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퇴사 8년 차 회고
은행원으로 살았던 8년 정도의 시간은 내게 있어 배움의 기회였고 고통의 원천이었으며 사회생활의 단면 모두를 엿볼 수 있던 경험이었다. 당시의 모든 일들이 아직까지는 기억 속에 남아있고, 몇몇 경험들은 다른 버전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려 계획하고 있다. 열 살, 여덟 살인 너희들이 이해하기엔 아직 버거운 내용일 수 있겠지만 말이다. 물론 지금의 은행이 아빠가 있던 당시의 모습과는 많이 다를 수 있겠고, 너희들이 경제활동을 하게 될 시기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추억의 단편일 수도 있겠다. (앞으로도 이 제품이 회자될지 모르겠으나 '815 콜라'라는 것이 있던 때가 있었는데, 아빠와 함께 일하는 90년대생 삼촌들은 KBS 아카이브 에서나 볼 수 있는 콜라 스토리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업무의 어려움보다 은행원은 늘 배워야 하는 환경에 놓여 있었고 이에 대한 부담이 존재했다.
매년 100시간이 넘는 온라인 교육을 이수해야 했고 이는 언제나 지점의 업무가 마무리된 이후에나 가능했다. 당시 나의 평균 출근시간은 06시 50분, 퇴근시간은 22시 30분. 기업창구에 있던 거의 모든 동기들이 그러했다. 삼십 대 시절의 난 나름 잘 버티고 있다 생각했지만, 부모님 입장은 그렇지 못했다. 늘 그렇지 않은가? 환갑이 넘어도 자식은 자식이라고.
그런데 문제는,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문제는 이 세계 밖을 보기가 어려웠다는 것이다.
당시 내가 있던 은행 조직은 15,000명 정도의 규모였고 이후 점포 축소 등을 통해 13,000명까지 인원을 줄여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한동안 뉴스에서는 이런 내용들을 지속적으로 다루기도 했고, 또 반대편에서는 그럼에도 은행은 성과급 잔치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난, 그게 무엇이든, 지금의 삶이 큰 변화 없이 유지되길 바랐다. 먹고사는 것에 크게 걱정할 필요 없는 수준의 급여와 복지 혜택은 나를 계속해서 끓는 물에서 안락하게 유영할 수 있도록 토닥여주었고 이토록 순조로운 삶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지내다 보면 어찌어찌 지점장까지 하고 운 좋으면 본부장도 하겠지, 아 나는 조직 내 비밀리에 결성되는 사조직 문화를 반대하니 여기까진 어려울 수 있겠다. 그럼 어때, 연봉은 계속해서 오를 테고 시간이 지나서 일이 더 익숙해지면 상황은 계속해서 나아질 텐데.'
이게 나만의 문제였는지는 모르겠다. 개인의 삶과 가치를 고민하기에 은행이란 조직은 내게 그 틈을 주지 않았고 점차 등 떠밀려 사는 하루하루가 되어갔다. 매머드 급 조직의 일원이니 이 정도는 감수하라는 지인들의 이야기가 곱게 들리지 않았고, 저 밑바닥에서부터 올라오던 나의 자존감은 끓는 가마솥에서 뛰쳐나가라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보수적이다 못해 폐쇄적이었던 은행, 어떤 면에선 정말이지 따뜻했던 곳이었음을 인정한다. 퇴사한 이후 5년간은, 굳이 경험하지 않을 수도 있었던 일들을 너무 많이 겪으며 하루를 버텨냈다. 정말 그랬다. 그럼에도 은행을 나온 것은 잘한 일이라 스스로를 위로했고 다독였다.
인생의 방향에 대해 누구나 한 번쯤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된다.
그런데 그 고민은 선택을 필요로 하고, 필경 그래야만 변화하든 적응하며 장악해나가든 방향을 설정할 수 있다. 나의 기준에서 은행은 당시, 상대적으로 높은 급여와 복지를 제공했고 그 대가로 난 나의 시간과, 자존감과, 삼십 대의 젊은 날과, 스스로의 원칙과 도덕성을 내어 놓아야 했다. 난 이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고, 내게 제기하는 의문이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반응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의 따뜻함을 포기했다. 힘든 시간의 수많은 일들은 앞으로 하나 둘 풀어가 볼 계획인데 은행은 나의 첫 직장이었고, 은행원이 내 첫 직업이었기에 이 과정에서 경험하고 느끼고 배운 것들이 앞으로 나의 딸, 아들 너희들이 살면서 겪게 될 일들과 전혀 무관치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결정을 내려야 하는 상황 그로 인한 책임 그리고 나의 선택이, 꼭 오늘 22대 총선의 상황과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웃픈 생각이 해봤다.
끓는 물이, 말 그대로 '끓고 있는 물'이란 사실을 깨닫는 혜안이 그로 인한 선택이 나에게는 중요했고 유효했다. 그 어떤 안정감도, 물질적 풍요로움도, 너희들이 넓은 시각으로 세상을 경험하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잊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