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나눈 술잔에 그간의 삶이 담겨있었다.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되었고
그 무게를 온전히 감내하고 있었다.
삼겹살 대신 연포탕을 찾는 나이가 되었고,
안주보다 주종의 선택이 중요해졌다.
크게 다르지 않은 저마다의 질문들은
모두의 삶이 그러하듯,
그간 그려온 인생의 그림이 비슷했구나 하는 동질감 또한 심어주었다.
25년의 세월이었으나
물리적 거리감은 한때 친구였을, 동창이었을 교집합으로 상쇄되었고
문득 떠오르는 이야기에 지난 시절을 회상하며
조금씩 우리를 지탱하던 의자를 앞당겨 왔다.
주름이 생겼고, 흰머리는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게 되었고
한때 인덕이라고 장난치던 뱃가죽은 사회생활의 온갖 비위를 참고 삼킨 훈장이 되어있었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애써봐도 이제 머리가 따라가기 어렵고
더 중요한 건 체력이 달리더라는 얘기에
우리는 진작에 아저씨가 되었으니 순리대로 그것이 맞다며 맞장구를 쳤지만,
한때 너와 내가 앞다투어 경쟁하던 그 시기를 떠올리면
씁쓸함을 감추기는 어려웠다.
직장에서의 발전을 찾기 힘들다면서도 대안이 없다고 푸념하던 친구의 말에,
우리의 삶이 서러워진다.
시간의 흐름이 기력의 쇠함과 열정의 상실과 동의어임을 누가 규정하였는가
끊임없이 구하고 분투하며 얻어내기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아야 함을
그렇게 힘들어하는 순간에서 조차 잊지 않아야 한다.
체력적인 견고함과 단단함을 우선으로 하고
지속되는 에너지를 지켜가며
나를 먼저 아끼고 사랑해야
내가 결코 잃을 수 없는 소중한 이들 또한 지켜낼 수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 우리의 시간은 말할 수 없이 소중하고
그대의 곁에 있는 우리가 변치 않는 자산이며
오랜 시간, 25년 전 그 마음으로 서로를 위해 응원할 수 있는
유일한 벗이다.
슬퍼하지 말고,
살아내자.
벗이 있는 우리는,
해후에도 어색치 않은 우리는
누구보다 잘 살아온 것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