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야 좀 홀가분한 기분을 느낀다. 어느 곳에도 소속되어 있지 않았다는 불안함과 외로움은, 한편으로 자유로움이었다. 어떠한 제한 없이 생각을 이야기해도 눈치 볼 일이 없다는 것이다. 내가 받던 급여에는 품위유지에 대한 책임과 의무에 대한 합리적 기대가 명시되어 있었고 스스로 그것을 주지하지 않는다면, 누군가의 시선에 의해 불편한 상황들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이다. 이제 그런 상황이 생길 일은 없으니 스스로의 생각과 말에 부끄러움이 없다면 언제든, 나는 나의 것을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커리어'라는 프레임 안에서 참 오랜 시간을 떠돌아다닌 먼지 같았던 나는, 이것이 진정 내가 바라던 길이고 삶이었는지 묻지 못했고 지나 온 행적들의 교집합 내에서만 늘 다음 단계를 고민해 왔다. 회계사인 누군가가 목수로서의 삶을 생각지 않는 것과 유사한 이치랄까. 나 또한 다르지 않았고 이미 마흔여섯이었다. 아직까지 나이는 중요치 않다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에 대해 절친과 술자리에서 논해보기도 했다. 우리의 괴로움은 자신에 대한 관대한 해석과 외부의 객관적이고 이성적 평가의 괴리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결론 내리게 되었는데, 그럼에도 나에 대한 관대함을 놓을 수 없었다. 그것이 희망이자 자신에 대한 이상이라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이직 시장에서의 평가도 이미 나의 기대와는 판이하게 다른 상황이 펼쳐지고 있었다. 간간히 면접의 제안이 오던 횟수도 날이 갈수록 줄어들었다. 우리 모두는 언젠가 프리랜서가 되거나 개인사업을 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 생각했던 순간이 빠르게 찾아오는 것 같았다. 예견된 미래였으나 그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준비는 아직 덜 되었다 보니, 마음 한편이 아려온다. 여전히, 나는 아직 건재하다 를 외친다.
이후의 커리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기 이전에, 지금까지 이뤄낸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업무적인 평판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이고 물질적인 결과물 말이다. 우선 나이가 들었다. 꾸준히 새벽 조깅을 하고 있지만 불과 1~2년 전의 체력과는 사뭇 달라진 것만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내년이면 마흔일곱이니 너무나 당연한 자연의 법칙이라고 받아들여야 하는 것일까.
결혼도 했고 두 아이도 이제 내년이면 12살, 10살이다. 일곱 살 어린 아내도 내년이면 마흔이고. 지혜롭고 현명한 아내를 만나 내 명의의 집을 갖게 되었다. 기대감 없이 넣은 생애최초 자격의 청약이 당첨되어 2년 반 전 무렵 입주를 마쳤다. 그 집이 현재 20억 수준의 매매가를 기록하고 있다. 투자목적이 아닌 실거주 목적이었으니 사실 부동산 가격의 등락은 큰 의미는 없으나 가격이 오르는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뚜벅이로 지내다 이제 더는 미룰 수 없을 것 같아 올 8월 첫 차를 구입했다. 아직은 관리에 대한 비용, 이를테면 주기적인 종합검사를 비롯하여 보험료, 주유비 등에 대한 적응 중에 있다. 지출되지 않던 비용이다 보니 특정상황이 오면 아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나 이젠 두 아이의 학원이동 및 가족여행 등을 누군가의 도움 없이 할 수 있다는 기쁨이 더 크다 보니, 시간이 지나며 차츰 익숙해지고 있다. 그래도 여전히 걸어 다니거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횟수가 더 많다. 유용한 도구치곤 높은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것이 자동차란 생각이 들었다. 7년 전, 그렇게 갖고 싶다고 노트에 적었던 바로 그 차를 갖게 되었다는 사실에 놀라움과 감사함이 동시에 찾아오기도 했다. 20년은 탈 수 있겠다 싶다. 월 4백만 원 정도의 생활비(의식주 및 교육비 등 총합)를 감당할 수 있고 미국 ETF에 투자도 하고 있고 정기적금도 할 수 있으니 이 또한 감사한 일이 아니겠는가. 2008년부터 은행원으로 일을 시작해서 지금까지, 쉽지 않은 시간들을 지나왔고 여전히 다이내믹한 삶을 이어가는 중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이룬 것에 대해 감사하고 또 감사하며 계속해서 나아가는 중이다. 아직은 개인적으로 목표하는 수준의 경제적 자유를 이뤄내기 위해선 갈길이 멀지만, 계속해서 돈이 돈을 벌 수 있는 구조들을 만들어가기 위한 소소한 실행과 노력을 하는 것의 행복함을 깨닫는다. 책을 읽고 투자 보고서를 다운로드하여 읽고 공부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오늘이 있음이 즐겁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에 대한 생각이 많아진다.
이제 원치 않는 무언가를 할 이유가 없다는 생각과 내가 해왔던 일들의 프레임 안에서만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선택은 불요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조금 더 일찍 자산의 증식과 투자에 대한 실행을 빠르게 했더라면 조금 더 나은 상황에 있지 않았을까 싶다가도, 이만큼 살 수 있는 것에 감사하는 것이 우선이란 생각에 욕심을 비운다. 그리고 이제는, 나다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다짐한다. 성과를 내고 실적을 맞추고 하는 퍼즐 같은 게임보다 사람을 돕고 누군가의 삶이 보다 '나 다울 수 있도록' 하는 일에 마음이 간다. 지금까지 해온 일보다 이것이 더 돈이 되는가 묻는다면, 잘 모르겠다.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겠다. 미래를 미리 살아볼 수 없는 노릇이니 이 길을 가겠다 마음먹는다면 그저 가보는 수 밖엔 없다. 처음부터, 그러니까 2008년 경으로 돌아가 나의 인생 커리어에 대한 긴 스토리를 보다 진지하게 고민해 봤더라면 내가 겪은 시행착오들은 피해 갈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럼에도 그간의 풍부한 이야기들이 누군가의, 특히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사회 초년생 시절의 이름 모를 누군가의 인생에 아주 약간의 생각할 여지를 줄 수 있다면 그것보다 의미 있는 일이 무엇이 있을까. 며칠 전, 나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는 누군가의 메일을 받았다. 나의 글을 통해 위안과 희망을 얻었다는 이야기가 너무나도 감사했다. 가끔 이런 메일을 받게 될 때 가슴이 뛴다. 의도하거나 겨냥한 글이 아니었음에도 누군가는 힘을 얻는다. 지금의 나 또한 그러하다. 다양한 작가들의 글을 읽고 에너지를 얻고 긍정적인 내일을 꿈꾼다. 끊이지 않는 대화인 독서를 통해 작가와 교감하는 시간은 새로운 명상을 갖게 하고 그 과정에서 좋은 생각과 영감들이 피어난다. 그것은 나의 기록이 되고 글감이 되기도 한다. 이 모든 과정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나이는 들어가겠지만 나의 감각과 판단이 예민해질 수 있는 이유다.
자신이 가진 진실된 마음과 진정한 희망으로 가득한 길을 걸을 수 있다. 남들의 인생 말고 나만의 인생말이다. 더더욱 커리어의 정답을 말하기 어려운 시절을 살아간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빠른 성공을 이룬 이들이 지속적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고 그들의 평범했던 배경, 혹은 험난했던 유년 시절의 이야기들이 보편적인 상황에 놓인 모두의 가슴에 불을 지핀다. 숙고 그리고 선택의 과정을 깊고 빠르게 행했던 이들이 만들어낸 모습에 놀랍고도 부러운 마음이 든다. 저마다의 고유한 능력은 누구에게나 있다. 그것을 끄집어내어 물을 주고 가꿔가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다. 그러니 스무 해 전의 내 모습처럼 '잘 닦여진 것처럼 보이는' 길에만 관심을 두는 우를 범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나의 것을 살아냈으면 좋겠다. 이 또한 정답은 아니겠으나, 나는 천 번 만 번 나로 살 수 있는 길을 택할 것이다. 좀 더 빠르게 가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은 모두 나의 몫이다.
여전히 진행 중인 이 여정을, 비슷한 상황에 놓인 이들과 서로 응원하고 보이지 않는 용기와 찬사를 보내며 각자의 삶에서 가장 값진 것을 성취한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결국 나에게도, 가족에게도, 넓게는 국가 사회적으로 더 바람직한 일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