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전 감정의 변화
정확히 언제부터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런 식으로 일을 해도 되는 것인지 생각 들었던 적이 있었다.
새롭게 익히는 것 없이 공장에서 공산품을 찍어내듯 생각 없이, 반복해서 은행 업무를 하고 있는 내가 한심해 보였다. 가장 무서웠던 것은, 이런 생각이 들만하면 창구에 고객이 밀려들고 당시 네시반이 되면 어김없이 정문의 셔터는 내려갔다. 기업 신용조사, 대출연장/재약정/신규, 기업카드 한도증액 심사, 대량급여이체, MMDA 금리네고 등 주요 업무들이 마무리되는 시간이 되면 저녁 8~9시. 팀별 회의를 하고 있으면 객장으로 야식이 배달된다. 내일 진행해야 할 업무들을 정리하고 시계를 보니 밤 11시가 다 되어간다. 8년간 두 번의 지점이동이 있었지만 이런 패턴의 생활은 은행원으로 사는 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밤 11시 즈음하여 24시 감자탕 집으로 향한다. 팀장님과 그 시간까지 야근하던 부지점장, 차장과 함께 오늘의 반복되었던 거사를 공치사하며 한잔 두 잔 비워낸다. 새벽 2시가 가까워져서 마무리된 술자리, 집에 가서 샤워를 하며 졸던 기억도 이제는 덤덤하니 추억할 수 있지만 당시에 느낀 괴로움들은 시간이 흐르며 스멀스멀 내 몸 곳곳에 스며들었다. 내가 경험한 은행원스러운 삶은 이러했다.
그래도 한 지점에 마음 맞는 이들이 절대다수를 차지하면 이 생활도 나쁘지 않았다. 미칠 것 같던 어느 날도, 그들로 인해 위안이 되고 용기를 얻었다. 주기적으로 은행에 방문하시는 몇몇 고객분들과는 감사한 인연을 이어가기도 했다. 당시 은행원은 대외적 선호도가 높은 직업이었기에 과분한 선 자리 제안 또한 많았다. 물론 상황상 응할 수는 없었지만.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좋은 이들과의 시간은 길지 않았고 이동한 점포는 전과 같지 않았다.
심경의 변화가 오기 시작한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해도 쉽지 않고, 그래도 길어야 3년이면 또 이동일 텐데 인간 같지 않은 이와 부대끼지 말자며 스스로를 다잡아봐도 내 하루와 내 인생의 일부를 - 은행원으로 살아가며, 그것도 너무나도 중요한 시기에 - 갉아먹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내기 어려웠다.
퇴사에 대한 넘치는 생각과, 은행원 보다 나은 직업이 없을 것이라는 절망감이 내 안에서 사투를 벌였고 결국 '좋은 게 좋은 거다. 대충 넘어가자'는 합리화가 매일 자정 무렵 이루어졌다. 적어도 내 경험엔, 내가 은행에서 경험했던 복지와 환경 이상의 것을 가진 기업은 찾기 어려웠다. 급여 수준 또한 나쁘지 않았고.(지금의 수준은 정확히 알지 못한다.) 그러나 개인의 성장이든 능력에 맞는 보상이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여지는 크지 않았다. 당시의 호봉제는 정해진 연봉을 기준으로 급여를 책정하였고, 한번 정해진 기업금융직군에서의 탈피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개인의 능력과 지점장의 승인과 점포의 상황 모든 것이 맞아떨어졌을 때나 '고려'해 볼 수 있는 사항들이었기에.
퇴사 직전의 상황은 정말 심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게 우울증이지 않았나 싶다. 자다가 새벽에 갑자기 일어나 눈물을 뚝뚝 떨구며 서럽게 울었다. 방 안에서 그 소리를 들으며 6개월 된 첫째 딸아이와 자고 있던 아내는 아픈 마음에 나를 토닥이는 메시지를 보내주기도 했다. 이런 날이 반복이었다. 그렇게 썩어 문드러진 감정을 게워내고 나니 어느 순간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 들었다. 은행원? 별거 아니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어찌 되었건 나의 인생이고, 선택권 또한 내가 갖고 있으며, 결정적으로- 단 한 번뿐인 나의 삶이었다. 그렇게 나의 퇴사준비는 시작되었다.
결과적으로 은행원의 옷을 벗은 것은 실패한 선택은 아니었다. 등을 돌려 발을 뻗은 자리엔 새로운 세계가 있었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8년간 331%가 넘는 연봉의 인상이 있었고 경제적, 시간적 자유의 폭이 넓어졌다. 그리고 난 나의 조직에서 함께하는 이들이, 내가 경험했던 불합리를 경험하지 않는 기업이 될 수 있도록 애쓰고 있다. 물론 쉽지 않지만, 적어도 이곳에서 원하는 수준의 보상을 받지 못한다면 더 멀리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의미 있는 경험들,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도록 환경을 신경 쓴다. 뜻대로 되는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는 결정의 권한이 있고 이것이 옳은 것을 향해 있음 또한 알고 있다. 그렇기에 계속해서 나아간다. 유토피아적 조직을 꿈꾸는 것은 아니나 적어도 이성과 상식이 존중받는 곳이길 소망한다. 가끔씩 나조차도 감당하기 버거웠던 상황들을 누군가에게 물려주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가고자 하는 길이 명확해서, 준비가 잘 되어서, 마음속 뜻한 바가 분명하여 선택한 퇴사는 아니었다. 나는 나로 살고 싶었고 당시의 유일한 길은, 은행원이기를 포기하는 것이었기에 내 선택을 옳은 것으로 만들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정말이지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 부모님이, 처가에서, 극심한 반대가 이어졌으나 나는 나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에게는 이기적으로 보였을지 모르겠으나 어느 누구도 책임져주지 않을 내 삶이었다. 나의 결정에 타인이 주도권을 갖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시도를 허용하지 않았다.
운전대는 내가 잡고 있어야 한다.
브레이크든 악셀이든 내가 밟아야 하는 것이다.
지금 내 삶의 운전대를 누구에게 내어주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