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일, 해야 하는 일

by Davca

1월부터 시작된 육아휴직도 이제 한 달 남짓.


시작되기 전에는 꽤나 오랜 시간 나와 가족을 위해 보낼 수 있겠다 싶었는데, 기본적인 범주에 속하는 육아 외에 특별한 무언가를 하기에는 짧은 시간이었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리고 예상치 못했던 사건들의 연속은 치밀한 계획적인 삶의 무용을 느끼게 해 주었다. 휴직 전에 A4 용지에 빼곡하게 적어 내려 간 위시 투두 리스트에서 한두 가지를 제외한 많은 것들은 여전히 위시리스트로 남을 것 같다.


그래도 수술 이후 회복되는 컨디션에 따라 조금씩 걷고 달리고를 반복하며 난생처음, 마흔이 지난 나이에 러닝의 즐거움을 알아가고 있다. 사실 러닝이라기보다 조깅 어쩌면 그마저도 슬로우 조깅에 가까운 수준이지만 그래도 즐겁다. 가끔은 정강이와 무릎 그리고 호흡으로 올라오는 고통들마저도 가벼움과 상쾌함으로 대체되는 순간도 경험했으니 생각보다 크게 줄어들지 않은 체중에 슬퍼할 이유는 없으리라. 인스타그램 부계정을 만들고 매일 같이 달리기 인증을 하며 느껴지는 성취감은 내가 이 '과업'에 사뭇 진지한 태도로 임하고 있음을 입증했다. 덕분에 몇 벌 정도 양질의 운동복(저렴하지만 퀄리티가 우수한 마트에서 구입한 9900원 하는 쿨맥스 티셔츠와 러닝 팬츠 그리고 바람막이 등등)과 공동구매로 저렴하게 구입한 러닝화를 불편한 마음 없이 구입할 수 있었다. 40여 일 정도를 달리며 몇 가지 생각들이 정리되기도 했는데, 그중 내게 가장 중요했던 사실은 달려 나가는 데에 있어 많은 장비는 거추장스러울 뿐이라는 사실이다. 적당한 쿠션이 있는 운동화만 있다면 사실 가장 편한 티셔츠와 반바지가 제일 훌륭한 러닝 메이트가 되어줄 것임을 확신했다.


통풍이 잘 되고 금세 마르는 소재의 티셔츠보다 땀에 절어가는 목 늘어난 티셔츠가 나는 더 좋았다. 운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 나를 위해 짧은 시간 쉬지 않고 반복된 노력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은, 흠뻑 땀을 머금은 이 면 티셔츠라고 생각하고 있기에. 집에서 가까운 양재천을 따라 달리다 보면 새벽의 일출부터 주위의 경관 모두 남기고 싶은 순간들이 많아 휴대전화는 늘 소지하고 있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어느 순간 손에 들린 이것도 번거로울 때가 있다. 저렴한 러닝 벨트를 구입해 허리에 차고 휴대전화를 넣은 채로 달려도 보았는데 없는 것보다 많은 신경이 쓰인다. 뭐 여러 가지 이유로 휴대전화를 집에 두고 나오기는 어렵기에 이 부분은 여전히 작지 않은 고민거리가 되었다.




건강한 삶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멈춘 적은 없었고, 행동으로 옮긴 적은 드물었다. 급작스레 1월 말 개복수술을 진행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난 건강하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었다. 하지만 이제는 당연히 해야만 하는 일이 되었다. 식단을 조절하고 땀을 흘리는 운동을 하며 매일을 관리하는 삶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지금까지 별 저항 없이 새벽 6시 이전에 달리기 위해 집을 나서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을 대충 보냈던 결과가 원치 않았던 외과적 수술이었다는 생각을 떨쳐내기가 어렵다. 하고 싶은 일들이 많지는 않지만 몇 가지 분명한 것들이 있으니 그것들을 잘해나가기 위해서 오늘 '해야만'하는 일들을 쉼 없이 해내야 한다.


올해 초등학교에 입학한 딸아이가 꽤 오래 해온 학습지를 매일 꾸준히 하는 것을 최근 어려워하길래, 이 얘길 해주었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아직은 친구들과 밖에서 뛰어놀고 그림 그리는 것이 더 행복할 때이니 그것을 탓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다만 꼭 알려주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서는, 때로 해야 하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어떤 기록이든 남겨 책으로 엮고 싶은 일을 즐겁고 행복하게 해 나가기 위해서는 우선 건강해야 한다. 체력이 있어야 하고 지구력과 인내심도 필요하다. 다양하게 주어지는 상황에서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해 우선적으로 몸이 버텨줘야 하는데, 24시간을 별 무리 없이 보내고 있는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이따금씩 고통스럽기도 한 자기 관리의 과정을 지속하는 것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알고 있다.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일, 이루고 싶은 일을 언젠가 해내기 위해서는 지금 이 순간 내가 해야만 하는, 피하고 싶을지라도 해내야만 하는 일을 반드시 끝내야 한다는 것이다. 새벽 운동을 하는 단 하나의 이유가 나에게는 바로 이 것이다. 해야 하는 일이 매 순간 그렇게 최악은 아니다. 우리의 현재는 과거의 총합이니, 어떤 오늘을 스스로 기대하는지에 따라 해야만 하는 일에도 꽤나 긍정적인 주문을 걸 수 있다. 그것이 어렵다면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유용한 도구 단 한 가지(이를테면 가장 갖고 싶은 러닝화나 GPS 스포츠 워치 같은 것)를 장착함으로써 마음가짐이 달라질 수 있는 건 괜찮은 팁이 될 수 있다. 그렇게 쌓여간 하루의 누적은 투자했던 도구 이상의 가치를 선물해 줄 것이 분명함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피하고 싶지만 피할수 없는 것을 이른 시간에 해냈다는 성취감이 이전과는 다른 하루를 살게 해준다는 사실을 경험해 보았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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