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의 정석

퇴사의 끝은 이직이 아니다

by Davca


2016년 5월 은행을 퇴사하고 십여 년이 흐르고 있다.


다른 무엇보다 오직 나 자신만을 생각했고, 이 선택이라면 앞으로 닥칠 어려움도 지금보단 나을 거란 판단을 했었다. 그로부터 10년이 되어가는 지금 나는 네 번의 이직과 퇴사를 경험했다. 결국은 온전한 나만의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면, 어느 조직이건 다 '거기서 거기'일 수 있고 그 안에서 의미와 즐거움을 찾는 것은 스스로의 몫임을 깨달았다. 퇴사와 이직에 옳고 그름은 없고 오로지 '오늘의 선택'만 존재한다. 근원이 무엇이든 그 선택은 나의 것이어야 하며 현실적인 상황, 여건 등을 고려해도 결국 내 마음의 목소리는 점점 커질 수밖에 없음 또한 경험하고 있다. 아마도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고민들을 하는 비슷한 나이대의 마흔 중반에 있는 분들이 계실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과 함께, 개인적인 실패와 성공을 오가며 생각했던 것들이 어떤 이에겐 위로와 희망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




사람 때문이기도, 회사 때문이기도, 돈 때문이기도, 가족 때문이기도 했다. 그 어떤 것도 퇴사의 이유가 될 수 있었고 그것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뚜렷한 이유, 감정에 치우치지 않은 선택, 준비되어 있는 퇴사와 같은 단계적이고 체계적인 준비란 교과서적인 얘기에 가까웠고 그때를 기다리기엔 타들어가는 나의 몸과 마음이 당장을 버티기 어렵다는 생각이 매 순간 찾아들던 때도 있었다. 퇴사란, 그리 거창한 것이 아니며 그저 내 마음이 외치는 소리가 특정한 행동으로 이어진 한 단락의 맺음이었다.




이유가 뭐든, 나는 이곳에 있을 수 없다





그렇게 끊어내고 숨 쉴 틈이 생기면 뭐라도 새로운 세상이 열리고 영화와 같은 우연의 연속이 행운처럼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기대 속에 살아보기도 했다. 오늘의 내가, 지금의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하면서 하루라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와 깊은 연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으나(모두가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명상도 하고, 거리로 나가 달려보기도 하고, 아침 독서와 글쓰기를 하며 보내다 보면 이런 성실함으로 무언가가 될지도 모르겠다는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나의 성실한 루틴에 내가 빠져드는 것인데, 이 자체로는 아무 일도 생기지 않는다. 우리가 행하는 일들이 진정한 아웃풋이 되기 위해서는, 나 자신의 경계를 넘어서야 한다. 소극적인 성실함이 아닌 세상으로 한 걸음 나아가 잔잔한 호수에 계속해서 돌을 던지는 시도가 필요한 것이다. 오늘은 냅다 던져보기도 하고, 내일은 비스듬히 던져보기도 하고, 그다음 날엔 더 큰 돌을 던져보는 등의 다양한 노력을 나의 울타리 밖에서 계속해서 시도해야 하는데, 지극히 제한적인 범주안에서만 성실했던 나 자신은 늘 기대하던 실질적인 '기회'를 만들어내지 못했다.





내가 행하는 아웃풋이라는 것은 이직이라는 시장(Market)에선 스스로를 손가락 한마디만큼만 나아지게 할 인풋에 불과할 수도 있는 것이라, 어떤 식으로든 나를 드러내는 것이 필요하다. 책을 열심히 일고 꾸준히 글쓰기를 해도 그것이 누군가에게 읽힐 수 있는 기회를 찾아 내보여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어색한 적극성'을 보일 필요도 있는 것이다.



나는 이랬던 사람이 아니고, 이건 잘 어울리지 않는데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그렇다.

그것이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통로 중 하나라면 바로 그것을 해야 한다. 이러한 시도 전과 후에도 늘 한계(마음속에서 스스로 선을 긋는 행위와도 같은 것)는 생기기 마련인데 그 선을 어떤 식으로든 넘어가야 새로운 기회의 창들이 열리게 된다. 가만히 앉아 나의 성실함으로 루틴을 마무리했다고 하더라도 인생이 극적으로 달라지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이든, 내가 하려는 것들과 지금까지 내가 해온 것들을 적절하게 알릴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힌다. 계속해서 두드리고 두드리는 것이다. 당장은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 있으니, 지치지 않고 마음 상하지 않으며 꾸준히 반복적으로 해나가려는 실행이 중요하다.



퇴사가 마주해야 하는 결말은 이직이 아니다.



나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이 사업이건 디지털노마드로서의 삶이건 홀로 설 수 있는 방법과 능력을 깨우치는 일이 되어야 한다. 한 번은 큰 경로의 이탈을 마주해야 할 것이고 그조차도 실패로 얼룩진 마음 아픈 과거로 기억될 확률이 높겠지만 그럼에도 이를 멈추지 말아야 한다. 네 번의 퇴사로 인해 뒤늦게 얻은 교훈은, 내가 이런 사이클을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정말로 원하는 것이 아닌 상황과의 적절한 타협을 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괜찮다.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니까. 남들보다 시작이 빠른 삶이 아니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다.(대학도 재수를 했고, 덕분에 군대도 늦었고, 졸업 전에 취업도 되지 않아 한 학기를 연장했다. 이십 대 후반에 어렵사리 은행원으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한 것은 천운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래도 내 삶이 손해 본 것은 없었다. 오히려 좀 늦었지만, 실패의 경험이 이리도 많이 쌓여있으니 언젠가는, 무엇을 하든 경험의 덕을 볼 날이 있겠다 생각하고 있다. 실제로 업무를 하며 소통에 있어서, 문제 해결의 과정에 있어서 아픈 과거가 도움이 되기도 했었으니까.



그래서 지금 나는 무엇을 어떻게 해 나가고 있는가. 혹시 어쩌면 있을지도 모르는 유토피아와 같은 직장을 찾기 위해 퇴사와 이직을 반복하는 무한 루프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언젠가는'이라는 막연한 희망을, 그것도 소극적인 생각과 자기 합리화로 수줍게 두드려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퇴사의 주체는 자신인데, 갈구하는 최종 목적지는 나 밖에서 찾고 있는 것은 아닌가. 난무하는 퇴사와 이직 스토리에 나의 마음을 이리저리 휘둘리게 두지 말고, 무엇이 퇴사의 정석이 되어야 하는지 이제는 내 안을 들여다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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