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위로

by Davca

언젠가 소설을 쓰게 된다면 이런 제목을 정해두고 시작하고 싶었다.

위로에 초점을 둔 이야기들을 하나 둘 풀어가고 싶었던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는데, 내가 지금껏 그나마 다른 것들에 비해 잘 해왔던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말과 글로 누군가를 위로하는 얕은 재주는 가끔 내가 꽤나 괜찮은 사람처럼 비치게 해 줬고, 연이 닿아 만나온 이들에게 약간의 도움을 주기도 했다. 운 좋게도 그 과정에서 삶의 작은 의미를 발견할 수 있었고, 누가 보게 될까 부끄러운 마음은 이미 42.195km를 앞서 갔지만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나의 경험들을 두서없이 적어 내려갔다. 이후 시간이 지나, 다시 찬찬히 읽어 봐도 정말 두서가 없었다. 무엇을 말하고 싶은 건지 내가 쓴 글의 의도를 내가 파악하지 못하는 경험 또한 새로웠다. 그래도 가끔, 나의 존재가 나의 말이 나의 글이 힘이 된다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을 때, '그래, 내가 이렇게 구르는 재주가 있는 사람이었어!'라는 뿌듯함도 있었다.




마흔이 넘어가며 자연스럽게 꼰대의 삶을 살고 있는 1인으로써 나도 모르게 '우리 때는 저러지 않았는데'라는 생각을 어색함 없이 할 때마다, 포용력 있고 다양성을 존중할 줄 아는 어른으로 살아가는 것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대신 '젊은 이는 늙고, 늙은이는 죽는다'는 고 이어령 박사님의 말씀을 새기며 시간의 흐름과 순리에 따르고자 하는 스스로를 위로했다. 너무나도 당연한 과정이며 피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라고 생각하며.



참으로 팍팍하고 여유 없던 이십 대 후반부터 삼십 대 후반까지 첫 직장생활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지만, 그때 퇴근 후 나눈 술잔에는 깊은 정이 있었고, 각자의 고민을 맘 편하게 공유했으며, 그렇게 서로를 위로하던 뒷배가 든든했다. 갈수록 팍팍해진 직장에서의 삶은 받는 만큼 일하고 퇴근 이후의 삶은 불가침의 영역이 되었다. 다른 세대를 지내 온 이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조직문화의 변화를 확고히 하자는, 다시 말해 이 영역과 저 영역의 경계를 분명히 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졌기에 많은 이들을 시대의 목소리에 부응하여 일과 삶의 균형을 우선순위에 두고 고민하게 했다.

그러면서 직장에서 스스로의 목표를 달성하고 의미를 찾으며 가치를 정립하고자 하는 이들의 고민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구획을 명확히 하여 선을 넘지 않길 바라는 이들이 늘어남에 따라 멘토의 역할을 해줘야 하는 그룹에 속한 이들은 몸을 사리기 시작했고, 그에 대한 피해는 고스란히 스승의 곁이 간절한 학생들이 가져갈 수밖에 없었다. 조직은 그렇게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기도 하고 또 새로운 누군가에 의해 채워지기도 하며 결코 끝나지 않을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 작금의 이런 상황은 어느 한 집단만의 책임이 아니다. 눈부시게 찬란한 이삼십 대를 보내온 이들은, 그들의 우주에서 유지해오던 삶의 다양한 방식을 성실하게 섭렵하여 배운 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고, 나를 비롯한 꼰대로 포장될 세대들은 그간 경험한 세상에서의 윤리적 규범과 관계의 룰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사실을 근거로 옳고 그름을 이야기할 뿐이다.

가정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자녀들의 말과 행동을 그러려니 하고 넘긴 적은 많은데, 그런 상황이 사회나 직장으로 확장될 경우 그릇된 것으로 질책하는 것은 위선적인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역으로 좀처럼 적응되지 않는 부모의 이야기들 속 세상으로 진화해 온 역사의 흐름 가운데에 자녀들이 있다는 구조적 사실을 스스로 인지하게 되면, 바로 옆에서 나를 지켜주었던 이들이 나의 올바른 성장을 위한 워크북이 될 수도 있다.



크게 두 부류에 속해 있는 많은 이들에게 부족한 것은 상대방에 대한 이해나 배려가 아닐 수 있다.

마음이 다른 두 그룹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진심 어린 위로이다. 그래도 잘하고 있다고, 정말 어렵고 힘든 상황에서 많은 주문들이 산적해 있지만 이렇게 나아가는 건 대단한 일이라고, 당신이기에 여기 이만큼 오게 된 것이라고 그렇게 누군가 토닥여줘야 한다.

매일 지켜보며 답답함이 한가득 쌓여갈 텐데, 변함없는 지도편달로 조금씩 제가 담당업무에 혜안이 트이고 있다고. 말씀드리기 어색하고 민망했지만 이곳에서 당신을 만나 전보다 조금은 나의 능력을 발휘하게 된 것 같아 진심으로 감사했다고 그런 따뜻한 한마디의 낯선 위로가 필요했다.

우리에겐, 모두에겐 그런 온기가 필요했으나 서로에게 지나치게 소홀했고 무심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임을 이해해 달라는 진심 없는 술자리 레퍼토리 보다, 공기를 휘감는 온기 가득한 한마디가 필요했었다.



정 붙이지 말고 거리를 두게 되면 서로를 알 길이 없다. 예상 가능한 상처의 두려움으로 매일의 관계에서 진정한 나를 보지 못하고 솔직한 상대를 보지 못한다면 우리는 거대한 조직 속에서 허우적 댈 수밖에 없다. 익숙하지 않았던 한마디는 침묵을 깨고 관계의 지평을 넓힌다. 지금 각자의 우주에서 살고 있는 우리들은, 낯익은 이들과 낯선 위로를 주고받을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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