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실패, 사랑의 성공

태어나면서부터 마주했던 감정의 진화

by Davca

80년대에 태어난 저는 어렸을 때부터 많은 사랑을 받고 자랐습니다. 감정에 대한, 특히 사랑이라는 감정에 대한 표현이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자라왔어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가 출근할 때엔, 항상 문 앞에서 엄마가 아빠를 안아주고 뽀뽀해주는 모습을 매일 봐왔습니다. 아마도 어린 두 아이와 아내를 위해 고된 하루의 시작을 하는 가장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 가득한 인사가 아니었을까 조심스럽게 생각해봅니다.

어린 나이에 부끄럽고 어색했던 부모의 감정표현은 시간이 지나면서 익숙해졌고 좋아하는 감정의 표현은 사랑하는 관계에서 서로에 대한 일종의 약속이자 의무라고 받아들였어요. 더불어 저 역시도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되면 그렇게 표현하고 행동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요.



어려서부터 숱한 연애를 하고 보통의 누군가처럼 그 파동에 휩쓸려보기도, 세상 최악의 거짓말쟁이가 되어 보기도, 한없는 사랑을 품은 로맨티시스트가 되어보기도 했습니다. 당시에는 사랑에 패배한 폐인처럼 보이고 싶어 의도적으로 면도도 하지 않고, 나의 힘듦을 언제라도 적에게 알릴 준비가 되어 있을 정도로 철없고 유치했지만 당사자였을 저와 상대방에게는 세상 그 어떤 주제도 우리보다 중요할 수 없었습니다. 지금은 이름도 그 모습도 희미해진 서로가 되었지만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부여받은 설레고 아름다운 시간의 시작과 끝을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누려볼 수 있었던 것은 실패의 역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라 하던가요. 과음한 다음 날 아침, 힘겹게 출근하며 아내에게 변함없이 하는 이야기, "나 오늘부터 절대 술 안 마실 거야."라는 말도 안 되는 거짓말에 아내는 늘 코웃음으로 대꾸했습니다. 연애가 남긴 상처의 흔적에 대한 저의 망각 또한 다르지 않았습니다. "한동안 사랑 같은 거 생각하지 않고 나 자신만 돌볼 거야."라는 한시적인 다짐은 또 다른 누군가에 의해 여지없이 무너졌으며 깊이 빠져들었습니다. 끝이 보이는 관계일지라도 저는 그때 저의 감정에 충실했습니다. 가까운 친구들이 말리는 연애도, 모두가 축하해줬던 연애도 끝이 나면 크게 다를 바 없는 남남이 되어버리는 관계를 깨닫게 된 이후로 '사랑'이라는 감정 자체만을 생각했습니다. 그 사람을 택한 건 나였고, 연애도 내가 할 텐데 타인의 생각과 판단이 중요 할리 없었습니다. 그런 저의 판단과 선택으로 인해 따뜻함으로 가득 채워졌던 사랑의 하루를 오감으로 느끼며 후회 없이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다시 그때로 돌아가 치열하고 뜨거웠던 연애를 반복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다양했던 이별의 경험 덕분에, 지금의 안정적인 사랑과 정과 의리가 짙어진 아내와 나름의 유쾌한 삶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너무 감사하단 생각이 듭니다. 죽도록 힘들었던 연애의 실패 덕에 잔잔한 호수 같은 사랑을 8년째 하며 가정을 꾸리고 있으니 제가 경험한 실패는 결국 성공의 발자취를 남기고 있었습니다. 적어도 사랑에 대해서는 말이죠. 어쩌면 내가 느끼는 감정에 충실했던 저의 선택이 '나다운' 사랑을 할 수 있는 준비를 하게 해 준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고 보면 '바보 같은 사랑'이란 없었던 것 같아요. 아낌없이 내어주고 후회 없는 관계를 잘 다져왔다면 내 안의 따뜻함은 그 공간을 점차 넓혀 왔을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이 만나게 될 귀중한 인연에게 그 따뜻함을 고스란히 내어주었을 거예요. 때가 되면 이별을 경험하고 동트는 새벽을 눈물로 맞이했을 우리의 연애는 실패했지만, 사랑은 성공할 거라 믿고 있습니다. 그러니 시간의 흐름에 탄식하지 말고 내 마음에 자리 잡은 누군가에게 오늘은 조금 더 다가가는 하루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이전글두 종류의 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