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회사에서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직장에서 시작된 일면식 없던 인연은 늘 적당한 선을 필요로 하지만 많은 경우 그 선을 넘나들기 십상이다. 일터에선 일로서만 얘기하고 인정받으면 그만이라지만, 하나의 작은 사회이자 같은 목표를 갖고 있는 식구로서 그것은 쉽지 않다. 일을 잘하고 일로서 성과를 내기 위해 주변인들과의 관계를 모나지 않게 유지하는 것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이 되어버렸다. 업무 특성상 혼자 일하고 혼자 평가받는 상황이라면 정도의 차이는 있을 수 있겠지만 그 역시도 누군가의 피드백과 협의와 계약관계가 필요할 수 있기에 엄밀히 말하면 완벽히 독립적인 노동자가 되기는 쉽지 않다. 느슨하고 옅은 관계라도 약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는 생활을 한다.
그러나 내가 만나는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직장인이기 이전에 어떤 환경에서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생각하지 않는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다고 여긴다. 내게 부여된 임무를 다하는 데에 그의 개인적, 가정적 배경을 알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물론 맞는 얘기다. 다만, 그 또한 누군가의 아내고 남편이고 아버지이자 어머니고 또한 소중한 자식일 수 있음을 늘 마음에 갖고 있다면 사람으로서의 존중을 갖고 대할 수 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자연인으로서 하나의 개인임만 기억하더라도 존중해야 할 이유는 당연한 것 아닌가 물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생각이 여기에까지 미치는 것은 일반적이지 않다. 이해관계의 반대편에 서있는 상대를 대할 때는 더더욱 마찬가지 일 것이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스스로를 한 발만 떨어져 관찰자 모드로 바꿀 수 있으면 좋겠다.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조급함이 사라진다. 현재 나의 상태를 바라보고 내 앞의 그를 살펴본다. 자녀로서 부모로서의 삶을 사는 이사님도, 대리님도 나와 다르지 않음을 생각하기 시작하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진다. 편한 물러섬도 가능할 수 있다. 꾸준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다면 마음의 여유도 생겨난다. 혹시라도 가정에서 있었을지 모르는 좋지 않은 일들로 마음이 어지러울 수 있으니 시간을 갖고 다음 미팅을 계획하는 선택도 할 수 있다.
만나는 사람마다 네가 모르는 전투를 치르고 있다.
친절하라, 그 어느 때라도
비욘 나티코 린데블라드의 책 <내가 틀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나에게 돌을 던지는 상대가 있을 수 있다. 한없는 이해와 공감으로 끝없이 이해했으나, 그럴수록 날카로운 칼이 되어 내게 돌아오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괜찮다. 그 칼을 받지 않으면 그만이다.
누군가 난폭운전을 하며 고함을 쳐대고 욕을 한다. 그리곤 훅 가버린다.
동승자가 운전자에게 물었다. 어떻게 이런 상황에서도 자넨 그렇게 평화롭게 웃으며 운전할 수 있느냐고. 운전자는 대답한다. 누군가 내게 똥을 던졌는데 내가 피하면 누구의 손이 더러워지겠는가. 내가 그 똥을 받지 않으면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닌데, 내가 거기에 반응하는 순간 내 손을 더럽히는 것과 다름없는 일이다.
되돌려 받을 것을 기대하는 행동과는 엄연히 다르다.
그리고 이런 친절함은 늘 승리한다고 믿는다. 팀을 조직하고 육성, 성장시킬 때도 나 스스로 매일 업무 시작 전 되뇌던 것이 바로 친절함이다. 성과에 집중하고 기술을 익히고 경험을 쌓아가는 것으로 아주 좋은 실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나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독보적임을 원한다면, 기술적인 요소와는 다른 것이 필요하다. 바로 친절함이다. 나 자신에 대한 그리고 타인에 대한 조건 없는 친절이다. 친절함은 존재의 감사함으로 이어지고 이런 마음은 일상을 물들인다. 온통 고마운 사람들, 고마운 일들이 가득하다. 모든 것이 그렇진 않더라도 좋은 의미를 부여하려는 시도를 해보기도 한다. 내가 세상을 보는 프레임으로 해석이 달라지니, 나의 삶이 변한다. 나는 다시 나 자신과 타인에게 친절함을 이어간다.
이사님과 대리님이 아니더라도, 우리 모두는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다.
내 앞에, 옆에, 뒤에 있는 그들도 마찬가지다. 일'만' 잘하는 된다는 식의 사고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새로운 것들을 볼 수 있다. 늘 부족하다고 느끼던 그의 장점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팀에 기여할 수 있는 일들과 매칭해보기도 하며 새로운 판을 기획하기도 한다. 늘 똑같은 것만 보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면, 그가 서있는 지극히 개인적인 위치에 대한 생각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비로소 선순환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