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까지만 해도 20km 정도를 걷고 돌아오는 것쯤은 언제든 가볍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강도를 높이지 않고 천천히 걸음에도 체력의 소모는 급격히 빠른 속도로 이루어지고, 회복은 더디다. 에너지음료를 챙겨 먹고 홍삼진액을 한 스푼 퍼먹어도 쉽게 달라지지 않는다. 마음으로 위안을 받는다고 해도 실제 몸 상태가 그러하지 못하니 괜찮다, 괜찮다 하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에 불과하다. 그러면서 생각하게 된다. 나는 왜 굳이 4시간여를 걷고 20km를 채우려 한 것인가.
이것은 개인의 성향 탓이다.
어떤 것이든 목표가 설정되면 어떻게든 그것을 달성하고야 말겠다는. 목표가 대단하고 거창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건강을 회복하고 이전의 가벼운 몸으로 돌아가는 것 정도이다. 그런데 그것은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매일 특정 수준 이상의 강도로 쉬지 않고 지속해야만 했다. 양재천을 걸으며 그런 생각도 했다. 내 목표를 빠르게 이루고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내가 주로 사용하던 방법은 늘 동일했다. 단기간에 할 수 있는 압도적인 수준으로의 인풋을 쏟아 넣고 누구보다 빠르게 목표지점에 도달하는 것이었다. 압도적인 수준이라 함은 누구든 따라 하거나 흉내 낼 수 없을 정도의 인풋이다. 가령 걸음수의 적립으로 순위를 나열하는 그룹이 있다고 한다면 대게 하루에 2만 보 이상이면 괜찮겠지,라고 여기고 그 지점을 목표로 잡게 된다. 그러나 내가 이 그룹에서 1위에 오르고 싶다면, 2~3만 보 정도의 적립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실제로 걸음수로 기부를 하는 어플을 꽤 오랜 시간 사용하고 있는데, 가끔 오늘의 랭킹을 확인한다. 10만 보 넘게 걷고 있는 분도 계시다. 이게 진짜 가능한 일인가 싶으면서도 그렇다고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생각하게 된다. 이런 압도적인 수준의 인풋이 가지는 효과는 대단하다.
우선 추종자들을 쉽게 포기하게 만든다.
아주 약간의 차이는 불붙는 경쟁을 만들 수 있지만 도무지 따라갈 수 있는 물리적 방법이 계산되거나 찾을 수 없다면 상대는 이내 마음을 접게 된다. 그리고 스스로 가능한 수준의 랭킹을 예상하고 그 정도에 이르는 방법을 찾게 된다. 누구든 따라 할 수 없는 1등을 하기 위해선 압도적인 수준의 '실질적인 노력(행동)'이 필수다. 간혹 굳이 그럴 필요 없다는 두뇌를 가진 누군가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압도적인 수준의 인풋을 쉬지 않고 해 나가는 이를 끝내 이길 수는 없을 것이다. 지속성이 가진 힘이다. 더 무서운 경우가, 이런 두뇌를 가진 이가 압도적인 수준의 인풋을 하는 경우의 수이다. 30여 년간 그런 이를 봐왔다. 애초에 따라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어떤 경쟁이든 그는 조용히, 그러나 상상할 수 있는 수준을 초월한 인풋을 수행할 뿐이다. 결과는 그저 인풋 뒤에 따라오는 당연한 것일 뿐이라는 생각을 이 친구를 보면서 하게 되었던 순간이 많았다.
또한 이런 수준의 인풋은 내가 할 수 있는 실수 혹은 실패를 빠르게 경험토록 한다.
남들은 한창 무언가를 쌓아가고 있을 때, 이미 가능한 시나리오에 대한 학습을 마치고 스스로에게 가장 적합한 방법으로 쉬지 않고 내달릴 수 있다. 인풋을 다량 쏟아붓게 되면 상대적으로 이른 시기에 학습비용을 지불하고 그때의 배움으로 매일 성과를 도출해가기만 하면 된다. 인풋이 많다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시나리오 타입이 다양하다는 것이고 예상치 못한 순간 마주하는 위험에도 유연하게 적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갖고 있는 셈이다. 물론 이것이 절대적으로 옳은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스스로 원하는 전제가 '남들보다 빠른 속도로 목표를 달성한다'는 것일 때 큰 도움을 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매일의 성과가 중요한 조직을 설계할 때 나는 이 기준을 조건값으로 하여 팀을 꾸리고 운용했다. 그러나 조직과 개인의 생리는 엄연히 다르다. 개인이 성공했던 방식을 조직에 그대로 이식한다고 매번 성공의 길을 걸을 수는 없다. 개인의 변수와 조직의 변수 또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충분히 알고 있다.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어떠한 상태에 있는가.
여전히 목표달성에 대한 욕심은 크다. 동시에 이전과 동일하지 않은 나의 에너지 레벨 또한 인정해야 한다. 압도적인 수준의 인풋을 쏟아붓고 그것을 지속할만한 체력이 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것을 인정하기가 어려웠다. 어제는 그런 서러운 마음에 쉬지 않고 20km를 걸었다. 그러면서도 더 걸을 수 있겠는데, 하는 생각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어쩌면 오늘은 30km에 도전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 정도면 적당해,라는 타협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은 딱 그 정도의 결과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스스로 그 수준의 결괏값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면, 남들과 유사한 수준의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최소한 그들이 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해야 할 것이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조건을 너무나도 다르기 때문이다. 평균이 아닌 내가 가진 조건을 잘 이해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리고 그것을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적절히 활용할 필요가 있다. 각자만의 달란트가 있음을 잊지 않는다면 여러모로 유용한 상황들이 생긴다. 내가 잘할 수 있는 무언가는 반드시 있다.
그래서 이제는 조금 다른 각도로 생각하게 된다.
목표는 움직이지 않되, 나에게 그보다는 약간의 시간과 여유를 주는 것이다. 내가 매일을 쉬지 않고 할 수 있는 정도(근육이 땅기는 정도의 버거움을 느끼는 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겠다)로 꾸준히 해나가는 것이 지금의 나에겐 더 적합한 것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가혹한 경쟁의 범주에 있는 것이 아닌 이상, 나는 나의 속도로 내가 할 수 있는 꾸준함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그것이 나의 인생에 큰 영향을 줄 수 있고 파급이 오랜 시간 지속될만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럴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인생은 단기간에 마무리할 수 있는 자격증 시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의 방식대로, 나의 시간을 그리고 나의 목표를 설계해야 할 때이다. 보이는 것 말고 '진짜 나의 것'으로 오래 남을 수 있는 가치에 더 많은 비중을 둬야 할 때이다. 무리할 수 없는, 결코 무리해서 안 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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