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가난을 택할 자유, 빈곤한 삶에서의 여유 그리고 부족한 인생으로부터의 낭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다는 의미였다.
걸으며 떠오른 생각들이 글이 될 때 내게 읽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했다. 내게 읽는다는 것은 문자에 시선이 닿는 일차원적 행위가 아닌 문장과 문맥의 흐름 속에 춤추는 자신을 발견하는 것이었다. 소설은 그것이 가능하며 생각만큼 어려운 일이 아님을 알게 해 주었다. 자기 계발서나 사회과학 서적을 주로 탐독하던 어제의 내게 허락되지 않던 일탈을 너그러이 품어주었다. 나의 결핍이 위로받았고 삶의 추악함에서 상대적으로 고결한 자신을 발견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소설을 읽었던 것이 언제였나.
한강 작가의 <채식주의자>,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손원평 작가의 <아몬드> 정도의 기억이 남아있다. 비교적 최근에 대여하여 읽었던 소설도 분명 있었을 것인데 기억에 남아있지 않는 것을 보면 나는 제대로 '읽지' 않았다. 활자만 눈에 담았다고 말하는 것이 솔직하겠다. 그런 내가 다시 소설을 찾아 읽어야겠다는 마음이 든 것은 무엇 때문이었을까. 최근 들어 개인적인 일들로 무거워진 마음과 명상, 산책, 독서, 글쓰기와 달리기로도 다잡을 수 없었던 것들을 어쩌면 소설을 통해 해소할 수 있겠다는 다소 근거 없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두 번의 생이 주어지더라도 내 상상의 범위 안에 들어오지 못할 세계일 테니.
그런 소설을 읽다 보면 나는 결코 이런 글을 쓰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역할을 다하는 독자로 남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것이 바로 소설을 찾게 되는 이유이다. 나는 모르는 내 삶의 해법이 이곳 어딘가엔 있을지 모르는 일이 아닌가. 그렇게 한발 두발 조심스럽게 아껴가며 넘어가는 페이지와 더불어 머릿속에선 제대로 읽어 내려가는 상황들이 끝없이 이어지는 슬라이드 이미지로 재현해 낸다. 어떤 때는 너무나도 잔인하여 그대로 책을 덮어버리기도 했고(그렇다! 정유정 작가의 <완전한 행복>이 그러했다.) 어떤 순간엔 방금 지나온 그 장면이 순식간에 사라져 다시 떠올리려 앞으로 돌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읽기도 했다.(매트헤이그의 <미드나잇 라이브러리>가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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