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만에 코엑스에서 '2022 서울 국제도서전'이 열린다. 코로나 전, 그러니까 지금의 회사로 이직하기 전 지인 두 분과 함께 갔던 게 마지막이었는데 오랜만의 큰 행사라 기대가 된다. 벌써 유튜브에 관련 영상들이 업로드되는 걸 보니, 업계에 계신 분들께서는 많이 긴장도 되고 설레기도 하는 그런 자리가 아닐까 싶다.
휴직을 하며 도서구입의 욕구를 억누르며 집 앞 시립도서관을 거의 매일 드나들었다. 덕분에 그간, 두 아이의 육아를 하며 책과는 인연이 없었던 아내가 도서관에 함께 갈 때마다 관심 있는 책들(대게는 아이들의 교육이나 여성건강 관련)을 빌려 읽기 시작했고, 나는 아이들과 함께 도서관에 가서 잠시라도 책을 읽고 오는 시간을 자연스럽게 늘려갈 수 있었다. 아이들이 태어났을 때, 어려서부터 알려주고 물려주고 싶었던 한 가지가 바로 '독서하는 습관'이라고 주야장천 떠들던 나였기에 이런 가정 내의 변화는 나의 6개월 휴직 생활을 더 풍요롭게 해 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로 뿌듯한 결과였다.
최근, 아마도 4월 말부터 전투적으로 해오던 월간 10권의 독서 템포를 잠시 늦추면서 내가 정말 '잘 읽고' 있는 것인지를 돌아보았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나, 독서의 인풋 대비 아웃풋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판단과 '읽었음'을 알려주는 누적된 책의 숫자에 매몰되어 있었다는 깨달음이 어느 날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읽으면 읽을수록 휘발되는 내용들과 밑줄의 일시성을 영구적인 나의 것으로 만들고자 노력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조차 나는 진지하게 고민하지 못했다. 일기를 쓰고 기록을 하고 세세한 부분까지 메모를 하면서도 나의 걸음은 언제나 제자리라고 느껴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나는 알아내야만 했고, 최근 들어 그 이유를 우연치 않은 상황에서 알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고 독서가 습관이 되다 보면, 내가 잘 모르는 것들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 생길 때 관련 책들을 찾게 된다. 접근성이 좋은 다른 매체보다 책을 찾는 데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어떤 주제이든 논문이나 책에 담겨있는 내용이, 고민의 깊이가 다른 콘텐츠에 비해 깊을 것이라는 확신에 있다. 읽는 데에 30분 정도의 분량을 글로 쓰는 데에 수십여 일이 걸리는 나의 입장에서 책이라는 것은 모든 지식의 보고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달리기를 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고 나는 도서관을 갔다.(달리는 대신 책에서 달리기를 '본' 것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부터 스콧 주렉의 <<잇앤런>>, 크리스토퍼 맥두걸의 <<본투런>> 등 관련 책들을 빌리거나 몇 시간씩 도서관에 앉아 읽어내려갔다. 그러다 어느 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집 근처 양재천을 달리던 날, 난 책에서 보았던 '잘 달리는 팁'과 관련된 모든 내용들을 기억해서 적용할 수 없었다. 아니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달리기와 거리가 먼 내가, 달리면서 다양한 내용들을 생각하고 떠올린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그랬다. 나는 '읽은' 내용은 무조건 '나의 것'이 될 것이라는 착각 속에서 살았다. 그리고 이내 매일 달린 이후 느껴지는 감정과 고통, 나름의 생각까지 조금씩 SNS에 정리해두기 시작했다. 그리고 복기했다. 그리고 조금씩 달라졌다. 이전부터 종종 사진을 올리던 주계정에서 벗어나, 달리기를 하는 나의 기록을 담은 부계정은 어느 순간 주계정을 앞서 나갔다. 잘하지 못하는 어설픈 나의 이야기도 '이야기'로 가치가 있었고, 그 안에서 나는 의미를 발견했다.
행동을 통해 알게 된 것. 부계정이 주계 정보다 우위에 서게 될 때 내가 원하는 부캐는 비로소 생명력을 갖게 되고 주(Main)가 나인지 부(Sub)가 나인지 가끔은 헷갈리기도 한다. 둘 다 나의 모습은 맞을 텐데 의도적인 포장이 덜 섞인 쪽이 무엇일지 궁금한 적이 많았다. 어쩌면 표현하지 못하고 오랜 세월 끙끙거렸을 구석진 곳의 부가 진정한 나의 모습이었을지도.
그렇기에 뱉어내야 한다. 자꾸 뭔가를 끄적거리며 해봐야 한다. 그래야 알 수 있다. 6년 전, 은행을 퇴사하면 인생 망하는 것처럼 혀를 차던 분들이 생각났다. 그때는 진심으로 나를 걱정해서였을 수도 있겠으나, 정말 중요한 사실은 그들은 은행은 '나가본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 나가려 애쓰다 정말 나와버린 나보다 그 이후의 삶을 그들은 더 모른다는 것이다. 그런 이들에게 우리는 너무나도 많은 순간 '충고'라는 것을 듣고 산다. 이런 일상의 아이러니와 모순은 언제나 존재한다. 대다수의 조직에서 이뤄지는 상하 관계에서의 대화도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 그러니 진정한 내면의 고민이 있다면 누구의 말보다, 자신의 목소리가 무엇인지 들어야 한다. 선택과 책임을 타인이 아닌 나로 한정하는 것은, 불필요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소진되는 에너지의 회로를 차단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내가 써내려 가는 이야기가 오로지 나만의 것이라는 고유의 가치를 한 껏 높여줄 것이다.
알고 있는 것과 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책에서 본 것은 일시적인 앎이 될 수 있겠지만 그것을 온전히 나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 필요하고, 이 두 가지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무엇이든 해보는 이들은 실패를 통해 많은 것들을 배울 수 있고, 그 경험의 누적과 반복을 통해 성장한다. 시도하며 익히는 사소한 것들은 중장기적으로 나의 길을 비춰줄 것이고, 예상치 못한 곤란함에 처했을 때 유려한 대처로 그간의 애씀을 보상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하는 이야기, 내가 하는 생각, 나로 인해 내가 되는 삶을 살아내기 위해 아는 것을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용기와 자신감이 필요하다. 달리고 싶다면, 일단 밖으로 나가서 온 몸으로 바람을 맞이하는 첫 단추를 꿰어야 한다. 읽고 좋았던 내용들은 내 삶에 적용하고 실행에 옮겨보며 스스로 피드백할 수 있어야 독서의 의미가 더해질 수 있다.
일단 그게 무엇이든, 그냥 해보자. 우리는, 우리의 생각보다 나약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