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직의 노동없는 시간은 퍽 빠르게 흘러간다.
애초에 두 아이의 '육아'가 주된 목적이었으나, 사심을 버리기 어려워 자기 계발과 관련된 몇 가지 것들에 대한 시간 투자와 노력을 염두에 두었고, 그 과정에서 분명히 알게 된 것들이 있다.
어려서부터 한 가지를 오랫동안 하지 못했다. 그런 성향은 짧은 시간 동안에 깊게 빠져들어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은 다음, 다른 먹거리를 향해 이동하게 했다. 이번 휴직기간에만 하더라도 나는 여러 방향으로 관심이 튀었다. 1월에는 독서와 독서노트 2-3월에는 소설 읽기와 쓰기(200자 원고지를 10권 구입하기에 이름) 4월에는 영어공부와 달리기. 조금씩 꾸준히 지속하면 되지 않냐는 물음에, 난 한 가지에 온전히 빠져야 뭔가 하는 것 같다는 얘길 하곤 했었다.
어려서부터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기억나는 예로, 2007년도 통번역대학원 입시를 준비하다 미드에 빠져 시즌7까지 있는 '웨스트윙'을 CD 120장 정도에 구웠던 기억이 있다. 당시 여동생은 나를 한심한 듯 쳐다봤다. 그 이후 아메리카노 드립백에 빠져 하루에 그랑데 사이즈로 7잔씩 내려마시며 향을 음미하다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기도 했고, 미드에 나온 베이글과 크림치즈에 빠져 한 달간 점심에 베이글만 먹기도 했다. 학창 시절엔 공부보다 학용품에 관심이 많아 수집가적 행태를 보이며 다채로운 노트 정리라는 결과물을 통해 나라는 사람의 정체성을 드러내기도 했다.
한동안 나의 이런 성향을 내가 가진 치명적 단점이라 생각했다. 다양한 관심과 그리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나는 끈기가 부족하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스스로를 규정했다. 그리고 괴로워했다.
그러던 와중에 나름의 GRIT을 증명할 만한 사건은, 첫 직장에서 10년을 일을 했다는 것. 누가 들으면 정말 어이없는 얘기일지도 모르겠으나 나로서는 인생의 가장 큰 사건이었다. 중도에 몇 번 위기가 있었지만 그래도 투자한 시간과 노력과 사람으로 생겨난 '당시'의 끈끈한 정(그 많던 조직 내 인맥과 기억도 나지 않는 대학 동문 선배들의 이름은 지금 생각해도 생소하다. 그랬던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손가락에 꼽을 몇몇만 지금까지 좋은 우정을 유지하고 있다. 그럴 거면 타인이 아닌 나에게 조금 더 많은 시간을 들였어야 했다.)은 나를 꽤나 오랫동안 그곳에 묶어 두었다. 그리고 첫째 아이가 태어나고 일 년이 되기 전, 나는 퇴사를 했다. 안정적인 은행원의 삶이었기에 반대라 표현하기에 한없이 부족한, 정말이지 극심했던 반대에 부딪힌 나날이었다. 부모님과 처가 식구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유일한 찬성표를 던져준 아내에게 잘해야 하는 이유 중 가장 큰 것이 바로 이 사건인데, 덕분에 지금까지 난 다양한 나를 경험했고, 삶을 누렸으며, 애써 할 필요 없는 실패를 거듭했다. 물론 지금도 그러고 있다. 처음엔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나는 지금 잘 살고 있는 것인가 라는 질문을 아침에 눈만 뜨면 하게 되었다. 하지만 질문이 거듭될수록 명확해지기는 커녕, 나 자신이 한심해 보이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답답했다.
그러다 오늘 아침, 둘째 어린이집 등원을 하고 언덕길을 내려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있는 그대로, 내가 생각하는 대로, 인정할 것들은 그대로 인정하고 지금 하고 싶은 것들에 집중하다 또 관심의 전이가 발생하면 또 그땐 그 나름의 최선을 다해 사는 게 나다운 게 아니겠는가 하는. 오랫동안 고민과 실망을 거듭했던 이유는 내가 가진 성향과 기질을 사회통념상 혹은 성장의 기준상 '잘못된' 것으로 섣부른 정의를 내린 탓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고민하고 찾기보다 '다수의 눈에 좋아 보이는 것'을 선택해 온 삶이었다. 그 다수의 통념에 메어있는 시간과 강도가 짙어질수록 나는 희석되었고 스스로의 삶에 자신감을 잃었다. 그런데 지나고 보니 그럭저럭 괜찮았다. 매일 계속해서 하지는 못했지만, 진심을 다해 썼던 글들이 아직 남아있고, 읽었던 책과 몇 문장 정도 끄적거린 저널이 남아있으며, 소리 내어 읽었던 영어 원서를 지금 들쳐봐도 읽는 속도는 이전보다 빨라졌음을 느낀다. 드립백에 물을 어느 정도 어떻게 부어야 내가 좋아하는 커피 향이 우러나는지를 알게 되었고, 맛있는 베이글과 크림치즈를 잘 고를 수 있게 되었다. 그리 길게 가지 못하는 나의 성향은 인생을 다양한 각도에서 살필 수 있게 이끌어 주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주 더디긴 하지만, 조금씩 나아짐과 더불어서 말이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끈기 없음'은 다양한 것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누릴 수 있게 해 주었다. 한 번뿐인 내 인생에서 경험이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귀중한 선물이다. 한 가지를 깊고 오래 파는 성향처럼, 나의 그것도 나름의 의미와 흥미와 재미를 더해준다. 그리고 그것들을 찾아가고 알아가는 여정에서의 배움이 함께한다. 미워해서는 안 되는 기질을, 오늘부터라도 따뜻하게 잘 보듬어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