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사람이기를, 오직 나에게

by Davca

기다리던 연락은 오지 않았다.


어긋나는 몇몇 계획들 가운데 '시간'의 지연은 기약 없는 기다림과 조바심으로 피폐해지는 가엾은 마음을 안아주지 못해 오로지 나의 몫으로 남게 된다. 위로는 필요하고 다만 그것이 사람으로부터의 것을 원치 않을 때의 선택은 늘 한결같다. 오후 네시이니까, 나의 선택은 구스 아일랜드의 인디아 페일 에일(IPA).



뭐 그리 대단하게 바라고 원했던 것은 아니었는데 아쉬운 상황에서의 우선순위는 늘 바뀌게 마련이니 상황에 순종적이고 가변적인 자신 또한 인간의 종(種) 임이 확실하다는 사실에 안도감도 느껴보며 맥주를 홀짝 거린다. 맥아와 호프 펠렛의 향이 코를 찌르고 혀 끝에 텁텁함을 남긴다. 오늘의 기분과도 같은 이 느낌이 좋다. 가장 아끼는, 제주 스타벅스에서 구매한 하루방과 한라봉, 해녀가 그려진 머그컵에 찰랑거릴 만큼만 따라 한 모금 마시고 내려놓는 이 순간은 온전한 자유를 느낀다. 6도가 채 되지 않는 알코올 함량은 아주 부드럽게 내 감정의 고도를 올려주고 입안을 휘휘 젓는 시트러스 향은 아주 괜찮은 삶을 자분자분 누리고 있는 것이라며 나의 혀 끝을 통해 위로의 메시지를 전해 온다.



나쁘지 않다. 이렇게 사는 삶도. 평범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모난 삶도 아니기에 내게 허용된 만큼의 자유를 누리고 난 나의 책임과 의무를 다하기 위해 또 새로운 여정을 시작할 것이다. 그때가 늘 나의 예상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고 좌절할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 주도권을 갖고 있는 이가 나라는 사실에 감사해야 함이 마땅하지 않을까. 그것은 언제든 꽃을 피울 수 있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뜻일 테니.



창 밖으로 보이는 뿌연 하늘 역시 오늘의 IPA 만큼이나 씁쓸하고 시큼하다. 모두가 나의 감정과 하나 되고 있음에 외롭지 않고 삶의 경이로움에 놀라게 된다. 어쩌면 나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괜찮은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이 생은 더 치열하게 살아볼 만한 곳이고, 그러니 종착역에 다다르기 전까지 나를 스쳐가는 풍광에 오감을 내어주는 일이야말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순수한 결정이리라. 해가 뜨고 해가 지며 달이 뜨고 달이 지는 자연의 섭리는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축복이자 그 하루가 유한함을 알리는 경종과 다름 아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바라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누구를 위해 오늘을 내려놓고 기약 없는 기다림만을 좇고 있는가.



자연의 위대함에서 생의 가치를 더듬어보기라고 하는 나는, 생각보다 괜찮은 존재이지 않을까. 그러니 내일도 부디, 다른 이가 아닌 스스로에게 한없이 괜찮은 이로 남아준다면 풍광의 포근함을 가득 안고 살아낼 수 있지 않을까. 벅찬 삶이다. 고마운 삶이다.


끝나지 않길 염원하는 삶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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