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워케이션 출발 당일
새벽 3시까지 문서와 데이터 정리를 마치고 잠이 들었고 7시 반쯤 눈을 떴다. 태생적으로 늦잠이란 걸 자는 것이 어렵고 특히나 주말인 경우는 나만의 시간이 줄어듬이 슬퍼, 조금 더 빨리 일어나기도 한다. 게다가 오늘은 밤 비행기로 하와이에 가야 하니 자는 내내 설렘과 걱정으로 뒤척였다. 임원들의 가족 모임도 처음인데 그것도 해외에서, 앞으로의 전략 미팅을 동반하며 진행한다는 것이 생소하기도 했기 때문이리라.
2015년 1월, 신혼여행지로 처음 가봤던 하와이를 일 때문에, 그것도 가족동반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에 조금은 들떠 있었기에 피곤함은 느낄 겨를이 없었다. 아침 정비를 마치고 재활용 쓰레기를 정리하고 두어 번 왔다 갔다 하며 내다 놓았고, 집 앞 커피전문점에서 아이스라테와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씩을 샀다. 날씨는 좋고 덩달아 기분도 좋은데 조금씩 피로가 몰려오는 느낌이다.
아들이 어제 먹다 남긴 백설기를 조금씩 뜯어먹으며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잔에 행복해하면서 9일간의 여정을 미리 예상해 본다. 해야 할 일들과 미팅 일정은 이미 정해져 있고, 내가 일할 때 두 아이와 아내가 이 시간을 잘 보낼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떠올려본다. 역시나 잘 그려지지 않는다. 뭐 이 또한 부딪혀 보면서 경험해 봐야겠지. 늘 고마운 마음으로 매일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분들과 이렇게나 감사한 시간을 누린다는 것이 어찌 호사가 아닐 수 있을까 생각한다. 운이 좋은 거다. 이건 다른 원인을 찾기가 어렵다. 노력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그것만으로는 불가능함을 알기에, 난 나의 선택을 신뢰한 것에 대한 답을 얻었다. 나의 생각, 신념, 결정에 따르는 삶을 살고 그것이 옳은 선택이었음을 지금의 하루가 나에게 매일 매 순간 보여주고 있다.
한시 공항버스를 타는 곳까지 부모님께서 마중 나오셨다. 우리가 귀국하기 이틀 전, 그리스로 출국하시는 어머니께서 못내 아들의 가족이 인사 없이 보내는 것이 마음에 걸리셨나 보다. 30분 정도 공항버스 정류장에 서서 '이제 곧 여름'이라며 별 것 아닌 대화를 나누고 잘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했다.
밤 9시 비행기에, 오후 3시에 도착한 우리는 일찌감치 짐 부치고 입국수속 후 면세품 인도장 들렀다 바로 KAL LOUNGE에 가서 허기를 달래고 휴식을 취했다. 잠을 넉넉히 자지못한 탓에 피로도가 몰려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감사한 마음으로 가족과 함께할 수 있음에 무한한 의미를 부여해야겠지.
라운지는 특별한 음식이 있다기보다 말 그대로 허기를 달래는 수준이고 내게 좋은 것은 업무를 처리할 수 있는 테이블 등 환경의 대비를 잘해둔 것이다. 몇 가지 업무를 처리하며 간단하게 몇 가지 음식들을 맛본다.
슬슬 기분이 좋아진다. 이후의 여정도 기대되고, 무엇보다 아내와 아이들이 들떠있는 모습이 즐겁다. 중요한 건 업무 스케줄이 예정되어 있기에 세 가족과 달리, 난 여행모드로 전환되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흔치 않은 경험들을 하고 있음에 감사한다. 이제 오후 5시 20분, 면세점으로 구경을 나간다. 완벽한 여행도 그렇다고 출장도 아닌 복합적인 상황에서 난 또 이 새로움 들을 어떻게 대면해 나갈지 궁금해진다.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에 의미를 부여하려는 나의 노력은 이런 모든 과정에 큰 도움이 된다. 사실 도움이 된다, 정도로도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의 힘이 있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내가 경험했던 17개월 정도의 스타트업은, 지난 15년간 익히고 경험했던 모든 것들과 지식의 축적이 무용할 수 있음을 깨닫게 해 준 곳이었다. 겸손해지지 않을 수 없다. 이곳에서 짧은 시간 안에 일어나는 모든 일들은 은행원 시절 짜인 프로세스 안에서 모든 것이 움직이던 때와는 모든 것이 달랐다. 준비되어 있지 않은 많은 곳에서 여러 가지 문제들이 발생했고 우리는 이것들을 해결해 가며 작은 목표부터 빠르게 달성해 나가야 했다. 주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거나 미진했던 경우 이에 대해 책임을 묻기보다, 앞으로 어떤 것을 개선하고 새로운 시도를 통해서 더 나아질 수 있을지를 논의한다.
단기간에 집중되는 업무의 양과 더불어 요구되는 집중도와 피로도는 기본이었고 포지션의 높고 낮음이란 개념이 사실상 의미가 없다. 어떤 팀이건 중요하고도 긴급한 일이 발생하게 되면 관련된 모든 인원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투입된다. '난 이런 걸 하려 오지 않았다'는 생각을 갖고서 버티기는 쉽지 않은 조직이고 또 새로 합류하여 모든 것들을 바꿔가겠다는 생각이 너무나 큰 오산임을 알게 된다. 내가 맡게 되는 업무들의 A to Z를 경험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이 과정에 미친 듯이 몰입하며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에 희열을 느낀다면 이곳은 더없이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다닐만한가를 걱정하는 누군가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최적의 정답은 없다.
앞으로 하와이에서 경험하는 1주일의 기록이, 그리고 나의 회고가 스타트업에서 경험하는 순간적인 압박감과 넓은 범위의 책임감의 파도에 어떻게 올라설 수 있었고 지금도 이런 경험을 즐기는지에 대해 잘 설명될 수 있다면 좋겠다. 지금의 가장 큰 고민은 시차로 인한 피로감이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