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지수를 잘못 찾은 헤드헌터

해프닝이라기엔 큰 실수가 아닌가

by Davca

오전부터 정신이 없었다.



아이들은 학교에 가고 그 이후에 설거지를 하고 청소기를 돌리고 이불정리를 하고 아내와 외출을 했다. 엊그제 포지션 제안으로 DM을 보낸 헤드헌터의 제안을 수락한 것을 잊고 있던 차에 전화벨이 울렸다. 직함은 부장이나 연륜보다 개성이 느껴지는 에너지 넘치는 말투였다. 해당 포지션에 대한 안내와 더불어 최근 연봉에 대한 질문이 이어졌다.



아, 그 정도까지는 맞추기 어려울 것 같은데 성과급 포함하면 비슷할 것 같습니다.




여기서부터 뭔가 어그러지는 느낌을 가졌던 것일까.


기본급을 낮추더라도 전체의 보상 크기를 유사하게 유지할 수 있다는 뉘앙스의 말이 긍정적으로만 들리진 않았다. 그럼에도 이 분은 현재의 보상 수준을 맞출 수 있는 다른 포지션이 있으니 이에 대한 내용도 정리해서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C-Level 한 명의 이직으로 받게 될 수임료가 적지는 않을 것이고 이분의 역할은 이런 것일 테니 감사하다는 말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아내와 백화점을 구경하고 나오던 길에 다시 전화가 왔다.

COO 포지션으로의 지원을 추천하겠다는 것이다. 사실상 세일즈 마케팅의 경력이 전부인 나로서는 다소 의아하긴 했으나 해당 기업에서 거절하지 않았으니 굳이 피할 이유 또한 없겠다 싶었다. 뭐든 나의 경험이 도움이 될 테니 말이다. JD와 함께 메일을 보낼 테니 최근 이력서를 회신해 달라는 요청에 금일 오후 6시 전까지 회신하겠다고 하고 집으로 향했다.




오후 5시가 되어도 메일은 없었다.

문자로 내 이메일 주소(네이버)를 보냈는데 지메일로 프로필에 나와있어서 거기로 보냈다는 것이다. 참고로 채용 관련 프로필에 난 항상 같은 이메일 주소만 사용했다. 최근 구글 워크스페이스의 사용이 늘면서 개인 작업용으로 지메일을 쓰고 있긴 하나 뭔가 이상했다. 더 중요한 건 지메일로도 도착한 것이 없었다. 스팸함에도.


곧 문자로 보낸 이메일 주소로 JD가 도착했는데.



다른 사람의 이름이었다.



이내 다시 문자가 왔다. 오전에 통화한 다른 분과 착각해서... 바로 다시 전화를 주겠다는 것이다.

예상대로 COO포지션에 추천한 대상자는 내가 아니었다. 말 그대로 두 명과 동시에 연락을 주고받다, 내가 그분 인줄 알고 메일을 잘못 보낸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이 짧은 순간에도 내가 기대라는 것을 했다는 사실이다.

그 기대가 '재밌겠는데?'에 머물든 '한번 해보고 싶은데?'라는 적극적 마음가짐으로 흐르든 아직 나의 것이 아닌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설렘을 자의적으로 추가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슬펐다. 퇴사자의 긴 공백엔 자존감이 없다는 친구의 말처럼 작은 상황과 환경의 변화에 이미 휘둘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 순간이었다. 내가 지켜야 할 것들을 지켜가는 그런 시간들이어야 한다. 그것이 갭이어든 갭먼스든.



*그럼에도 헤드헌터 분들이 이런 실수는 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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