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장을 위한 조력자

by Davca

나는 실패한 삶을 살아왔다고 생각했었다.

어떤 나의 모습이 진짜인지 헷갈릴 때도 많았고 거짓됨으로 사람을 대하고 말한 적이 많았으며 그럼에 따라 숨겨야 하는 이야기들이 늘어나 스스로를 곤혹스럽게 만들기도 했었다. 그럴 때마다 나의 방향을 잡아주던 고마운 분들이 계셨고 난 늘 죄송스러운 마음에 고개도 제대로 들지 못한 날들이 쌓여갔다. 언제고 한 번은 이런 마음을 토해내듯 눈물 섞인 고해를 하고 싶은 때도 있었는데, 그렇게 고마운 분이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곳으로 먼 길을 떠나시기도 했다.

반성의 시간들 끝에서 갚을 길 없었던 그 마음들은 이제 좀 더 잘 살아보자는 생각들로 꿈틀거렸고 새로이 알게 되는 많은 이들에게 내가 주고 싶던 진심을 내어주었다. 받았던 만큼 아니 그 이상 누군가의 성장을 위해 도움이 되는 삶을 산다는 것이, 나의 과오를 보듬어준 많은 분들에 대한 보은이라고 여겼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15년 전 첫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그때,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로 국내외 경제정세가 불안에 휩쓸릴 때 금융권 종사자 중 한 사람으로 난 음주가무에 휩쓸렸다. 취업난을 뚫고 75:1의 경쟁률에서 승리한 은행원이 되었음은, 그간의 심리적 육체적 고난을 충분히 위로해도 된다는 골든티켓 같은 것이었다. 집은 잠시 잠을 자는 곳이었고, 7시 이전에 출근해서 이르면 밤 11시에 퇴근하는 삶은 10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전혀 이상할 것 없는, 너무나도 당연한 급여소득자의 삶이었다.

조직의 특징적인 문화가 바로 이른 출근, 가급적 늦은 퇴근이었고 당위성을 느끼지 못하는 야근에 불공정 노동행위라 신고하는 작금의 상황에서는 이해가 어려운 관습에 대다수가 그러했듯 의문 없이 복종했다. 그렇게 살아남아서 올라가야만 하는 삶이, 나를 선택해준 조직에 대한 충성맹세와 다름없다 생각했다.

그런 와중에 지금까지도 연락을 드리고 만나는 분들과 인연을 맺게 되었고, 그분을 통해 업무적 배움과 더불어 인간적으로 성숙함에 다다르는 길들을 간접적으로나마 지켜볼 수 있었다.



운 좋게도 난 가진 것에 비해 이쁨을 받았고 좋은 평가를 받았다. 때로는 그로 인해 시상도 받았고, 수차례 해외에도 나가봤다. 출장이라 쓰고 여행이라 읽는 경험들은 꽤나 안정적인 직장이 주는 묘한 매력으로 다가오기도 했고 그렇게 한 해 두 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그렇게 온실 속의 화초로 강인함 없이 자라났다. 때가 되면 해를 쬐고, 때가 되면 비를 맞았으며, 때가 되면 몸을 사리며 겨울을 났다. 와중에 스러져가는 화초들을 지켜보기도 하고 안타까움에 술 한잔,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다짐에 또 한잔, 그렇게 세월을 술잔들로 채워나갔다. 돌이켜보면 내게는 직접적인 가르침보다 어깨너머 흘깃했던 간접 경험으로 인해 남은 교훈이 임팩트가 컸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나에게도 경험이란 것이 쌓여갔고 더불어 그날그날의 기억들을 정리하고, 다짐들을 늘어놓던 기록들 또한 늘어났다.

나는 그 기억과 기록으로 나의 사람이 된 이들에게 하나 둘 씨앗을 나눠주기 시작했고, 이따금씩 싹을 트기도 했다. 마음을 준 이들의 성장을 지켜보는 일만큼 가치 있는 일은 없었다. 누군가가 나로 인해 그들이 소망하는 바른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조력하는 역할로 인생을 채워가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그 일들을 지금도 조금씩, 적극적인 신중함으로 행하고 있다.



곧 예전의 일상으로 복귀하게 된다. 나를 기다린 이들, 새롭게 맺게 될 인연들, 그리고 많은 갈등과 대립으로 상처가 될 인연들 모두가 나로서는 감사한 존재들이다. 그들의 자라남과 나의 성장은 같은 말이다. 둘을 분리하여 생각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된다. 누군가가 진심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많은 시간 고민하고 함께 나누며 유기적인 연결고리가 생성되는 관계를 지향하는 나의 길이 옳다는 생각을 스스로 멈추지 않길 언제나 바란다. 그리고 그것이 전적으로 맞다는 생각으로 존경과 존중, 믿음과 사랑으로 그들을 만나게 될 7월이 너무나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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