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늦은 퇴근 후 집 앞 푸드트럭에서 화덕피자를 샀다. 신축 아파트 단지라 내부 도로가 아직 완전하게 정비되지 않은 터라 요일마다 다양한 메뉴의 푸드트럭이 온다. 닭강정, 타코야끼, 화덕피자, 곱창 등.
생각보다 그리고 비용대비 음식의 수준은 월등했다.
아이들과 한 조각씩 먹다 둘째가 뜬금없이 내뱉은 말에 한동안 꾸덕한 모차렐라 치즈가 목구녕에 걸려 있었다.
아빠, 이번 주말은 일하지 말고 나랑 놀아줄 수 있어요?
작년 12월 이직한 이후, 9개월간 주말다운 주말을 보낸 적이 없었고 요즘 두 아이에게 어떤 일들이 일어나는지 눈높이를 맞추고 대화를 나눠 본 기억도 흐릿했다. 부쩍 크고 있다는 사실도 그나마 마음의 여유가 있을 때에 나 눈에 들어온다. 그래, 이미 충분히 나쁜 아빠가 되어가고 있다. 그러곤 회사에서 힘들어하는 후배들에게는 밥을 사주고 술을 사주고 있는 힘껏 위로한다. 정작 지쳐가는 나와 가족은 어느 누구에게도 위로받지 못하는데 말이다. 잘못돼도 한참이나 잘못되었다. 이곳은 원래 다들 이렇게 일하고 이렇게 해야 조직문화에 맞는 것이다, 는 얘기를 참 많이 들었고 사원급도 아닌 내가 솔선수범을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고 여겼다.
이제와 보니 이런 선택에 대한 비용은 놓쳐버린 아이들, 아내와의 시간이었다. 그마저도 마음으로 감당하고 있던 이는 내가 아닌, 아이들이었다. 어느 순간 미안하다는 말조차도 하지 않았던 내가 하필, 그것도 화덕피자에 캔맥주를 한잔 하며 소소한 만족감을 누리고 있던 그 순간에 일시정지 된 것이다.
뇌가 돌아가지 않는 기분을 느끼며, 뭐라도 말을 꺼내야 하는데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그보다 꽤 오랜 시간 이 얘길 묵혀왔을 7살 아들의 마음이 묵직하게 내게 던져졌기 때문이었다.
'그래, 너랑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해지기 위해 이렇게 일하는 거야. 당연히 각자 희생은 필요해. 너의 일곱 살 시절, 그거 별거 아니고 너는 너대로 친구들과 어울리는 게 좋을 거야. 난, 가장이니 앞으로도 이런 주말이 계속될 거야. 그러니 우리 피자나 먹자'
난 과연, 이런 얘길 하고 싶었던 걸까.
난 지금, 어떤 남편이고 어떤 아빠일까.
한참을 뜸을 들이다 어렵사리 한 마디가 튀어나왔다.
이번 주말엔 네가 좋아하는 돈가스 먹으러 갔다가 책 보러 갈까, 그리고 놀이터에도 나가볼까, 누나랑 킥보드 갖고 나가는 건 어때?
이내 밝아진 두 아이의 얼굴에는 기대만이 가득했고 나는 다시 피자를 씹었고 퍽퍽한 목구녕에 캔맥주를 꽤 오래 부어 넣었다.
한 사람이 생각났다.
아, 얘들아 이번주말에 할아버지도 보러 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