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결혼 8년 차.
가족의 소중함을 모르는 바 아니나 혼자만의 시간이 주는 효용은 이따금씩 누릴 수 있기를 희망한다.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는 그런 시간. 싸구려 와인 두어 병과 샤인 머스캣 예닐곱 알 정도, 읽고 싶은 책 몇 권 쌓아두고 주말 내 나의 시간을 이 대상에 온전히 할애하는 시간을 열렬히 소망하는 것이다.
가장 소소한 일탈, 20평 남짓한 공간에서 단 2평쯤. 조명은 어둑하게,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넘겨지는 책장 소리와 3분의 1 정도 담겨있는 와인, 마일스 데이비스의 재즈가 적정한 볼륨으로 귀에 흘러들어오는 상상은 내가 누릴 수 있는 값비싼 호사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나의 영역과 시간을 굳건히 지켜내는 일은 나에게 있어 무책임함으로 비칠 공산이 크다. 육아를 함께하고 자녀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보여야 하며 주말은 가족과 함께하는 일정에서 나만의 시간을 찾는 것은 새벽 달리기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찾아내기 어려운 월리와도 같다.
그래도 감사한 것은 종종 아이들을 데리고 처가에 다녀오거나 하는 경우가 간혹 있기에 그런 주말은 온전히 나의 것이다. 두 아이를 학교와 어린이집에 보내고 아내가 요가를 다녀오는 시간 동안 주어지는 고요의 시간이 나에겐 더더욱 감사한 시간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간헐적으로 개입되는 소음과 생각의 접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시간이기에 미뤄 둔 일들을 차분히 정리한다. 하나 둘 모아둔 글감들로 부족한 실력을 가감 없이 드러내 보이기도 하고, 바람이 부는 좋은 날 조금은 오래 걸어볼 수 있다.
혼자만의 시간을 원한다고 하여 가정생활에 문제가 있음을 뜻하지는 않는다. 되려 충실했던 시간에 대한 소소한 보상을 바라는 것이니, 어느 누구보다 가장으로서의 책무를 진실되고 성실하게 임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는 종종 의도적으로 그런 시간들을 확보해준다. 나의 체력적 충전과 정신적 안정감이 주어지는 시간의 확보가 결국 원만하고 긍정적인 분위기의 가정생활을 이끌어간다는 사실을 이해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늘 고맙다. 반나절의 시간이라도 '혼자서' 묵혀둔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행복하다. 행동반경이 뻔한 나의 패턴이 아내에게 어떤 식으로든 위태가 되지 않을 테니 실로 단조로운 시간으로 비칠 것임이 분명 하나 내게는 더없이 풍요로운 시간이다. 의도적으로 찬찬히 스스로를 돌아보고 기록하며 조금 더 괜찮은 나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아갈 수 있다. 잠시 짬을 내어 하기는 불가능한 작업이기도 하기에 권태와 무력함이 쌓여가는 날에는 반드시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어 줄 시간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이런 시간에 대한 나름의 당위성을 아내에게 설명한 적이 있었는데, 아내는 별 것 아닌 거에 심각한 논리를 갖다 대는 것 같다고 핀잔을 주었다. '혼자 있고 싶다'라고 느껴지는 시간은 누구에게나 있는 것이고, 굳이 그 사유를 묻지 않아도 되는 경우가 많을 것인데 유난스러워 보였던 것이 아닐까 싶다.
앞으로도 살면서 주기적인 쉼의 시간이 내게는 자족할 만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생산하고, 지난 시간의 반추를 통한 입신의 순간이 될 것임을 확신한다. 10km를 내리 달리고 집에 와서 들이키는 이온음료와 같은 그 시간에 감사하며 변함없이 잘 가꿔나가야겠다고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