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의 서막
이제 와서 기록할만한 이야기가 실패에 관한 것이라니 꽤나 우울해지고 씁쓸한 마음에 한동안 고민을 했습니다. 나의 실패에 관한 이야기를 통해 과연 무엇을 전달하고 싶은 것인지, 이 이야기들로 어떤 분들에게 작게나마 위로가 되고 위안이 될 수 있는 것인지, 궁극적으로 이런 기술이 나 스스로를 보듬어 줄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지금도 기억이 살아 있는 특정 시점부터 현재까지 어떤 식으로 나열해야 할지도 정하지 않았음을 조심스럽게 고백해 봅니다.
다만 기억도 나지 않는 실패들이 나를 채웠고 때로는 해냈을 성공의 짜릿한 순간도, 별것 아니었을 소소한 성취의 흔적도 지금의 저를 만들어왔음을 인정합니다. 기가 막힌 해냄의 순간은 짧았고 좌절과 고통으로 빼곡히 채워진 시간은 매 순간 길다고 느껴졌습니다. 그래도 살아야 했기에, 뭐라도 해내고 싶었기에 우유부단한 성격을 안고 끝까지 해내지 못하는 짧은 인내심을 안고 계속해서 걸어왔습니다.
전 하루가 멀다 하고 꿈이 바뀌고 목표가 바뀌었어요. 한때 원숭이띠는 재능이 많아 여러 분야에 관심이 있어서 그렇다는 말을 믿고 이 또한 좋은 쪽으로 생각해왔는데 결코 그렇지 많은 않았습니다.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저의 습성은 연애에도 적용되었고 수도 없이 만나고 그만큼 이별하는 단발성 연애로 채워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끔 꽤 오랜 연애를 하게 되는 경우 대부분 저의 부족함 탓으로 빈번한 다툼이 생기기도 했어요. 익숙해짐이 정체됨과 같은 의미라고 생각해왔던 거죠. 늘 새로움을 찾아 밖으로 돌았던 저는 그만큼 짧지만 다양한 경험들을 했고 많은 실패의 이야기들을 담고 살아가는 지금의 저를 만들었습니다. 때로는 후회가 된 경험도 있었고 많은 경우 아쉬움을 뒤로하고 계속 앞으로 나아간 적이 많았습니다. 저는 계속 오늘을 살아가야 했으니 말이죠.
최근 들어 많이 뜸해진 메모와 사색의 시간 대신 저는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것들로 채워가기 시작했습니다. 명상과 사색이 깊어지는 것이 때때로, 이를테면 심리적으로 불안정한 그리고 위축된 시기에는 불필요한 생각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는 판단을 했고 그런 기분이 들 때면 밖으로 나가 한참을 걷거나 땀에 흠뻑 젖도록 달리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삶의 궤적에 근거해 판단해본다면 이런 육체적인 활동 또한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합니다. 이 역시도 1~2년 후에는 실패한 시도로 남을지도 모르겠지요. 그래도 무언가를 깔짝대며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금의 저에게 시사하는 바가 있습니다.
우리의 삶은 계속될 것이고 실패 안에서의 경험 그 자체가 결국 우리의 삶으로 귀결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취업 준비를 하면서, 이직 준비를 하면서, 사직서를 내면서 두려움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계속해서 시도했습니다. 첫 직장인 은행에 입행하기 전에 저는 졸업을 한 학기 유예하면서도 취업을 하지 못했습니다. 100군데가 넘는 기업에 원서를 넣었어요. 100개를 세고 무너지는 자존감에 카운팅을 그만두었던 슬픈 기억도 이제는 웃으면서 써내려 갈 수 있으니 실패가 늘 실패로 끝나지 만은 않았던 것 같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렇게 어렵사리 들어간 은행에서 10여 년을 근무하고 이직의 여정을 시작했습니다.
지금까지 잘 버티고 있는 입행 동기들을 가끔 만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마다 첫 직장에서 가졌던 이상과 포부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현실에 적당히 타협하고 애들 생각하면서 중간 정도로 살아가자는 마인드로 채워지는 하루가 일상이 되어버린 사십 대 초반 아저씨들의 모습이 보여 무척이나 짠합니다. 어렵사리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두고 두 번의 이직을 했으니 여전히 저는 누군가의 눈에는 '실패한 이직러'로 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하나 중요한 사실이 있어요. 그 실패한 이직러는 비록 실패로 끝날 여정이라 하더라도, 스스로와 적절히 타협하고 안주하는 삶보다는 부딪혀서 실패하는 삶을 변함없이 선택할 것이라는 사실이요.
처음부터 이러한 마인드를 갖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경험했던 다양한 일들을 통해 느꼈던 감정들과 저의 선택들을 공유하고 꾸준히 무언가를 실패하려는 이유가 '피할 수 없는 과정'이기 때문임을 알려 주저하는 저와 같은 또래의 40대 가장 그리고 동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들에게 위안과 용기를 주고 싶습니다.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저는 언젠가 저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하게 될 분들에게 위로가 되는 책을 쓰고 발행이 되어 읽히는 꿈을 꿉니다. 이런 생각을 처음 했던 게 대략 3-4년 전쯤이니, 어찌 보면 생각만 하고 꾸준한 실천에 있어 역시 실패를 해온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저는 제가 경험하는 삶에서 실패라는 것을 제외한다면 너무나도 공허해질 것을 알고 있기에 편하게 받아들입니다. 한동안 실패를 경험하고 언젠가는 '작가'로 살게 되는, 강연에도 초대되고 인터뷰도 하게 되는 삶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때까지 저는 충분히 실패할 준비가 되어 있기에 마음 편히 그저 오늘 써야 할 것들을 지극히 개인적인 언어로 풀어가면 됩니다. 실패했다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도했다는 것이고, 두려움을 이겨내고 앞으로 나아갔음의 다른 표현에 불과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