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 역 두 개 정도의 거리를 출근길에 걷고 있는 요즘, 5분 정도 미리 도착할 수 있도록 시간을 계산한다. 나의 보폭, 횡단보도의 신호 등 몇 가지 요인들에 대해 생각하고 1~2분의 지연 가능성을 염두에 두는 것이다.
출퇴근 길 뿐만 아니고 시간에 대해서는 꽤나 엄격하게 생각한다. 너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그렇게 교육받으며 자라기도 했고, 예상치 못한 상황이 올 수도 있음에 대비하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 시간의 범주에 타인이 동반하게 되면 이 얘기의 중요성이 조금은 다른 국면으로 들어간다. 나의 시간과 너의 시간이 같은 틀 안에 있다면 서로의 영역을 존중함과 동시에 침범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행여 조금은 느슨한 시간관념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이에 대한 대입은 스스로에게 한정해야 하며, 설사 그렇다 해도 상대의 시간을 존중하며 피해를 주지 않도록 신경 써야 한다.
우리 모두는 동일하게 1,440분을 대가 없이, 매일 부여받는다. 마흔넷의 아빠 입장에선 지난 시간들이 너무 아쉽다. 불가능하지만 다시 돌아간다면, 난 철저히 나를 위한 시간을 보낼 것이고, 혹 누군가와 함께한다면 그 의미를 분명히 하는 가치 있는 만남이 될 거라 생각한다. 내게 있어 오늘의 시간이 주는 의미는, 지금을 사는 것임과 동시에 지난 시간에 대한 아쉬움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인 것이다. 어느 누구에게도 침해받을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영역이다. 물론 가족과의 시간은 예외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난 너희들이나 네 엄마의 시간을 존중하고 모두에게 존중받아야 한다고 본다.
시간이란 그런 것이다.
가장이라 부르는 아빠가 모든 것들을 해줄 수 있다 해도, 지난 시간을 돌이켜 너희들에게 전해줄 수는 없을 것이기에 스스로 오늘을, 지금을, 너희들의 시간을 잘 지키고 가꿔나가며 타인의 시간 또한 너희들의 것처럼 존중하고 아껴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