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고 끝에 한 퇴사 후에도 나아지지 않는 나의 미래에 대하여
퇴사를 결정하기 전에 물어야 하는 것,
'나는 과연 지금의 나를 믿고 있는가'
장소의 변화가 만병통치약이 될 수는 없다. 쫓기는 도망쳐간 곳에서 유토피아를 기대할 수는 없단 것이다. 퇴사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 매우 다양하기에 당사자의 감정 또한 여러 갈래이다. 서른과 마흔에 이른 경우, 오늘의 괴로움과 내일의 희망 사이에서 스스로를 저울질한다. 늘 다가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선 낙관적일 수밖에 없다. 지금을 벗어나야 할 명분이 있어야 하는데 미래의 기대치가 현실의 고난보다 클 것이라는 근거 없는 합리화는 그 시점에 엄청난 힘을 갖는다. 뭐 없는 나도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솟는다. 그렇게 희망찬 내일에 부푼 기대감을 갖고 나선 뒤, 하루이틀이 지나면서 그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난 나 자신을 믿지 못했다.
나오기 전에 해야 하는 한 가지가 있다면, 내가 나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진심으로 신뢰해야 한다. 막연한 '당연히 나를 믿지'라는 기계적인 말이 아닌, 나의 성실함과 나의 좋은 습관과 나의 이성과 나의 실행력과 나의 판단과 나의 직감을 존중하는 태도를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신뢰의 메커니즘이 자신 안에서 순기능을 하지 못하면 퇴사 후가 가혹하리만큼 힘들 수밖에 없으며 점점 스스로의 멘탈은 무너져 내린다. 잠시 학습의 시간을 위해서든, 재충전을 위해서든 지금의 이 시간이 내게 가장 소중하고 필요한 시간임을 믿어야 한다. 더할 나위 없이 감사한 지금의 여유가 주는 의미를 믿어야 한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내가 있을 수 있는 어려움은 언제든 나를 압도하겠지만, 난 건재할 것임을 믿어야 한다. 그 어떤 '현실적'인 준비보다 보이지 않는 나의 마음과 영혼에 대한 포용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면 우리의 퇴사는, 갭이어든 갭먼스든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어디까지 해낼 수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나에 대한 믿음은 스스로를 작아지게 하던 그 한계를 확장해 줄 첫 단추가 되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