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하지 않은 인연에 대해서
시간도 기억도 영원할 수 없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효도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 아닌, 함께 하는 오늘을 아쉽지 않게 보내는 것이었다. 오늘처럼 따뜻하고 꽃 피는 봄날, 가족과 조금 더 시간을 보내고 맛있는 점심도 먹고 이런저런 얘기도 나누는 것이다. 사실 효도라고 하는 것이 특별하고 거창한 것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일상에서 부모님과 누릴 수 있는 가장 평범하고 의미 있는 시간이면 충분한 것이다. 내가 너희들과 동네에서 축구공을 차며 별것 아닌 헛발질에 배꼽 빠져라 웃어대는 것. 그걸로 난 너희들에게 이미 많은 것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아픈 곳 없이 건강하게 잘 자라주고 있으니 무엇을 더 바랄까. 뭐 가끔 감기에 걸려 힘들어할 때는 온 신경이 너희들에게 가 있긴 하다. 그러면 난 너희들을 안아준다. 엄마는 감기 옮는다, 며 걱정하지만 나에겐 중요치 않다.
얼마 전 장인어른과 장모님을 모시고 너희들과 함께 동네 돼지갈비 집엘 갔었는데, 양쪽에 너희들을 앉혀두시고 갈비를 먹기 좋은 크기로 잘라주시고 깍두기를 가위로 서걱서걱 잘라주시던 장모님의 모습이 잊히지 않는다. 기관지가 안 좋은 사위 먹으라고 도라지 절편을 만드시고 그것을 조청에 담아 오셨다. 매일 출퇴근 길에 티스푼으로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그 시간에 네 엄마와 함께 살며 누리는 호사를 체험한다. 이걸 담아주시며, 장모님은 어떤 생각을 하셨을까. 무엇이든 잘 먹는 사위가 든든하게 이 가정을 지켜주길 소망하시지 않으셨을까. 이제 사십 중반이 되어가는 사위의 건강이 당신의 건강보다 더 걱정되신 것은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감사하게, 남김없이 잘 먹는 것일 테니 나의 방식으로 장모님께 매일 아침저녁으로 효도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언제까지 이 사랑을 주거니 받거니 할 수 있을지 예측할 수 없겠지만 난 뭐가 되었든 주는 마음과 받는 마음이 결을 같이할 것이란 믿음이 있다.
영원하지 않을 인연을 소중히 하는 유일한 방법은, 오늘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는 것. 한번 더 눈을 마주치고 따뜻하게 손 잡아주며 체온을 느끼는 것이 그래서 더 의미가 있는 것이다.
너희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오늘을, 풍족하게 누릴 수 있길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