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을 하기 위해 은행원이 된 것은 아니었다.
2007년 당시 대내외적인 금융환경이 녹록지 않았고 채용시장 또한 얼어붙었다. 무조건 안정적인 곳에서 커리어를 시작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기에, 조금 오래 걸리긴 했지만(졸업 후 11개월 만에) 은행원으로 첫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봐도 나로서 이런 행운이 없었다. 퇴사 후에 계속된 커리어 여정에 첫 직장의 단추가 내겐 매우 중요하게 작용했다.
문제는 기업창구에 있으면서 업무를 익히는 것과는 별개로 관계에 집중해야 하는 물리적 비중이 높아졌다. 불필요한 감정소모도 있었고 팀을 위한 희생도 있어야 했다. 원치 않는 술자리는 시간과 간을 좀 먹었었고 팀장을 집 앞에 모셔다 드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새벽 택시 안에서 피로함과 허무함을 느꼈다. 하지만 그마저도 감사하게 생각해야 했던 시기였다.
그렇다면 난 영업을 잘했던 직원이었나? 결과적으론 그랬다.
10년 가까이 되면서 경험과 내공은 자연스럽게 쌓여가고 소소한 실적들을 잘 적립해 갔기에 좋은 성과로 표창도 받고 나름 영업본부에서 눈에 띄는 직원이 되어있었다.
그렇다면 난 영업을 좋아했던 직원이었나? 선뜻 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반반 정도라고 해두는 게 맞겠다. 보람을 느낄 때도 있었다. 이런 날은 영업하길 잘했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은행원의 영업을 생명보험 영업과 비교하면 영업이라 보기 어렵다는 것을 이직 후에 알게 되긴 했지만 당시론 내가 정말 영업에 소질과 재능이 충만한 은행원이구나 싶었다. 자신감도 있었고 자부심 또한 넘쳤다. 그러나 기업과 은행, 특히 기업창구 간의 메커니즘으로 살펴볼 때 대출실행에 이어 '부수적인 상품가입'은 관례적인 요소였다. 돈을 빌리러 온 기업 대표들에게 기업신용카드, 임직원 급여이체, 방카, 펀드 등을 법이 허용한 범위 이내의 금액으로 가입을 유도했고 이 실적의 결과에 따라 '영업 우등생'이 탄생하던 시절이었다. 영업적 역량과 기술이 높은 수준으로 요구되지 않았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러한 영업 패턴이 정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모두에게 이득이 되어야 하는데 대부분의 경우 '기우는 거래'였고, 그마저도 이 대열에 끼고 싶어 하는 소상공인 들은 대부분의 대출이 거절되었다. 뭐 이런 영업관행의 옳고 그름을 논하려 하는 것이 아니니 여기까지만. 이미 은행을 떠나온 지가 10여 년이니 지금은 더 선진화되고 달라져있길 기대해 본다.
첫 직장에서 비교적 좁은 범위의 영업과정에서 경험한 성과들로 인해 난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은행을 퇴사하고 이직한 이후, 스스로 영업적 소질에 대한 큰 착각으로 긴 시간 고난의 터널을 지났다. 매번 죽을 것 같았던 것도 아니고 성과에 대한 높은 보상으로 인정을 받은 경험 또한 적지 않았으며 이 모든 것이 다시 영업을 잘하기 위한 배움의 시간이었음은 분명했다. 돌아보니 그 시간들이 벌써 20년이 채워져 간다. 그런데 하나 아쉽고 또 나로서도 의문이 생기는 지점은, 단 한 번도 나의 일, 과정, 성과의 도출 등 영업과 관련된 내용을 조직 내에서 교육을 위한 목적 말고는 정리해 본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문득 이 시간의 경험들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소개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큰 부분임에도 난 무엇 때문에 이 얘기들을 공개적으로 기록하는 것을 피해왔던 것인가.
갑자기 영업이 싫어진 것은 아니다. 어려움이야 늘 있었고 영업의 꽃은 보상이었으니 이만하면 '싫어할' 만한 환경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저 일에 지친 것일까. 아니면 영업 '조직'을 이끌어가는 어려움이 영업을 싫어하는 것으로 느껴지는 것은 아닐까.
영업에는 무리한 요소가 따르는 경우가 많다. 대게 목표가 위에서 아래로 오기에 '무조건' 맞춰야 할 때가 부지기수고 여기에서 고민이 시작된다. 높은 실적에 대한 압박도 잘 이겨내 온 터였는데 이제 그런 무리수 영업은 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한 으레 영업조직이면 제품이 어떻든 '일단 팔아와'라는 입장의 대화가 조직 내부에서 이뤄진다는 것이 불편했다. 설령 일단 팔아오는 상황이더라도 이후에 발생될 수 있는 문제에 대해서는 조직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할 텐데 이것이 잘 이루어지는 경우가 드물다. 어디 영업이 좋은 자리 다 깔아주고 편하게 하세요 하는 곳이 있겠냐마는, 적어도 정상적인 상황에서 상호 간 이득은 가져가야 그 관계 또한 지속될 수 있음을 오랜 시간 겪어왔다. 마음이 동하는 영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 것 보면 아직도 난 순수한 것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을 잘하는 사람이 진정 영업의 달인이라고 생각한다.
더 중요한 길을 내며 가야 하는 시점이기에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다. 일의 의미와 보람 또한 중요한 가치다. 그리고 여기에서 쌓이는 나만의 스토리가 오래 남을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한 생각이 주를 이루다 보니 연봉 너머에 있는 가치적 자유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또한 이 과정에서 나의 관심을 끄는 주제들 또한 많았다. 조직의 문화, 인사와 보상 등. 이런 경험들도 해보고 싶었다. 그럼에도 영업과 별개로 나의 커리어를 생각하긴 어려울 것임을 안다. 영업성과와 성공과 관련된 많은 인자들이 나의 곳곳에 박혀있을 터이니 그것들을 내어놓고 이쁘게 정리하여 나를 팔아야 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그 외에는 직업적으로 인정받았던 것이 없으니 말이다. 강성의, 불굴의 목표 지향적 인간이 아니어도 영업은 잘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좋은 운의 힘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몰입과 끈기로 좋은 성과를 내는 것이 어디 영업뿐이겠는가.
이제 영업은 그만하고 싶다는 얘기를 가까운 친구에게 한 적이 있었다. 그럼 뭐 먹고살 거냐,는 응수보다 지금이라도 네가 하고 싶은 거 해보라는 말이 고마웠다. 우선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찾기 위해 허공으로 손을 뻗어 허우적대기보다 영업으로 채워 온 지난 시간들의 기억과 기록을 다시금 잘 정리해 보는 시간을 만들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