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하는 동안 난 매우 외향적이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를 좋아하며 그 안에서 삶의 에너지를 얻는 유형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실제로도 사람을 모으고 모임을 주최하며 이끌어가는 것을 즐기기도 했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난 나에 대한 다른 면을 보기 시작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나라는 사람이 혼자 있는 시간을 즐기고 소음보다 침묵이 안정적이라 느끼며 하루종일 집에만 있어도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다는 생각으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와이파이가 잘 터지고 노트북 하나만 있어도 하루 온종일 나만의 시간을 알차게 만들어갈 수 있고, 여기에 종종 즐겨 듣는 클래식 라디오 프로그램만 계속 틀어놓을 수 있다면 더할 나위가 없다. 커피는 줄이려 하고 있으니 녹차를 우려내거나 다른 종류의 차를 마시고 가끔은 시원한 우유 한두 잔이면 감사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 여긴다. 가끔 아내가 주말을 활용해서 두 아이들을 데리고 친정엘 가거나 하면, 밤새 못 본 책을 읽을 수도 있고 묵힌 감정들을 조용한 공간에서 글로 풀어낼 수도 있다. 최적의 환경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휴대전화의 전원을 꺼두는 것이다. 누군가의 연락으로부터 차단하겠단 의미보다 스스로의 디지털 디톡스를 위한 방안인데 주중엔 밤 9시, 주말엔 하루정도 아예 전원을 켜지 않는다. 2년째인데 업무적으로 문제가 생기거나 지장을 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혼자된 시간을 선호하는 성향의 내가 20년 가까이 영업직군에서 신입부터 임원까지 성장했다는 것은 좀 의외이기도 하다. 물론 한 직장은 아니나, 발전적인 위치로의 이동이었고 연봉의 인상까지 곁들였으니 충분히 감사할만한 결과로 봐도 무방하지 않나 싶다. 누군가와 비교를 시작하며 끝이 없겠지만 나는 나로서, 나만의 길을 가는 것이니 '견줄' 이유가 없다. 애초에 불요한 것이다.
더디 온 길이고 한걸음 한걸음이 매 순간 어려웠다. 때론 도망도 쳤고 숨어도 보고 주저앉기도 했다. 내 역량을 넘어서는 일이라 생각될 땐 이런 상황에 대한 대상 없는 원망도 해봤다. 그럼에도 뾰족한 수가 없었고 난 그저 오늘 내가 해야 할 일에만 집중했다. 영업이 좋았던 것 중 하나는, 시간이 매우 잘 간다는 것이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일정과 동선을 짜고 일간/주간/월간 실적을 예상하여 계획하는 것을 매일의 변수와 맞물려 진행했기 때문이다. 예측하고 실행하고 또 계획하고 다시 실행하는 것을 반복했고 계획의 무용함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계획 수립을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계획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당시 멘토의 말씀처럼 이 부분에 많은 에너지를 쏟았다. 되려 혼자 있는 시간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를 잘 알고 있는 나로선 이 과정이 매우 재밌었다. 가망고객과 통화하고 일정을 잡고 미팅을 위해 이동하는 일을 12년간 지속한 셈이고 그 이후 6년간은 조직과 문화와 채용 그리고 교육에 비중을 높여갔다. 영업을 하는 것과 영업을 하는 이들의 리더가 되는 것은 전혀 다른 성질의 것임을 강도 높게 경험한 시간이었다.
영업은 나와 고객의 관계가 주다. 영업인의 리더는 고객을 사이에 두고 있는 영업인과 조직을 아우르는 포용성이 주다. 공통점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경청해야 하는 태도가 기본이기 때문이다.
필요한 얘기를 적절한 시기에 건네고 상대가 필요로 하는 것에 대해 잘 듣는 태도에는 내향인 외향인이 따로 없다. 지극히 개인적인 성향에 달려있는 문제다. 영업을 잘하는 이들을 지켜보면 두 유형이 있는데 스스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며 잘하는 이들이 있고, 상대의 얘기를 매우 집중해서 잘 듣는 이들이 있다. 후자는 눌변일 수 있지만 성과가 좋다. 대게 말 잘하고 붙임성 있는 이들의 성과가 탁월할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그렇지도 않았다. 또한 이런 성향은 피드백을 통해 보완이 되기도 했다. 노력으로 가능한 범위가 존재했고 경청, 침묵, 질문으로 영업의 성과를 낼 수 있는 기술들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내향인이냐 외향인이냐는 애초부터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던 것이다. 사람을 만나 대화하고 관계를 이어가는 과정에서 요구되는 기술들을 잘 학습한다면 영업이라고 특별히 더 어려운 업무의 영역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나 자신을 내향적이라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외향적이었던 나의 성격이 내향적으로 변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또 어떤 상황이 닥치면 외향인으로 바뀔지도 모르겠고. 지난 시간 동안 사람에 지치고 영업에 지쳤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계속 나만의 시간과 공간을 찾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다행인 점은 그렇게 힘들다고 생각되는 시간들을 보냈는데 기억에 남는 것은 좋은 성과를 만들어 냈던 장면들이다. 운도 따랐고 감사한 이들이 늘 함께했다. 성과라는 것이 나 혼자만의 노력으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님을 알게 되었을 때, 더 많은 가능성을 보게 되었다. '나와는 어울리지 않는' '나의 성향과는 적합하지 않은'이라고 단정하기보다 그 일에 필요한 본질적인 기술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본다면 지금 우리가 생각하고 고민하는 일들에 접근하지 못하는 이유들이 어느 순간 쉽게 허물어짐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좋은 스승을 만나 교육을 통하여 단계적으로 성장해 가는 과정을 함께할 수 있다면 내향인이라는 사실은 영업에 지장을 주는 요인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