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로는 천재성의 발현이 엉뚱한 시기에 일어날 수 있음을 확신한다.
나에게 벌어진 모든 일들, 그것이 나의 선택이든 타인의 선택이든 내가 처했던 모든 환경에서 겪게 된 일들에서 느끼고 생각하고 정리했던 기록들의 어느 날 갑자기 융합의 뇌관이 되어 장렬하게 폭발하는 순간이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주어진 틀을 벗어나면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완전한 자유를 소망한다는 것은 다분히 이율배반적이었으나, 나는 정확히 그 두 가지 모두를 품고 있었다. 제도적 구성이 견고한 직장에서의 일을 찾았고 동시에 그런 곳에서의 탈출 또한 과감하게 계획했다. 무엇 하나 비중이 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에너지가 고갈될 때 즈음까지만 일을 하고 순리대로 벗어나는 구상도 가능했을 텐데 나의 인내심은 그리 현명하지 못했다. 생각보다 많은 것을 잃게 된다 하더라도 나는 나를 지켜낼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으니까.
어떻게든 손해를 볼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특권이라고 부를 만큼 풍요롭게 누리고 있는 현재에서 가장 중요한 한 가지의 궤도를 수정하여 미지의 세계로 나아가고자 함은 내가 포기해야 할 특권의 범주가 극히 제한적이지 않을 것임을 모든 과정에서 암시했다. 그것은 정당한 거래였고 매우 기초적인 경제 논리에 근거한 결과였다.
나의 시선은 책임의 울타리 안에 속해있는 구성원이 누구인지 냉정하게 바라봐야 했다. 자신의 평안과 그들의 행복 가운데에 무엇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는지 저울질해야 했다. 도무지 쉽게 내려지지 않는 결론은 처음부터 균형을 원하고 있었다. 모르는 바 아니었으나 적절한 균형이라고 하는 것은 그 '적절함'을 유지하기 위한 대가 역시 필요로 한다는 사실이 나의 셈을 한층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 대다수가 버텨내는 직장이라는 공간 안에서 일하기 싫어하는 나의 괴기한 습성이 주변인들의 정신적 피로도를 높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을 때, 태어나면서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나의 삶은 온전한 나의 것이 될 수 없었던 것인지, 그렇다면 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지, 사람답게 살고자 하는 간절한 소망은 매일 밤 자괴감에 몸부림쳤다. 아닐 것이다. 아니어야만 했다. 선택의 자유는 자아의 확립에 필요충분조건이었고 그 자유의 대가는 성실하게 하루를 채워가려는 노력이면 족한 것이었다. 일방적이고 편향된 주입식 교육은 질서와 예의를 중요시했던 사고방식에 침투했고 개성과 창의성을 대상으로 격렬한 전투를 벌였다. 현실의 참된 모습은 제도권의 승리로 매듭지어져야 했다. 패잔병의 존엄성은 내세울 만한 것이 아니었고, 깊은 밤 이불속에서나 꺼내볼 수 있는 나만의 판도라 상자로 남게 되었다.
누군가에 완벽하게 속박된 것이 아닌 귀찮음의 정도가 높은 간섭을 받고 있었던 것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때를 잊지 못한다. 언젠가 그 모호한 경계를 돌파하든 뛰어넘든 결정해야만 할 때가 올 것이라 생각했고 자유의지의 활성화 여부에 따라 결과가 판이해질 게임이 될 것이라는 사실은 예감했었다.
반쯤의 성공이라고 볼 수 있을까. 독립성에 부여되는 더 큰 책임감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다는 것은 내게 허락된 선택과 집중이 이제야 비로소 나의 것이 되었다는 반증일 것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나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포장도, 변명도, 합리화도, 적당한 타협도 필요 없어진다. 웃지 않고 싶을 때 주변 분위기에 맞춰 동조할 이유가 없다. 나는 그렇게 일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니 많은 것들이 자연스럽게 정리가 된다. 거창한 목표를 세울 필요도, 남들과 비교를 할 이유도 없다. 오늘 내게 주어진 이 시간 자체가 선물이고 감사함이다. 살아 숨 쉰다는 것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니 억지로 욕심을 낼 이유가 없다. 나의 꿈이 있다면 몰입하고 매진하는 행위로 나의 영혼은 자유를 만날 것이고 자연스러운 분위기의 흐름에 따라 그 과정을 즐기면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이 계획한대로 완벽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그 자체가 계획의 무용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계획을 세우고 달성여부를 체크하는 것에 혈안이 되어 얽매일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의도치 않게 경험하게 되는 다양한 사건들 가운데 지금 내가 해야 하는 일, 느끼는 감정에 집중하다 보면 애초에 의도한 것과는 조금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간다 하더라도 분명한 목표가 있는 한 결국엔 목적지에 다다를 수 있다. 그리고 그간의 이야기들은 나만이 가지게 된 독창성있는 내러티브가 될 수 있다. 다만 그 서사를 깊게 들여다보기 위해서 나는 스스로에게 솔직해져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그 이야기를 포장을 거듭한 보여주기의 영웅담에 불과한 일반적인 사건과 찬양의 나열에 그치게 된다.
나의 길을 걷고 있다는 사실 만으로도 진정한 나의 삶을 사는 것이니, 곧 다가올 내일이라는 선물은 예상한 그대로의 모습이든 전혀 다른 그림이든 그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내 선택에 대한 결과이기에. 떠밀려 걸어온 길이 아닌, 한 발 한 발 나의 의지대로 걸어온 과정이었기에.
나는 지금 어느 무대 위에 있는가. 내가 오르고 싶은 무대를 찾아내긴 했는가.
현실은 냉정하고 사회의 시선은 날카로우며 타인의 잣대는 엄격하지만 우리의 삶은 유한하며 오로지 한번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누구든 '나는 일하기 싫은 사람입니다'를 자유롭게 외칠 권리가 있으며 원치 않는 길로의 항해를 중단해야 할 의무가 있다. 가을은 막바지고 이 햇살은 곧 구름 뒤로 숨게될 것이며 이내 차가운 공기가 대지를 뒤엎는 계절이 당도할 것이다. 변한 것 하나 없는 나의 모습을 한참 동안 거울에 비춰보다 슬퍼지는 감정을 주체하기 어렵다면 한 번쯤 자신에게 물어봐야 하는 시기가 왔음을 의미한다. 그때 용기를 내어 그간의 인내와 무던함을 위로하며 솔직하게 물어보아야 한다.
'나, 이대로 괜찮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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