신이 팔려 신경도 쓰지 않는 이 콤프를 활용하여 정재계 인사들을 위해 만찬을 열며 연줄을 만듭니다. 원래는 카지노 고객의 ‘돈’이었지만 잃고 나서도 식사도 하지 않고 그냥 가버려서 남게 된 그 콤프. 페트로달러가 바로 미국의 '달러 콤프'입니다. 달러를 대량으로 유통시키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인플레이션은 달러를 사용하는 다른 나라들에게 조용히 전가됩니다. 그런데 정작 그 나라들은 카지노 테이블에 정신이 팔린 고객들처럼, 달러 체제 안에서 무역하고 투자하느라 인플레이션이 수출되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합니다. 보이지 않게 수출되는 인플레이션. 미국은 무한정 돈을 찍어내면서 그 비용은 세계가 나눠 갖는 마법의 구조를 가진 셈입니다.


미국은 여전히 이 콤프의 달달함을 포기할 생각이 없습니다. 뒤에서 다룰 IMEEC도 결국은 미국이라는 카지노가 새로운 고객들을 초대하여 돈을 쓰게 만들고 정작 자신은 한 푼도 쓰지 않은 채 달러 콤프로 달달하게 잘 먹겠다고 호텔 만찬을 개최한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만찬의 메뉴는 여전히 화려하지만, 카드를 긁는 주체는 교묘하게 바뀌었습니다.


사우디의 위안화 결제 개시는 이 50년 체제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는 신호지만 아직은 작은 균열일 뿐입니다. 리히터 규모 7의 지진은 작은 균열에서 시작되지만 대지진이 올 때까지 아직 시간은 남았습니다.



3부. 미국은 왜 이 전쟁을 일으켰을까


단순한 체제 교체? 그럴 리가


전작인 「모든 전쟁에는 고객이 있다 (하)」에서 썼던 표현 기억하시나요?

"공습만으로 정권이 무너진 사례는 인류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없다."


이라크, 리비아, 아프가니스탄. 세 나라 모두 정권 '교체' 후의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미국은 이 사실을 알면서도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이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과연 무엇을 위해서일까요? 뼛속까지 장사꾼인 트럼프의 생각은 무엇일지 함께 추리해 보도록 하지요.


IMEEC라는 진짜 답


미국은 석유가 달러로 거래되어야 하는 이유는 여전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전체 그림의 10%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러시아-미국의 대리전이듯 이란 전쟁도 미-중 전략 경쟁의 일부이지만, 단순히 '대리전'으로만 보면 가장 중요한 퍼즐을 놓칩니다.


미국의 진짜 큰 그림은 바로 IMEEC(India–Middle East–Europe Economic Corridor: 인도 중동 유럽 경제회랑)에 있습니다. 여기에는 미국의 ‘날먹’ 설계가 담겨 있습니다.


그동안 미국은 중동에서 직접 투자로 수익을 내는 방식이었습니다. 군대를 파병하고, 기지를 짓고, 석유 계약을 따내고, 방산 납품을 하는 '직접 운용'. 그런데 이 방식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듭니다. 이라크 전쟁에만 2조 달러 이상, 아프가니스탄에 2.3조 달러. 수익률 대비 원가가 맞지 않습니다.


IMEEC는 발상의 전환입니다. 이제는 중동에 이해관계가 얽힌 많은 나라들의 'ETF를 사서 배당금을 타먹겠다'는 속셈입니다. 인도가 제조하고, 사우디가 돈을 대고, UAE가 물류를 처리하고, 이스라엘이 지중해 관문을 열고, 유럽이 소비한다. 미국은 이 시스템의 설계자이자 보증인으로 앉아서, 리스크는 참여국에 분산시키면서 이익은 보전하겠다는 것입니다. 개별 종목을 직접 사서 리스크를 감당하는 대신, ETF를 설계해서 운용보수를 받는 자산운용사의 포지션과 같습니다.



4부. IMEEC, 6,400km의 새로운 실크로드


IMEEC란 무엇인가


2023년 9월 9일 뉴델리 G20. 바이든이 "진정한 빅딜"이라 부른 것은 인도, 미국, UAE, 사우디, 프랑스, 독일, 이탈리아, EU 집행위 8개국이 서명한 양해각서였습니다. 약 6,400km의 경제 회랑. 추정 총비용 약 €5,000억(한화 ~700조 원). 수에즈 대비 운송시간 40% 단축, 비용 30% 절감이 담긴 거대한 경제 청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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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EEC를 이해하려면 INSTC(International North–South Transport Corridor: 국제남북운송회랑)BRI(The Belt and Road Initiative: 일대일로)를 함께 이해해야 합니다.


우선 INSTC는 2000년 러시아, 이란, 인도 3개국이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합의한 복합운송 회랑입니다. 총 7,200km로, 인도 뭄바이에서 출발해 아라비아해를 건너 이란의 반다르아바스항에 도착하고, 이란 내륙을 관통해 카스피해를 넘어 러시아 모스크바까지 잇는 루트입니다. 수에즈 운하 경유 시 30~40일 걸리는 인도-러시아 물류를 약 20일로 단축한다는 것이 핵심 약속이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개시 후 멈춰 있습니다.

INSTC, International North–South Transport Corridor, political map. Ne.jpg


IMEEC가 '동→서(인도→유럽)'으로 수에즈를 우회하는 서방의 길이라면, INSTC는 '남→북(인도→러시아)'으로 수에즈를 우회하는 비서방의 길입니다. 둘 다 수에즈를 우회한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방향도, 주인도, 목적지도 다릅니다. IMEEC는 미국이 설계하고 인도-사우디-이스라엘-유럽이 참여하며, INSTC는 러시아-이란-인도가 참여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인도가 양쪽 모두에 발을 걸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말 어려운 자세에서도 유연함을 유지하는 인도의 요가식 외교의 묘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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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TC(국제남북운송회랑)는 러시아-이란-인도를 잇는 7,200km의 경쟁 루트로, 일대일로와 함께 이란이 IMEEC에서 배제된 데 대한 '대안'으로 추진해 왔습니다. 이란은 이 프로젝트에 진심이었습니다. 테헤란에서 남부 해안도시로의 수도이전까지 검토되었고, 차바하르항을 새롭게 조성하여 인도양 출구를 확보하려 했습니다. 중국의 일대일로 자금이 이란의 교통·에너지 인프라에 대규모 투입되어, 이란은 BRI의 중동 핵심 거점이 되겠다는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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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IMEEC가 성사되면? 이란의 꿈은 깨집니다. 이란을 우회하는 루트가 완성되면 이란의 지정학적 중요성이 급락하고, 중국이 이란에 쏟는 투자의 명분도 약해집니다. 최근 핵심 구간인 차바하르~자헤단 철도가 ‘무기한 지연’ 상태인 것은 중국의 신중한 태도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IMEEC가 설계를 마친 고속도로 설계도라면, INSTC는 예비 타당성 조사는커녕 아직 포장도 안 된 비포장도로인 셈입니다.


해저케이블, 세계 데이터의 99%가 흐르는 보이지 않는 인프라


IMEEC의 세 번째 축이 가장 놀랍습니다. 바로 데이터가 흐르는 핏줄인 해저케이블입니다. 많은 독자분들이 놀라실 사실 하나. 우리가 매일 쓰는 인터넷 데이터의 대부분은 위성이 아니라 바다 밑의 케이블을 통해 전송됩니다. 국제 데이터 트래픽의 99%가 해저케이블입니다.

(아! 덕왕만 몰랐다구요? 본좌가 그렇습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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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링크 위성 6,000개를 합쳐도 해저케이블 1개를 대체하지 못합니다. 오토바이 6,000대로 화물열차 1대의 적재량을 감당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2~3월에 추천드린 한스 로슬링의 「팩트풀니스(FACTFULNESS)」를 기억하시나요? 그 책의 핵심 조언 중 하나가 "항상 비교해보라"였습니다. 우리는 일론 머스크의 스타링크 하늘을 수놓는 장면에 열광하면서, 정작 바다 밑의 케이블과 비교해보지 않습니다. 머스크에 대한 광신이 팩트를 가리고 있습니다. 숫자를 놓고 비교해보면 해저케이블의 압도적 중요성을 한눈에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위성을 지금보다 훨씬 많이 띄우면 대체할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해저케이블의 광섬유는 빛의 속도로 데이터를 전송하며, 단일 섬유 쌍으로 수십 Tbps를 처리합니다. 위성은 전파를 써야 하는데, 대기 간섭, 지연 시간(레이턴시), 주파수 대역폭의 물리적 한계가 있습니다. 위성 수를 10배로 늘려도 같은 주파수 대역을 공유하는 위성 간 간섭이 증가하고 주파수 경합이 심해져 용량이 비례하여 증가하지 않습니다.


TeleGeography는 "위성이 장거리 트래픽의 절반을 담당한다는 것은 신화이며, 이 신화는 깨졌다"고 단언합니다. Pioneer Consulting은 "물리학과 경제학에 기반하면, 어떤 것도 대양 횡단에서 해저케이블을 대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스타링크는 농촌·해상·군사용 '마지막 1km' 솔루션이지, 대륙간 백본 트래픽의 대체재가 아닙니다. 이것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물리학의 한계입니다.


구글 주도의 Blue-Raman 해저케이블은 총 12,700km, 4억 유로, 218 Tbps. 서쪽 구간(이스라엘~유럽)은 2026년 1월 완공. 지금 홍해와 호르무즈가 동시에 분쟁 지역이 된 것은 역사상 처음이며, 글로벌 인터넷 트래픽의 17~30%를 위협합니다. 전쟁이 석유만 막는 게 아닙니다. 데이터도 막습니다.


여기까지 잘 따라오고 계시지요? 호르무즈 봉쇄에서 시작해 샤헤드 드론, 페트로달러, IMEEC, 해저케이블까지 왔습니다. 숨을 한 번 고르시고, 이제 다시 퍼즐 조각을 맞춰봅시다.

(쓰다 보니 게임 공략집을 쓰고 있는 듯한 기분이…)


인도-EU FTA: IMEEC를 위한 숨겨진 큰 그림


2026년 1월 27일, 인도와 EU는 거의 20년간의 협상 끝에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했습니다. 양측은 이것을 "모든 거래의 어머니(Mother of all deals)"라 불렀습니다. EU 수출 관세 96.6% 철폐, 연간 €40억 절감, 양국 GDP는 약 0.13% 상승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것이 IMEEC와 무슨 관계냐고요? 모디 총리가 직접 답했습니다. 서명 기자회견에서 "IMEEC 회랑이 글로벌 상거래의 엔진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고 말했습니다. 분석가들도 지적합니다. "무역을 하려면 인프라가 필요하다. 인도-유럽 간 무역이 늘어나면 IMEEC의 타당성도 높아진다."


아, 이제야 큰 그림이 보입니다. FTA로 무역량을 키우고, IMEEC로 물류를 깔고, 해저케이블로 데이터를 연결한다. 인도와 EU 간의 무역 협정은 그 시작이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벤구리온 운하, 그리고 가자(Gaza)


이스라엘은 IMEEC의 지중해 관문입니다. 아다니 그룹이 인도 문드라항과 이스라엘 하이파항(70% 지분, $115억)을 동시에 운영하며, 시작과 끝을 한 기업이 쥐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더 오래된 꿈이 있습니다. 바로 벤구리온 운하입니다. 1963년 미국이 핵폭탄 520개로 네게브 사막을 뚫으려 했던 이 계획은 여전히 이스라엘이 포기하지 않은 현재 진행형인데 미국의 기밀문서 해제에 의해(1993년 해제)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에일라트(홍해)에서 아쉬켈론(지중해)까지 약 293km. 이 운하의 예상 루트는 가자지구 인근을 지나갑니다. IMEEC와 벤구리온 운하, 두 프로젝트의 교차점에 가자지구(Gaza)가 있는 것입니다. 만약 IMEEC와 벤구리온 운하가 서로 연결된다면 이스라엘은 사우디 반도 내에서 안전하게 수송된 물류를 온전히 받아내 지중해를 통해 유럽으로 전달함으로써 천문학적인 이익을 누림은 물론 수에즈 운하가 독점했던 지위를 뺏고 동시에 후티 반군의 괴롭힘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그야말로 유럽과 인도 쪽에서 보면 군침이 싹 도는 제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야 이스라엘이 왜 그토록 웨스트뱅크와 가자지구를 분리시키려고 하는지, 더 나아가서 가자지구를 완전히 지도상에서 없애고자 하는지 이해가 갑니다.

TRT World - As Israel continues to bomb Palestine’s Gaza...  Facebook.jpg 건설되면 이집트의 골수를 쏙 빼먹을 벤구리온 운하 프로젝트


장애물: 이란, 가자, 프록시, 중국


이들에게 장애물은 분명합니다. 이란은 주변을 불안하게 만드는 프록시 세력을 제거하기 위한 구축 대상이며, 가자지구의 소멸은 이스라엘의 소망인 운하건설을 이루기 위한 필수 조건이고 중국은 자기의 적을 도와주는, 체급차이가 나지만 누군가 때려줬으면 하는 불편한 존재입니다. 이 장애물들을 제거하면 IMEEC가 열립니다.



5부. 누군가의 이익은 누군가의 비극


트럼프의 "중동의 리비에라": 또 다른 아라비아의 로렌스


2025년 2월 4일, 트럼프는 가자를 "중동의 리비에라"로 만들겠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면서 'GREAT Trust Plan' 38페이지: 10년 이상 미국 신탁통치, AI 기반 개발, 럭셔리 아파트, 해변 리조트, 데이터센터, EV 공장, 자산가치 $3,000억. 가자 주민 1인당 $5,000 이주 패키지를 제안했습니다.


왜 하필 리조트일까요? 이 발언이 나왔을 때 대다수는 '트럼프는 또라이니까 무슨 말인들 못 하겠어'라고 치부했습니다. 그러나 IMEEC를 알고 나서 다시 보면, 이것은 매우 계산적이고 치밀한 발언이었습니다. 표면적 이유는 '안정의 상징'입니다. 투자자와 관광객이 안심하고 올 수 있을 만큼 안정시키겠다는 선언. 이면의 이유는 더 냉혹합니다. 가자가 비어야 벤구리온 운하의 루트가 확보됩니다. 리조트 개발이라는 명목은 인구 이전을 정당화하는 포장지입니다.


팔레스타인인들에게 달콤한 현금 다발을 흔들며 약속하는 트럼프는, 어쩌면 또 다른 아라비아의 로렌스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1차 세계대전 때 로렌스는 아랍인들에게 독립을 약속하며 오스만 제국에 맞서 싸우게 했지만, 전쟁이 끝나자 사이크스-피코 협정으로 영국과 프랑스가 아랍의 땅을 나눠 가졌습니다. 약속은 해놓고 정작 지키지 않는 것. 열강의 역사는 그렇게 반복되어 왔습니다.


이런 트럼프의 제안에 대해서 미국 내 지지율은 15%에 불과하고, 반대는 62%로 압도적이었습니다. 사우디 또한 새벽 4시에 이례적 반박 성명을 냈고, 이집트·요르단은 팔레스타인인 수용 거부를 선언했습니다. 하지만 정말 진심 어린 인도주의적 선언이었는지는 그들의 신만이 알고 있을 것입니다.


만약 정말 그렇게 되면 200만 팔레스타인인은 어디로 갈까요? 비통하지만 답은, 어디에도 갈 곳이 없다입니다. $5,000로 집과 땅과 역사와 정체성을 파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현재 ‘청소’되고 있습니다. UN 독립조사위원회는 2024년 6월 가자 사태가 제노사이드 기준을 충족한다고 결론지었습니다. 그러나 강대국들의 실체적 행동은 없었습니다. 안보리에서 미국은 거부권 행사, 유럽은 우려 표명과 동시에 무기 판매 지속. 성명은 나오되 행동은 없는 세계. 걱정은 하되 돈은 거두지 않는 강대국들. IMEEC의 청사진 위에 이런 비극이 지워지지 않는 연필 자국처럼 남아 있습니다.


IMEEC가 현실화되면 가장 큰 타격을 받는 나라들


모든 새 길이 뚫리면 옛 길은 쇠퇴합니다. 모든 역사가 그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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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부터 봅시다. 수에즈 운하는 정상 가동 시 연간 $94억(2023년) 수입을 안겨주는, 세계 해상 교역의 12% 처리하는 이집트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입니다. 하지만 최근 몇 년 간 홍해 입구에서 후티 반군의 맹활약(?) 덕분에 2024~2025 회계연도 수입이 $36억으로 급감했는데, IMEEC 완성 시 수에즈 통과 수요는 급감할 것이며, 벤구리온 운하까지 건설되면 '유일한 대안' 지위마저 상실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집트는 그냥 죽을 수 없다며 중국으로 급속히 기울고 있습니다. 2025년 상반기 BRI 3대 투자 수혜국($48억), 수에즈 경제특구에 중국 기업 160개+, 투자 $80억(이집트 FDI의 40%), 신행정수도 CBD를 중국건축공정이 건설(아프리카 최고층 345m), 2,000km 고속철도 중국 컨소시엄 수주, 2025년 7월 위안화 결제·CBDC 협력 MOU 체결, 2024년 BRICS 가입. 미국이 IMEEC로 수에즈를 우회하면 이집트는 더 중국에 의존하게 될 것이며 중국은 중동·아프리카 교두보 확보하게 되겠지요. 마치 미국이 한 수를 두면 중국도 한 수를 두는 바둑판같습니다.


투르키예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IMEEC 북부 회랑이 요르단-이스라엘을 지나는데, 그 바로 위에 시리아가 있습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시리아에 대한 입김을 사실상 속국 수준으로 행사하려 하고 있습니다. "너희 맘대로 되진 않을 것이다. 이 지역의 대장은 나거든!" 투르키예가 시리아를 장악하면, 이스라엘은 지금처럼 시리아·레바논을 마음대로 공격할 수 없게 됩니다.


투르키예의 군사력은 중동 다른 나라들과 비교 불가이며, 더구나 NATO 회원국입니다. NATO 회원국을 건드리는 것은 미국도 쉽지 않습니다. 에르도안의 큰 그림은 여기에 있으며, 이스라엘이 이란 다음의 적국을 투르키예로 상정한 것은 공공연한 사실입니다. IMEEC는 이스라엘에 철도만 놓아주는 것이 아니라, 투르키예라는 새로운 라이벌과의 대결도 예약하는 셈입니다.


사이크스-피코의 유산, 그리고 방구석 여포


1916년 사이크스-피코 협정. 영국과 프랑스가 자로 긋듯 중동 국경을 나누었습니다. 100년이 지난 지금도 중동 분쟁 대부분은 이 직선의 유산입니다. 과거에는 식민지의 이름으로, 지금은 경제 회랑의 이름으로. 달라진 것은 포장지뿐입니다.


IMEEC가 완성되면 이스라엘은 가장 강력한 물류·데이터·에너지 허브가 됩니다. 미국의 군사적 후원과 $380억 원조까지 더해지면 지역 패권은 구조적으로 고착됩니다. 삼국지의 여포는 천하제일의 무력을 가졌지만 공동체를 위해 그 힘을 쓴 적이 없었습니다. 여포에게 이미 적토마와 방천화극이 있는데 캐쉬까지 얹어 준다면, 주변 백성들에게 남은 것은 예약된 절망뿐입니다.



6부. 제약으로 바라본 전쟁


마키아벨리는 틀렸다


6부의 첫 챕터 제목을 이처럼 도발적으로 지은 이유는 세계적인 지정학 전략가인 마르코 파픽(BCA Research 수석전략가, 『Geopolitical Alpha』 저자)의 선언 때문입니다. 그는 저서 「지정학적 알파」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마키아벨리는 틀렸다. 군주를 연구하지 말라. 그의 제약을 연구하라." 제약(constraints)이란 지도자가 아무리 원해도 할 수 없게 만드는 구조적 조건이라고 그는 설명합니다.


"정책 결정자는 물과 같다. 언덕의 지형(제약)을 이해해야 물이 흘러갈 곳을 안다."


제약은 한계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가야 하는 방향성이기도 합니다. 이를 IMEEC에 대입해 봅시다. 중동에서 직접 지출을 줄이면서 영향력은 그대로 행사하고 싶은 것은 민주당이든 공화당이든 동일한 방향성입니다. 바이든이 IMEEC를 제안했지만 트럼프가 이를 적극 추진하는 것은, 선호의 차이가 아니라 제약의 방향성이 같기 때문입니다. 정권이 바뀌어도 이 방향은 계속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현명하지 않을까요? 물은 누가 부어도 낮은 곳으로 흐릅니다.


지금 가장 강력한 제약은 무엇인가?


트럼프에게 가장 강력한 제약은 2026년 11월 3일 중간선거입니다. 휘발유 가격은 유권자 투표 행위에 가장 강한 영향을 미칩니다. 학술 연구에 따르면 휘발유 가격 충격이 인플레이션 기대 분산의 42%를 설명합니다.


트럼프는 2025년 2월 "갤런당 $2.30 이하"를 자랑했으나, 2026년 3월 현재 전국 평균 $3.63~$3.72. 한 달간 80센트 상승. 브렌트유가 전쟁 전 $60~73에서 $106~126으로 치솟았습니다.


유가→인플레이션 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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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진짜 무서운 시나리오를 하나 말씀드리겠습니다. 석유가격이 올라서 물가가 오르는 것은 '인플레이션'입니다. 이것은 고통스럽지만 금리 인상을 통해 치유할 수 있습니다. 1970~80년대 강철의 연준술사였던 폴 볼커 연준의장이 그랬듯이, 비록 극심한 고통이 따르더라도 인플레이션은 결국 잡힙니다.


그런데 경제는 침체하는데 물가만 올려놓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온다면? 이것은 훨씬 치유하기 어렵습니다. 금리를 올리면 경기침체가 깊어지고, 금리를 내리면 인플레이션이 잡히지 않습니다. 의사가 열이 나면서 동시에 저체온증에 걸린 환자를 치료하는 것과 같습니다. 뜨거운 물을 부을 수도, 찬물을 부을 수도 없습니다.


더 무서운 것은 스태그플레이션이 AI 산업에 미칠 충격입니다. 지금 글로벌 증시를 이끌고 있는 것은 AI에 대한 기대입니다.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구글의 시가총액은 AI 자본지출 붐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하면 어떻게 될까요? 기업들의 AI 투자 자금이 마르고, 투자자들의 관심이 '미래의 AI'에서 '당장의 생존'으로 옮겨갑니다. 당장 먹고살 게 없는데 AI에 누가 관심을 가질까요? 게다가 AI가 일자리를 줄이고 있다는 불안감까지 겹치면, 일부 투자자를 제외하고 AI가 대중에게 당장의 이득을 줄까요?


파픽 자신도 2025년에 "이 AI 자본지출 붐은 대참사로 끝날 수 있음!"을 경고하며 1990년대 광섬유 버블, 19세기 철도 버블과 비교했습니다. 유가상승이 촉발한 스태그플레이션이 AI 버블의 바늘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리스크를 시장은 아직 충분히 반영하지 않고 있는 것 같습니다.


48시간 초토화 선언과 카르그 섬


이 글이 게시되는 3월 24일 오후면, 트럼프의 48시간 초토화 선언의 결과가 이미 나와 있을 것입니다. 폭격을 했거나 아니면 또다시 TACO를 했거나. 글을 쓰는 시점(3월 24일 오전)에서 생각하건대, 이란의 사생결단 상황에서 전면 폭격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 3월 13일, 미국은 이란의 핵심 석유 수출 거점인 카르그 섬(Kharg Island)에 대규모 공습을 감행했습니다. 이란 석유 수출의 90%를 처리하는 이 작은 산호섬에서 90개 이상 군사 시설을 타격했지만, 석유 인프라는 의도적으로 건드리지 않았습니다. 트럼프는 "예의상 남겨뒀다. 호르무즈 통행 방해하면 재고하겠다"라고 위협했습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웬만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트럼프가 1988년 사업가 시절 가디언에 "카르그 섬을 점령하겠다"고 말한 것은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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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0명 해병대가 페르시아만으로 향하고 있다는 보도와 함께 카르그 섬 점령 시나리오가 부상하고 있습니다. 종전 선언을 하려면 명분이 필요합니다. 카르그 섬 군사 시설을 폭격하고 해병대를 동원해 점령하면, "이란에 확실한 타격을 주었다"는 작은 명분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점령을 유지하면서 협상을 재개하는 시나리오로 갈 수 있습니다.


다만 조심스럽게 예측하건대, 트럼프는 TACO(갑작스러운 방향 전환)를 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웬만해서는 예측을 하지 않는 덕왕이지만 왠지 느낌적인 느낌으로 트럼프는 또 어떤 황당한 이유를 들어 마치 자비로운 왕처럼 이란에게 명분을 주며 시간을 더 끌 가능성이 있어 보입니다. 그 시간 동안 지상군을 당장이라도 투입하려는 시늉을 하다가 갑자기 이란이 협력하는 모습으로 나왔다며 종전을 선언하며 협상에 나서도 저는 전혀 놀라지 않을 것입니다. 이대로 계속 전쟁이 지속되어 유가가 계속 오르면 중간선거에서 재앙이 될 것을 트럼프도 알고 있으니까요.


이란은 과연 항복할까, IRGC라는 '국가 안의 국가'


이란에 대한 가장 큰 오해가 있습니다. "국민들이 체제를 싫어하니 외부 충격으로 무너질 것이다." 이란의 시위는 대부분 경제적 고통이 원인이었고, 체제 전복 시도는 상대적으로 약했습니다. 외세 개입은 오히려 애국심으로 전환됩니다. 1953년 CIA 쿠데타(모사데크 축출)의 트라우마가 살아 있습니다.


이란이 항복하지 않는 진짜 이유를 이해하려면, IRGC(이슬람혁명수비대)가 이란에서 무엇인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IRGC는 단순한 군대가 아닙니다. '국가 안의 국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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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로운 것은, 하메네이 최고지도자가 생전에 핵무기 개발을 금지하는 ‘파트와(종교적 칙령)’를 발표한 적이 있다는 점입니다. "핵무기의 생산, 비축, 사용은 이슬람 법으로 금지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서방 언론이 잘 보도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강경파와 IRGC는 이를 무시하고 농축을 밀어붙였습니다. 60% 농축(허용치 3.67%의 16배), 비축량 허용치의 40배 초과. DIA(Defense Intelligence Agency: 미국 국방정보국)는 핵무기 브레이크아웃 타임을 1주 미만으로 추정합니다.


지금 하메네이가 사망한 상태에서, 파트와의 구속력은 사라졌고, IRGC는 생존의 기로에 서 있습니다. 항복하면 사담 후세인, 카다피의 최후를 맞습니다. 그들은 나라보다 자신의 생존을 우선시합니다. 나라가 망하면 세계가 어찌 되든 상관없다는 사생결단의 논리가 작용하고 있습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이 군 장성들을 제거해도 제2, 제3의 인물이 나올 것입니다. 모하메드 파크푸르가 죽자 아흐마드 바히디가 왔고, 바히디 이후에도 IRGC 12.5만 명 중에서 누군가가 올 것입니다. 머리를 자르면 두 개가 자라나는 히드라처럼, IRGC는 조직 자체가 자기 재생적 구조입니다.


미국과 이스라엘의 소망처럼 이란 국민들이 내부 봉기를 일으켜 체제를 바꿀 가능성이 있을까요?


서방 세계에서 잘 보도되지 않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3월 17일, 이스라엘은 이란의 사실상 실권자이자 최고안보위원회 서기인 알리 라리자니를 공습으로 살해했습니다. 칸트 철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은 이 실용주의 정치인은 지하벙커가 아닌, 테헤란 외곽 파르디스 지역에 있는 딸의 집을 방문하던 중이었습니다. 라리자니와 함께 그의 아들 모르테자, 비서실장, 수행원들이 사망했습니다. 파르스 통신은 "가족을 만나러 간 민간 주거지역"이라고 보도했습니다.


중동학자 박현도 교수(「교양이를 부탁해」 출연)에 따르면, 이스라엘이 일반 건물에 있는 한 명을 제거하기 위해 주변 민간인 최소 100~500명이 희생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 패턴은 가자에서 이미 반복되어 온 이스라엘의 전략 중 일부에 불과합니다.


한 명을 죽이기 위해 민간인 주거 지역을 폭격하는 것은 용서될 수 있는 일일까요? 가자에서도, 레바논에서도, 그리고 이제 이란에서도 반복되는 패턴입니다. 군인과 민간인을 가리지 않고 폭탄과 미사일이 날아오는 하늘 아래에서 이란 국민들이 목숨을 아끼지 않고 미국과 이스라엘이 부르짖는 대로 '정권교체'를 위해 거리로 나설까요? 저라면 그러지 않을 것입니다. 더구나 이란은 페르시아라는 오랜 정체성을 유지해 온 근본 있는 나라입니다. 뼈대 있는 가문이 과연 이념이 다르다고 해서 외세의 손을 빌려 집안을 뒤집을지, 또 국민들은 그것을 용인할지 의문입니다.


반면에 생각이 달라도 외세에 대항하여 손을 맞잡은 경우는 역사에 얼마든지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앙숙이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손을 잡았고 일제강점기 시절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손을 잡았으며 국공합작 시기 중국 공산당과 국민당은 일본이라는 외적 앞에서 힘을 합쳤습니다. 외세의 개입은 체제를 긍정적으로 바꿀 수 없습니다. 폭탄으로 민주주의를 심을 수 없다는 것은 이미 이라크와 리비아가 증명했습니다.



7부. 향후 시나리오와 투자자의 자세


세 가지 시나리오


앞으로 생각할 수 있는 세 가지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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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절대 참전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우리 안의 적부터 잡아야 한다


한국은 원유 수입의 70%가 호르무즈를 경유합니다. IEA 기준 비축유 약 208일분(정부+민간 약 1.9억 배럴)이지만, 실제 하루 소비량(약 250~280만 배럴) 기준으로 단순 환산하면 약 68~76일분입니다. 만약 어쩔 수 없이 참여해야 한다면, 종전 후 기뢰 제거 같은 평화적 수단으로만 참여해야 합니다. 헌법에 따른 국회 동의/비준 절차를 전략적으로 활용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분노를 참을 수 없는 소식이 덕왕의 전두엽을 강타했습니다.

3월 20일, 산업통상부는 한국석유공사가 우선구매권을 제때 행사하지 않아 울산 비축기지에 보관 중이던 국제공동비축 원유 약 90만 배럴이 해외로 유출된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습니다. 해외 기업 A사가 국내 비축기지에 200만 배럴을 입고했는데, 이란 전쟁 발발 후 국제유가가 치솟자 A사가 더 높은 값을 부르는 제3국(동남아 지역으로 알려짐)에 200만 배럴 전량을 넘기려 했습니다. 석유공사가 뒤늦게 우선구매권을 행사했지만 110만 배럴만 겨우 확보하고, 90만 배럴은 해외로 빠져나갔습니다.


UAE 특사로 강훈식 비서실장이 달려가 2,400만 배럴의 원유 우선권을 확보한 지 며칠이나 됐다고 이런 뉴스를 들어야 합니까? 호르무즈가 봉쇄되어 온 나라가 에너지 비상인 시국에, 우리 비축기지에 들어와 있던 원유가 눈 뜨고 해외로 팔려나가다니. 이것은 단순한 행정 미숙이 아닌, 엄중한 시국의 사보타지(Sabotage) 행위입니다.


산업부는 석유공사에 대한 감사에 착수했고, "규정 위반이 확인될 경우 엄중히 문책하겠다"라고 밝혔습니다. 그러나 책임 추궁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1999년 국제공동비축사업 개시 이래 수차례 에너지 위기가 있었음에도 이런 제도적 허점을 방치한 산업부의 책임, 우선구매권을 선제적으로 행사하지 못한 석유공사의 책임, 모두 명확히 가려야 합니다. 관련자를 색출하여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야 하는 동시에 제도를 보완해야 합니다. 전시에 군수품을 빼돌리는 것과 다를 바 없는 행위입니다. (아! 혈압이!)


종전 후를 대비하라: 이란과의 관계 재정립, 그런데 라인이 없다


참전을 피하면서 동시에 준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종전 후 이란과의 관계 재정립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이란과의 외교적 파이프라인이 사실상 없습니다.


의외로 일본과 이란의 관계는 깊습니다. 1953년, 영국이 이란 석유 수출을 봉쇄하고 해군으로 해안을 차단했을 때, 일본의 이데미쓰 코산이라는 석유회사가 유조선 '닛쇼마루(日章丸)'를 비밀리에 이란으로 보내 영국의 봉쇄를 뚫고 원유를 가득 싣고 돌아왔습니다. 이란인들은 이 모험적 시도를 높이 평가했고, 이를 기점으로 이란은 일본의 원유 수입에서 최대 50%(1970년대)를 차지하는 최대 공급국이 되었습니다.


2019년에는 아베 총리가 트럼프의 요청을 받아 테헤란을 방문해 하메네이와 직접 만났습니다. 비록 협상은 실패했지만, 일본이 이란과 미국 사이에서 중재 역할을 시도할 수 있을 만큼의 관계 자본이 있었다는 뜻입니다. 심지어 현재 전쟁 중에도 이란 외무장관 아라크치는 "일본 선박의 호르무즈 통과를 협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언급했습니다. 일본에게만 내미는 손길입니다.


한국은 어떨까요? 서울의 테헤란로. 1977년 팔레비 왕조 시절 서울시장과 테헤란 시장이 자매도시 결연을 맺으며 만들어진 이름입니다. 테헤란에도 '서울로'가 있습니다. 그러나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 관계는 사실상 동면에 들어갔습니다. 한국은 미국의 제재에 충실히 따르면서 이란과의 독자적 외교 채널을 발전시키지 못했습니다.


더 안타까운 것은 외교적 실수까지 겹쳤다는 점입니다. 과거 우리나라 정부 문서나 지도에서 호르무즈 해협이 위치한 바다를 '걸프 만(Gulf)'이라고만 표기한 적이 있습니다. 이란은 이에 대해 외교적 항의를 제기했습니다. 이란에게 이 바다의 이름은 '페르시아 만(Persian Gulf)'이며, 단순히 'Gulf'라고 부르는 것은 수천 년의 역사적 명칭을 지우는 행위입니다. 우리에게 비유하면 이것은 동해를 '일본해'로 표기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이름에는 정체성이 담겨 있습니다. 우리가 동해 명칭에 민감한 만큼, 이란도 페르시아 만의 이름에 민감합니다. 물론 반대편의 사우디가 반발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그것을 고려한다면 병기라도 했어야 합니다. 섬세함이 외교의 기본인데, 우리는 그 기본을 지키기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지금 한국에는 이란과 직접 소통할 수 있는 '라인'이 없습니다. 일본은 70년의 석유 외교 역사가 있고, 오만은 중재자 역할을 하며, 중국은 25개년 파트너십을 맺고 있는데, 한국만 통화할 번호가 없는 상태입니다. 종전 후 에너지 수급 정상화, 호르무즈 해협 통행 재개, 한국 기업의 중동 사업 복원을 위해서는 이란과의 외교 채널이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테헤란로라는 이름만 남기고 관계는 잃어버린 셈이 되지 않도록, 지금부터라도 준비해야 합니다.


투자자의 자세: 바람에 맞서지 마라


가치투자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기적으로 시장은 투표 기계이지만, 장기적으로 시장은 저울이다." 지정학도 마찬가지입니다. 투자자는 세상이 어떠해야 한다고 투표하는 사람이 아니라, 저울의 추가 어느 쪽으로 기우는지를 읽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사실 이는 비단 투자자뿐만 아니라 현생을 사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합니다.


바람에 맞서지 맙시다.


다만, K-방산이라고 다 수혜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이 지정학에서 어떤 무기가 필요한지 진지한 투자자라면 공부가 필요합니다.


질문을 던져봅시다. 지금 중동에서 자주포가 필요할까요? 탱크가 필요할까요? 자주포와 전차는 지상전에서 전선을 돌파하거나 방어하는 공격/방어 지향형 재래식 무기입니다. 그런데 지금 중동의 전쟁은 포탄이 오가는 전쟁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드론과 미사일이 쏟아지는 전쟁입니다. 걸프 국가들이 가장 절박하게 원하는 것은 이란의 드론과 미사일을 막을 수 있는 방공 체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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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지한 투자자라면, 방산주를 볼 때 "이 회사가 만드는 무기가 지금 전장에서 필요한 무기인가?"를 물어봐야 합니다. 예를 들어 천궁-2를 조금 더 공부해 보면, 이 무기 체계에 한화시스템(레이더·교전통제), 한화에어로스페이스(발사대·추진체), LIG넥스원(유도탄체)이 함께 얽혀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의 무기가 아니라 하나의 생태계입니다. 수주잔고가 어떤지, 지금까지 중동 고객들은 누구였으며 같은 종파의 나라들은 어디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진짜 투자 분석입니다. (팔은 안으로 굽듯,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방위산업 외에도 함께 공부해 볼 영역이 있습니다. 해저케이블과 데이터 인프라 관련 산업은 호르무즈·홍해 동시 분쟁으로 대안 루트의 수요가 폭발하고 있습니다. 해저케이블 제조·부설·유지보수에 관련된 기업들, 그리고 데이터센터와 통신 인프라에 투자하는 기업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것들이 보일 것입니다.


그리고 IMEEC의 큰 그림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나라는 인도입니다. 인도-EU FTA 체결, IMEEC의 시작점, 세계 최대 인구, 제조업 이전의 수혜국. 인도에 적극적으로 진출하거나 투자하고 있는 한국 기업들, 그리고 인도 시장 자체에 투자하는 ETF나 펀드들도 함께 공부하는 것이 좋습니다. IMEEC가 현실화되면 인도는 '세계의 공장'에서 '세계의 공장이자 물류의 시작점'으로 격상됩니다.

(이런 온통 공부할 것들 투성이군요)


반면 유가상승이 장기화될 경우, 금리 상승에 취약한 기술주와 현금 흐름이 부족한 성장주는 직격탄을 맞을 수 있다는 점도 함께 생각해봐야 합니다.


그러나 냉정한 시선으로 포트폴리오를 조정하면서도, 한 가지만은 함께 기억했으면 합니다.


이 숫자들 뒤에는 사람이 있습니다. 제가 앞선 상하편에서도 강조했던 점입니다. 방위산업 주가가 오른다는 것은, 어딘가에서 누군가가 폭격당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유가가 오른다는 것은, 어딘가의 가정이 난방비를 걱정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투자자로서 수익을 추구하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지만, 그 수익의 원천이 누군가의 고통이라는 사실 앞에서 인간적 비통함마저 지워버리면, 우리는 돈은 벌지언정 무언가 더 중요한 것을 잃게 됩니다.


바람에 맞서지 않되, 인류애까지 잃지는 맙시다. 저울을 다는 사람도 따뜻한 가슴을 가져야 합니다.



8부. 글을 마무리하며


수고하셨습니다. 우리는 먼 여정을 함께 걸었습니다. 여기까지 읽어 주신 공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호르무즈의 기뢰밭에서 시작하여, 샤헤드 드론의 교활한 비대칭 전략을 지나, 키신저가 설계한 페트로달러의 구조를 보았습니다. 빈 살만의 양다리(미숙이와 중희 사이에서!)와 오만의 50년 중립 외교를 거쳐, 6,400km IMEEC의 거대한 청사진을 펼쳤습니다. 인도-EU FTA라는 숨겨진 퍼즐 조각을 맞추었고, 미국의 'ETF 식 중동 전략' 전환을 분석했습니다. 가자지구의 비극과 아라비아의 로렌스, 이집트의 중국 경사, 투르키예의 시리아 장악, IRGC라는 히드라를 읽었고, 파픽의 제약 프레임워크로 스태그플레이션과 AI 버블, 카르그 섬과 중간선거라는 시계를 분석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함께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모든 전쟁에는 고객이 있다」 상·하편에서 저는 이벤트성 전쟁과 레짐 체인지형 전쟁을 가르는 체크리스트를 제시한 바 있습니다. 당시 대부분의 항목이 '이벤트성'에 가까웠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을 다시 봅시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가 이미 3주를 넘겼습니다. 유가는 전쟁 전 대비 40~60% 폭등한 상태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IEA가 역대 최대 4억 배럴의 비축유를 방출했지만 세계 소비 4일 치에 불과합니다. 스태그플레이션 리스크가 현실화되고 있으며, 걸프 국가들의 GDP가 14% 위축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체크리스트의 모든 사항이 이벤트성에 부합하더라도, 호르무즈 봉쇄가 4주 이상 지속되고 유가가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 전쟁은 이벤트가 아니라 레짐 체인지의 영역으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1973년과 1979년의 오일쇼크가 그랬듯, 에너지 공급 구조 자체가 바뀌는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지금의 상황은 점점 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리스크는 높아지고 있습니다. 투자자라면 이 가능성을 반드시 시나리오에 포함시켜야 합니다.


「모든 전쟁에는 고객이 있다」 시리즈는 이 글로 마무리합니다. 전쟁은 계속될 수 있겠으나, 우리가 갖추어야 할 분석의 도구는 이미 완성되었습니다. 어떤 전쟁이 벌어지더라도 반드시 물어야 할 네 가지 질문이 있습니다.


누가 고객인가.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누가 비용을 치르는가.

이것은 가격을 바꾸는가, 아니면 구조를 바꾸는가.


이 네 가지 질문에 냉정하게 답할 수 있다면, 여러분은 감히 이미 대부분의 개인투자자보다 나은 위치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먼 훗날 이 전쟁이 끝나고, 정말로 그 자리에 철도가 깔리고, 리조트가 지어지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그날 우리는 리조트에서 쉬면서 스마트폰으로 수익률을 체크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리조트에서 쉬는 사람은 우리뿐만이 아니어야 합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도, 시리아 사람도 그곳에 있을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든 그곳에서 살고, 숨 쉬고, 살아갈 권리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그것은 진정한 휴양이 아닙니다. 인류가 가야 할 올바른 미래도 아닙니다.


주머니 속의 전쟁의 주인공이었던 초등학생 알프레드 이즈루하는 전쟁이 끝난 후에도 웃지 못하고, 오히려 전쟁이 얼마나 슬프고 잔혹한 것인지 실감하게 될 뿐이었습니다. 그리고 중동의 어린이들은 애니메이션에 그려진 전쟁의 참담함을 일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비극입니다.


주머니 속 전쟁이 하루빨리 끝나길 기원하며 함께 진심으로 위로하는 세상이 되기를, 우리도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세 시간에 걸쳐 전쟁이라는 무거운 주제에 다루었는데요, 다음 시간에는 재미있고 똘끼발랄한 주제를 가지고 돌아오겠습니다.

오늘도 같이 공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시간에 뵙겠습니다.


엄백호 냉큼.jpg


주요 출처:

- 지정학·전쟁 현황: Wikipedia (2026 Iran war, Strait of Hormuz crisis, IMEEC), Al Jazeera, Britannica, BBC, CNBC, Reuters, NPR

- IMEEC: Atlantic Council, German Marshall Fund(GMF), European Council on Foreign Relations(ECFR), Blackridge Research, Carnegie Endowment

- 이란 군사력: Iran Watch, CSIS, Jane's Defence, GlobalSecurity, Al Jazeera, 19FortyFive

- 유가·경제: EIA, Goldman Sachs, 미 연준(Federal Reserve), 달라스 연은, IMF, IEA, Fortune, Axios

- 해저케이블: TeleGeography, Submarine Networks, Rest of World, Capacity, FCC

- 이스라엘 방공: CSIS Missile Defense Project, Janes, Defense News, IDF 공식발표

- 마르코 파픽: 「Geopolitical Alpha」(Wiley, 2020), BCA Research, CFA Institute, MacroVoices

- 페트로달러: LegalClarity, Financial Sense, US Department of State FRUS, Bloomberg

- 이집트-중국: Modern Diplomacy, Green Finance & Development Center(Fudan Univ.), Xinhua, Belt and Road Portal

- 한국 비축유: 한국석유공사, 산업통상부, 서울신문, 한국경제, 서울경제, MBC

- K-방산: LIG넥스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한화시스템 IR자료, 방위사업청

- 인도-EU FTA: EU 집행위원회, Anadolu Agency, Business Standard, Wikipedia

- 샤헤드 드론: CNBC, NBC News, OSMP, Defense Express, Haaretz

- 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 「FACTFULNESS」(Flatiron Books, 2018)

- 디에고 가르시아: Al Jazeera, Wall Street Journal, CNN, NBC News, The New Arab, Times of Israel, CNBC

- 라리자니 암살: Wikipedia (Assassination of Ali Larijani), Al Jazeera, The National, Reuters, CGTN, 박현도 교수(「교양이를 부탁해」)

- 일본-이란 관계: The Diplomat, Jerusalem Strategic Tribune, Atlantic Council, Iran Primer(USIP), CSIS, Nippon.com, MEI

- 한국-이란: 서울시, 외교부, 산업통상부

- 통킹만 사건: National Security Archive, Robert McNamara 「In Retrospect」(1995)

- 건담 0080: 「기동전사 건담 0080: 주머니 속의 전쟁」(サンライズ, 19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