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과정이 목표였다

스스로를 돕는 자

by Davca

본능과 직관에 따르는 삶은 어떤 것일까.


고민에 대한 답을 내지 못한 채, 지난해 12월 나는 스스로를 멈춰 세웠다. 일반적이지 않은 이력 덕분에, 첫 시작이 괜찮았던 탓에, 제도권 교육에서 살아남았던 한 사람으로서, 강남 8 학군이라는 지리적 이점과 부족함 없던 가정환경의 힘으로 지금까지 이뤄낸 모든 것들은 말 그대로 나 혼자만의 성취가 아니었다. 오로지 스스로의 능력으로 만들어낸 값진 결과물이 이제 와서 왜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겠냐마는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들어가며 좀 더 나다운 50, 쉰을 맞이하고 싶다는 바람이 경력이 한창이던 어느 순간 나 자신을 붙잡게 했던 것이다.


후배는 그랬다. 이것도 여유가 있고 능력이 되니 하는 것이라고.

잘못된 말이라 생각지 않았다. 지난 17년간 인과가 무엇이든, 현재 내게 남아있는 모든 것들은 그간 보내온 시간들의 험난함과 충만했던 운과 기회와는 상관없이 내게 숨 쉴 만큼의 공간과 시간을 마련해주고 있었으니까. 이 과정의 삶을 때론 멈추기도, 방향을 바꾸기도, 잠시 주저앉기도 했었으나 어떤 식으로든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걸어왔다. 내가 생각한 포기의 정의는 사전적 정의와는 다소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공백이라고 할만한 지금도 난 무언가를 계속해서 도전하고 있다. 다만 처음 선택한 그 길을 결국 포기한 것이 아니냐 묻는다면 그건 그대로 인정하겠다. 다만 내가 지향한 삶의 모양새를 놓은 적은 없었다. 매일, 쉬지 않고라고 말할 수는 없어도 꾸준히 읽고 쓰고 생각하고 기록하고 경험하고 실패했으며 다시 시작했다. 나에게는 이 과정이 목표이기도 했던 셈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기존의 통념을 깰만한 수정할 만한 경험 또한 적잖이 일어나고 있다.



이를테면 처음부터 명확한 목표가 있어야 한다. 죽도록 열심히 해야 성취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안 쓰고 모아야 부자가 된다. 꾸준히 다닐 수 있는 안정적인 직장이 최고다. 회사 밖은 지옥이다 등... 적고 보니 끝이 없이 떠오른다. 더불어 내가 얼마나 많은 편견과 타인의 프레임에 갇혀 살아왔는지도 깨닫게 된다.



이 모든 말들의 옳고 그름은 받아들이는 이의 몫이기에 표현 자체로의 시비를 가릴 생각은 없다. 이면의 세계, 내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것이 늘 옳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지난 3개월의 작은 수확이었다. 그리고 이런 시간을 갖고 편안한 삶을 누리고 즐기는 것에 대해 죄책감을 느낄 이유가 없다는 것도 말이다. 지난 시간들 속에 나의 휴가는 맘 편한 시간들이 아니었다. 내가 자리를 비운 사이에 생겨날 수 있는 상상 속의 시나리오부터, 남은 이들의 수고스러움, 휴가가 끝난 이후에 산적해 있는 업무들에 대한 걱정으로 오늘의 휴가를 맘 편히 즐겼던 적이 없었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이런 나의 태도로 아내와 번번이 부딪히기도 했었고. 그래도 그런 나라도 존중해 준 아내가 고맙다. 잔소리를 늘어놓아도 늘 내편이 아니었던 적이 없었으니까. 그리고 지금의 이런 시간들도 즐기려 애써주고 있으니 말이다.



커리어적인 고민에 대한 해답을 내리는 것이 이번 휴식의 목표였는데, 그 해답이라 함은 '해답을 내릴 필요가 없다'는 것이 결론이 되었다. 내가 이끌고 누리고 싶은 삶의 모습대로 그저 나아가기만 하면 족하다. 무엇으로 채워질지는 모른다. 예상은 할 수 있으나 그에 대해 집착할 이유가 없다. 될 일은 될 것이고 나는 나대로의 모습을 거짓 없이 드러내면 된다. 그렇게만 된다면 나는 내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있게 될 테니 말이다. 이를 알아차렸다는 것이 내게는 가장 큰 사건이었다.

쉬는 동안 다양한 업계의 CEO 몇몇 분들도 만났다. 불과 2~3년 전만 해도 편안함만으로 대화하기 어려움을 느꼈는데 (이직의 성공 여부가 이들에게 달려있었으니 너무 당연한 것이었다.) '반드시'라는 전제를 걷어내니 동등한 인간으로서의 소통이 가능해졌다. 재밌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이 과정이 목표라면 나는 과정에 진심으로 임해야 한다. 소중히 다뤄야 한다. 깨어있는 오늘 16시간이 그 자체로 내게 전부이고 이 시간을 같은 마음으로 사랑해야 한다. 진인사대천명은 운명론적인 관점이 아닌, 내가 지금 해내야 하는 모든 도리를 충실히 수행하고자 하는 과정의 무게를 중시하는 가르침으로 이해하는 것이 옳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는 말도 마찬가지다. '스스로 돕는다'는 지금 내가 해야 하는, 해내야만 하는 일들을 전심으로 수행하는 자를 뜻하는 것이다.



이런 시각을 견지하는 것이 내게 얼마나 큰 힘을 주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결과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미래의 필연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주어진 오늘을 자신의 의미로 채워감이 '삶의 목표'가 된다면 나는 내가 바라는 많은 것들을 기분 좋게 하나둘 이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주어진 고유의 특별함을 믿고 오늘을 살기 위한 마음을 다하는 것의 중함을 아는 지혜로움을 잃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늘 내일에 대한 기대감이 생기게 되고 그 내일은 오늘이 되어 새로운 의미가 된다. 그 의미의 누적은 내가 걷고자 하는 모든 길에서 나를 돕기도, 살리기도 한다. 단절을 두려워말고 그 또한 오늘이라는 시간 위에 내게 주어진 선물이라 생각한다면 그때부터 시간의 가치는 달라지기 시작한다. 모든 과정을 목표를 대하듯 하는 그렇게 살아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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