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하며 마음을 가라앉힌다
가끔 지난 시간들에 대한 후회가 밀려드는 때가 있습니다. 다들 시간이 지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성장해가는데, 나는 제자리인 것만 같은 기분이 드는 바로 그런 때지요. 지금 내가 맞이하는 결과가 밀도 있게 보낸 지난 시간들에 대한 결과라고 한다면, 내게 주어진 시간들의 활용도는 현저히 떨어졌을 것입니다. 이런 사실도 시간이 지난 후에야 알게 되었어요. 늘 그랬듯이 후회는 어김없이 날 기다렸나 봅니다.
적당히 포장하고 적당히 솔직하고 적당히 즐기고 적당히 충실했던 시간들은 오늘의 적당한 삶으로 되돌아옵니다. 내가 기대했던 높은 곳의 공기와는 질적으로 다른 수준의 결과를 받게 되는거죠. 그러면서도 바람은 늘 몽상가 수준이고 실행력과 의지력은 떨어지며 기대했던 소식과는 정반대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 자존감은 바닥을 치게 됩니다. 문제가 뭘까요. 맞습니다, 전 고통이 수반되는 시도를 회피했어요.
따뜻하고 편안한 곳을 찾아다닌 것은 이십 대 초반부터였습다. 기대하고 바라는 삶의 청사진을 그려보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흘러가는 대로 산거죠. 당시 저의 삶에, 한 순간이라도 의지가 수반되고 주도권을 쥔 시간이었을까요. 스스로의 질문에 무언의 답을 해보자니 뒤늦게 부끄러워집니다. 그러면서도 가끔은 전 운에 기대 보기도 했습니다. 생각보다 많은 경우 그 운은 저에게 다가왔고, 고통이 수반된 성장을 위한 단계는 다행스럽게도 피해 갈 수 있었죠. 생각해보니 전반적으로 편한 인생이었다 싶기도 합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운 좋게' 취업을 하고 돈을 벌고 버는 만큼 소비했어요. 매달 버는 금액의 10%를 꼬박 어머니께 드리는 루틴으로 자식 된 도리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운이 따르는 삶에 대한 감사함은 없었습니다. 그저 내 팔자가 좋구나 하는 생각 뿐이었죠. 간혹 힘든 순간들이 지나가도 말미엔 늘 좋은 결과들이 뒤따랐습니다. 소위 사주팔자대로 주어진만큼 받는구나 싶었습니다. 이런 인생이라면 치열한 노력으로 사는 삶은 과연 필요한가 하는 의문도 생겼어요.
생각이란 것을 제대로 하기 시작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어렸을 때부터 많은 생각들이 있었지만 그건 생각이라기 보다 고민과 걱정, 두려움에 가까웠습니다. 제게 주어진 유한의 시간을 어떻게 디자인할 것인지에 대한 발전적이고 생산적인 사고는 없었던거죠. 분명 꿈이 있었을 건데, 분명 욕심이 있었을 텐데, 분명 해내고 싶은 무언가가 있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아무 기억도 나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흐르는 대로, 하루하루 주어지는 대로 살아온 미온적인 태도에 대한 결과는 '나의 삶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였습니다. 나의 뜻이 아닌 시간과 환경의 조건에 맞춰 살아갈 수밖에 없다고 여겼어요. 그게 이상하다고 생각해 본 적도 없었던거죠. 정말 주어진대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첫 직장인 은행을 나오고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나 독립된 생활에 익숙해져야 했기에 체계적이고 생산적인 삶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고 하루를 짜임새 있게 도와주는 도구들을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A5 크기의 작은 바인더 하나에 담을 수 있는 것들은 생각보다 많았고, 급기야 효율적인 활용을 알려주는 오프라인 강의까지 듣게 되었습니다. 이 무렵이었어요. 독서습관과 방법이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고, 명상을 하고 기록을 하고 또 마음을 다스리려 애쓰게 되었습니다. 여전히 쉬운 일은 아니지만, 자신의 생각을 통제하고 하루를 설계하는 과정은 매우 유용합니다. 초반에는 성공보다 실패한 날이 더 많았고,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어 며칠 건너뛴 적도 많았습니다. 그래도 꾸준히 실행하고자 했어요. 지난 시간의 실패가 오늘의 실패로 이어지지 않게, 실패의 누적이 스스로를 규정할 수 없게 적당한 시기에 실패의 흐름을 끊어왔습니다. 이 역시도 운 좋게도 원하는 시기에 적절하게 이루어졌어요.
최근 한두 달 사이에 개인적으로, 업무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현상은 있는 그대로지만 제가 바라보는 프레임의 변화만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장고 끝에 지금 있는 이곳을 벗어나고자 다짐했고 다양한 시도와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중입니다. 그중 가장 큰 기대를 갖고 많은 진전을 이뤄냈던 것이 오늘 아침에서야 매듭을 짓게 되었어요.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6개월을 기다렸는데 말이죠. 한숨이나 절망적인 몇 마디가 작은 내 방에 퍼져 나가던 이전과는 달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대신 서재로 내려와 떠오르는 생각과 감정대로 써 내려가며 지난 저의 지난 날들을 반성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과거는 불안했고, 초조했고, 자신이 없었고, 위축된 시간들이었어요. 온전히 자신의 뜻이었음에도 당당하지 못했습니다. 눈치를 보고, 망설이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휘둘렸고요. 3분기 동안 지속된 불안정한 심리상태를 명상과 독서가 끌어안았지만 가끔씩 저는 통제하기 어려운 감정의 먹이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부족했던 건, '깊이'였습니다. 한 가지를 오랜 시간 파고들어 내면화하려는 노력의 부족은 역시나 '적당한' 수준의 결과만 내게 허락했던거죠. 매 순간 요리조리 피해 온 실패에 대한 깊이 있는 복기가 없었기에 비슷한 절망은 반복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늘 어렵고 복잡한 일들은 회피하려 했습니다. 편한 구석을 찾아 되지도 않는 머리를 굴렸고요. 요행을 바란 적도 많았습니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으니 자신감이 있을리 만무했죠. 역시 원인은 '깊이'였어요. 아는 만큼 강해지는 건 다른 무엇보다 자신의 내면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스스로에 대한 깊이가 없으니 주위 상황과 변화가 두려웠던 겁니다. 그러한 심리상태가 일상이 되니 검증되지 않은 뭇사람들의 이야기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난 6개월간의 여정과 기다림이 '진정한 기다림' 이 아닌 현실에서의 도피를 위해 새로운 환경을 탐한 것뿐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을 보니 지금의 결과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겠지요.
하지만 덕분에 남겨진 삶의 주도권과 깊이있는 생각에 대한 깨달음은 실패가 남겨준 귀한 선물임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내게 끊임없는 실패를 안겨준 다양한 원인들에 대해 생각해보고 정리를 하는 일이 피할 수 없는 숙명처럼 다가옵니다. 삶의 유사한 모습에서 보편적으로 생겨나는 이야기들을 남겨두고 저의 아이들이 그리고 저와 너무나도 비슷한 감정의 파고를 그저 지켜볼 수 밖에 없었던 많은 분들께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고 힘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