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는 했지만 이직은 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찾아가는 나의 직업 정체성

by Davca

호기롭게 출판 프로젝트를 계획했었다. 그게 벌써 두 달 전 일이다.



아, 이거다 싶은 것도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열기가 식었는데 이 과정에 몇 가지 스토리가 있긴 했지만 프로젝트를 해보겠다 시작한 것도 나고 접은 것도 나였다. 가만히 자리에 앉아 관악산을 보는데 생각 하나가 스쳐 지나간다.



흔들리는 이빨 하나가 있다.
오래전 일부치아를 살리고 그 위에 씌워 둔, 그것도 윗 어금니가.
그러면 이걸 다 뽑는 게 맞는 것인가, 그나마 붙어 있는 것이 잘 버티게끔 관리하는 것이 중요한가.



지금까지 난 이 흔들거리는 어금니를 달고 왔다. 이러다 빠지면 어떻게 하지, 이게 빠지면 다시 덧씌워야 하는 걸까, 아님 임플란트를 해야 할까. 뭐가 되었든 일정 수준의 고통이 수반될 텐데 아프지는 않을까, 이런 고민들을 하며 말이다. 어떤 날은 유독 흔들리기도, 또 어떤 때는 갑자기 견고해진 것 같은 착각을 되풀이하며 시간은 체감하는 것 이상으로 빠르게 흐른다. 직업이란 것은, 아니 직장이란 곳은 내게 그런 존재였다. 흔들리는 어금니. 정말 중요하고 없으면 죽을 것만 같은 그런 것.



그런데 살다 보니 이건 내가 겁먹은 것보다 훨씬 덜한 불편함만 감수하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월급을 받으며 사는 것은 아닐 테니 말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난 아주 조금 용감해졌다. 이걸 용기라고 생각하는 것도 우습다. 누군가의 삶을 대신 사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는 것인데, 내가 속해있는 세상에선 나의 유별남을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이 대다수였기에 나는 늘 눈치를 봐야 했다. 가끔은 숨기고 쉬쉬하고 최대한 눈에 띄지 않게 말이다.

누구나 흔들리는 이빨 한두 개쯤은 갖고 있는, 아니 흔들리지는 않더라도 그 정도의 문제는 달고 사는 것이 인생인데, 그걸 삼겹살에 소주 두어 병으로 씁쓸하게 웃어넘길 너그러움이 내겐 없었다. 내가 속한 관계의 세계에서 난 독특한 존재일 수밖에 없었다. 9년 전 은행을 퇴사한 그때부터 말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어떠한가.

나는 이 어금니를 뽑은 것일까.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으나, 아직은 그러지 못했다. 다만 이 불안함을 안고 새로움으로 극복하는 방법을 찾아내는 중이다. 이를테면 뛰고 걷고, 읽고 생각하며 쓰는 행동들을 통해서 말이다. 단 기간에 극적으로 철이 들고 어른스러움이 충만한 사람이 될 수는 없겠지만 문제에 '잠식'당하지 않고 '함께' 생활하는 법 정도는 터득해 가는 중이다. 그러면서 서서히 문제에 대한 신경은 둔해지고, 나에 대한 집중과 몰입은 높은 수준으로 향상된다. 일정 수준의 준비가 되고 새로움을 받아들일 마음의 상태에 도달하게 되었을 때 난 흔들리는 어금니를 뽑을 수 있는 용기가 생길 것이다.



이 문제에 정답은 없다. 누군가는 문제의 근원부터 전부 뽑고 그 공간을 채우고 또 인내의 시간을 거쳐 새로운 치아로 재건하는 결정을 할 것이다. 또 어떤 이는 일단 쓰는 데까진 잘 써보자 마음먹고 신경 써서 관리할 것이고.

그리고 한 부류. 문제라는 사실조차 잊고 가던 길 가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발치에 대한 고민과 세세한 관리에 대해 집착하지 않는 부류가 되겠다. 문제야 어디서든 늘 있을 것이고 이에 일일이 반응하며 시간을 보내기에 우리의 삶은 짧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때가 되면 빠질 수도 있고, 꽤 오랜 시간 동안 흔들거리는 채로 살 수도 있다. 덧씌운 치아 안에 뿌리와 일부 치아는 살아 있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겉에 씌워둔 작은 도자기 하나에 전전긍긍하며 고민과 걱정으로 시간을 보낼 수는 없지 않겠는가.

해석하기 나름이니 누군가에겐 큰 문제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현상일 수도 있겠다. 중요한 것은 해석이다.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난 제3의 선택을 하기로 결정했다.

일단 지켜보기로 말이다. 물론 언젠가는 의학적 치료가 필요함은 인정했다. 다만 그것이 지금이어야 한다는 결정은 내리지 않았다. 아직은 버틸만하겠다는 비의학적 소견이 때론 내게 더 중요하기도 하다. 이것은 나의 시간과 에너지와 자유의지에 엮여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치료의 회피가 아닌, 이 상황으로 불필요한 고민을 하지 않고 '지금 내가 해야 하는 것'에 집중하겠다는 뜻이다. 앞으로 나의 인생이 어떤 식으로 흘러갈지 아무도 모른다. 이 모든 것이 나의 생각과 몰입에 따라 달려있겠지만, 내가 어떤 생각에 무게를 둘지 나로서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때가 오면 치과를 가겠고.



퇴사는 했지만 이직을 유보한 선택에는 여전히 마음의 동요가, 불안정이 함께한다. 그 불안함을 안고 살아내는 법을 배워가는 중이다. 굳이 이걸 이기고 극복하겠다는 굳은 의지 같은 것은 갖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유유히 흘러가다 또 그때에 맞게 적응하고 더불어 사는 방법을 깨치는 것이 더 현명한 선택이라는 것을 지난 시간 동안 숱하게 학습했기에 오늘의 흐름을 충분히 타고 가는 것이 지금의 내가 가장 잘하고 싶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