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가 두려운 우리들에게
여전히 새로운 곳에서 늘 꿈꾸던 이상에 가장 가까운 일을 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모든 직장인들과 마찬가지로요. 가까운 이들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봐도 지금 있는 곳의 상황이나 처우가 나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더 높은 곳을 향해 가길 희망하는 것은, 우리 삶에서 일이 점유하는 비중과 의미가 그만큼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개인적으로는 나서지 않고 혼자만의 고요한 시간을 꿈꾸면서도, 업무적으로는 능력을 인정받고 많은 책임을 떠안아야 하는 곳까지 쉼 없이 올라가길 바라는 대조적인 현상을 봐도 업무의 영역이 개인에게 부여하는 의미가 상당함을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이십 대 후반이 끝나갈 무렵, 첫 직장에 어렵게 취업을 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든 취업 자체가 어려운 것은 마찬가지였겠지만 한 곳을 세 번씩이나 지원한 경우는 흔치 않았을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취업에 성공했습니다. 2007, 2008년도 당시에는 금융권 중에서도 은행이 선호도 높은 직장 중의 한 곳이었는데 운 좋게도 원하던 곳에서 원하던 포지션으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제 인생 가운데 가장 순종적이고 수동적이었던 시기였어요. 지금은 많이 변했을지 모르지만 재직 중이던 당시에 은행은 매우 보수적인 조직 중 한 곳이었고 그런 환경에서 인정받기 위해 저는 '적극적인 수동형 인간'으로 진화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제가 하겠습니다.(다만 저의 생각은 접어두고 시키는 것만 아주 잘하겠습니다)'를 일단 내뱉고 본거지요. 조직에서는 그런 직원들을 좋아하던 시기였으니 덕분에 정말 인정도 받고 성장해 나가는 느낌도 들었습니다. 지금 와서 보면 조직에 순종적인 직원으로의 성장이었지만, 당시에는 그에 대한 우쭐함은 저의 하루와 앞으로의 커리어를 지탱해 나가는 원동력이 되어 주었어요.
그렇게 십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저는 더 늦기 전에 자기 주도적으로 업무를 통해 나의 성장과 회사의 성장이 같은 프레임 안에서 이뤄질 수 있는 곳으로 이직을 하게 되었습니다. 4년간 다이내믹한 일들이 펼쳐졌고 저는 작은 부분이나마 내 이름으로 회사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를 명확하게 인지하게 되었고, 저도 놀랄 정도의 진지한 태도로 저의 일에 몰입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예기치 않았던 코로나 사태가 시작되었고, 새로운 기회가 주어져 2년 넘는 시간 동안 이커머스 기업에서 사람과 조직의 성장을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업무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장기간 고민하고 이직을 위한 준비를 엄격한 계획하에 진행한 적은 없었습니다. 늘 예상치 못했던 고난의 시간이 저를 흔들었고 꼿꼿이 버티는 대신 그 바람에 흔들려보자는 유연함을 선택한 것이 14년간 두 번의 이직을 하게 했어요. 역시 새로운 기회의 창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 열려있었고 선택은 언제나 저의 몫이었습니다. 그리고 지금, 또 다른 퀀텀점프의 기회가 찾아와 차분한 마음으로 필요한 준비들을 하고 있어요. 결과적으로 보면 안정된 마음으로 정착하지 못하고 또 다른 이직을 생각하고 있으니 전 지금껏 완성된 이직에는 실패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곳에서 저곳으로 움직이면 지금의 고민들이 상당 부분 해결될 수도 있겠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었으니 이성적인 판단에서도 실패를 한 것이겠네요.
하지만 그 과정에서 겪었던 초조함과 불안은 늘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 주었고 매일 조금씩 누적해 온 커리어 포트폴리오를 긍정적으로 평가해 주는 회사도 있었기에 스스로 저를 칭찬해오며 자존감과 자신감을 챙길 수 있었습니다. 결과에 따라 나에게 부족한 부분을 냉정하게 되짚어보고 피드백하며 업무의 현장에서 요구되는 기술들을 하나둘 익혀갔어요. 업무에 있어서 자잘한 실패들이 생길 때마다 몸과 마음의 굳은살이 생겨났고 이전과는 다른 힘을 발휘하며 나아가는 스스로를 바라보며 실패를 거듭함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나아갔던 제 자신을 칭찬하고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많은 이들에게 친절하려 노력했으나 정작 자신에겐 그러지 못했던 지난날들에 대한 사과와 함께 말이죠.
저는 누구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일을 즐기고 사랑하며 여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두려움으로 인해 앞으로 감내해야 할 기회비용애 비중을 둔 선택을 내리기에 많은 이들이 현상유지에만 만족할 수밖에 없는 삶을 살고 있다고 보고 있어요.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최근 입사를 하고 있는 이십 대 중후반의 팀원들의 분명한 가치관과 좋고 싫음의 명확한 구분으로 자신의 삶에 이롭지 않은 무언가를 행하는 것에 대한 판단이 매우 빠르다는 사실입니다.
지난 9개월간 이직에 성공한 3명의 팀원들의 부탁으로 레퍼런스 첵에 응했습니다. 30분~60분 정도의 시간 동안 해당 직원이 보여준 성과, 업무적인 잠재력, 개인적인 성향, 이직하려는 포지션에 대한 적합성 등 그 직원을 관찰하며 느끼고 기록했던 자료들을 토대로 강점에 입각하여 차분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와 함께했던 이들이 지금보다 그들의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합리적인 환경으로, 열정을 온전히 태울 수 있는 곳으로 자리를 옮기는 것처럼 리더의 위치에서 뿌듯한 일은 없습니다. 그들이 지금 쉬지 않고 그려내고 있는 그림들이 그 색이 바래지 않기를 기도하며 무던하게 그리고 부단하게 나아가는 직원들을 저는 한없이 응원합니다. 물론 저 역시도 그런 커리어를 만들어가기를 희망하며 실행하고 있는 중이기도 하고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업무를, 직장을, 사람을 경험할지 가늠이 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경험의 스펙트럼과 실패의 빈도와 깊이가 다양해질수록 제가 피력할 수 있는 이야기들의 진정성이 농익는 것이니 저로써는 이직의 실패가 참 다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채워지지 않는 열정이 계속해서 꿈틀거리고 나의 자리를 찾기 위해 갖는 사색의 시간은 저를 더 저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주는 셈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