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고 싶었습니다

휴지기(休止期)를 앞두고

by Davca

무슨 용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다가오는 2022년 새해부터 일을 잠시 쉬어보기로 했습니다. 아이 둘의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아내와 그 과정에 '함께'하고자 하는 이유 반, 나를 위한 시간을 갖고자 함이 나머지 반(이라고 씁니다만, 실상 한쪽으로 무게가 쏠려있음을 부인하기는 어렵겠습니다) 이 휴지기의 그럴듯한 구색이 되어주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두 번의 이직을 하는 40대 초반까지 아주 잠시 동안의 쉼은 있었지만, 조직의 승인을 받고 국가의 금전적인 지원을 받는 유아휴직의 경우는 처음이니 걱정과 티끌만큼의 안도와 철없는 설렘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거창하지는 않습니다만, 우선은 3개월 정도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초등학교 입학통지서를 받은 첫째의 적응을 돕고, 아내와 시간을 보내려 합니다. 요가와 필라테스를 해보려고요. 아무래도 지출을 최소화해야 하면서도 몸과 마음의 건강을 돌보는 일은 양보하고 싶은 생각이 없기에 근처 주민센터에서 열리는 강의도 신청해보려 합니다.



우선은 주어진 3개월 동안 꼭 해보고 싶은 것들이 있습니다. 나의 일을 좋아하고 존중한다는 의미로(이제 와서 보니, 정말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지 그렇게라도 생각해야 했던 건지 헷갈리긴 합니다) 두 아이와 아내보다 팀원들을 더 챙겼던 것 같습니다. 입으로는 내가, 그리고 가족이 먼저이고 건강이 가장 중요하다는 판에 박힌 말을 하면서도 정작 제 스스로는 언행일치 하지 못하는 생활을 이어왔습니다. 그러다 보니 제가 보이지 않더군요.


시야가 흐려지고 머릿속이 멍해지며 지나간 실수와 실패만이 떠올랐습니다. 동료의 피드백 한두 가지가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기도 하고, 적극적으로 회의에 참석하기도 어려워졌습니다. 어느 순간 입이 닫혔고 그렇게 마음도 닫혀가는 저를 보며, 아득한 정신을 붙잡고 이유를 더듬거려봤습니다. '나'라는 존재가 갖고 있는 특이성과 독창성을 무시하고, 오랜 사회적 통념에 부합하기 위해 자신을 감추기도 했습니다. 겉보기 좋은 결과는 나의 최선의 결과이며 이것이 나의 성과이고 성취라는 안도감을 누려왔습니다. 시간이 지나니 공허함이 밀려오고 내려놓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내내 아쉬워했던 생각 한 가지는, '내려놓음'의 생각을 처음 했던 2개월 전에 멈췄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었습니다. 두 달 동안 꽤나 더 빠른 속도로 제가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방전 상태에 이르렀거든요. 아, 이쯤에서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다들 그렇게 희생하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얘기를 저도 인정합니다. 다만 이 전제에 대한 인정과 더불어, 저의 상대적 나약함과 끈기 없음 또한 인정합니다. 모든 실패는 경험이었기에, 이제 저는 저의 판단과 감각을 믿는 선택을 할 뿐이고요.



새벽 4시 언저리에 눈을 떴습니다. 이내, 100여 일간 짤막한 글로 남기고 싶은 주제들을 휴대전화 메모장에 두서없이 써봤습니다. 역시 아이디어의 생산과 가공에는 새벽만큼 좋은 시간도 없습니다. 여명이 밝아옴과 동시에 앞으로의 시간도 지금의 기대감처럼 긍정의 기운으로 나의 공간을 지배해줬으면 하는 소망도 조용히 바라봅니다. 4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하지 못했던 것들이, 3개월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고 얼마나 개선과 성장을 보이겠습니까마는, 적어도 나 자신에 대해 솔직해지고, 그런 솔직한 대화를 기록해나가며 남은 시간들의 행복의 정점에 이를 수 있다면 저의 마음은 지금보다 더 평온해지겠지요.



철없는 아빠의 소심한 일탈로 보일 수밖에 없는 세대에 태어나 자람이, 아직도 이러한 선택을 하는데에 있어 그리고 그것을 주위에 알리는 데에 있어 난해함을 겪습니다. 배려했고, 이해했고, 양보했고, 침묵했고, 주저했고, 편승했고, 후회했고 그래서 점점 잃어가는 제 자신에게 미안해서 이번에는 조금 이기적인 나의 시간을, 그것도 아주 제대로 안락하고 편안하게 보내보고자 합니다. 지나간 일에 대한 후회는 접어두고, 오늘의 행복만을 생각하고 감사하는 시간들의 기록을 통해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를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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