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부인의 화분, 만둣국 그리고 엄마
애들 두고 놀러 나가는 게 자유부인 이라며 비 오는 삼일절 아침 들떠있는 아내.
기껏해야 휴일에 장모님, 처제와 함께 하는 시간이 저렇게 행복할까 싶고 그 생각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화분을 살 거라며 설레어하는 아내의 기분에 흥을 돋우는 몇 가지 일들 중 하나가, 어젯밤 못다 한 설거지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에 아침 일찍 무거워진 양 소매를 걷어 올린다. 휴직하고 나름 잘 지켜오던 루틴이자 집안일 가운데, 이거 하나쯤은 내가 잘해보자 다짐했던 건데, 1월 말 생각지도 못했던 수술로 인해 유야무야 된지도 한 달이 지났다. 이는 내 육아휴직 6개월 가운데 한 달이 병치레로 지나가버렸다는 뜻이기도 했다.
저 버스를 타야 약속시간에 늦지 않겠네 하며 일찍 집을 나서고 걸어오다 횡단보다 건너편에서 비웃듯 지나가는 바로 그 버스를 허무하게 바라보는 심정과 같았을까. 뭐 하나 제대로 해본 것 없이 30일이라는 시간이 지나갔다. 오늘 나에게 설거지는 그런 시간을 정리하는 의미이기도 했다.
아내는 쌓여있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성격이다. 눈에 보이는 무언가가 산적해 있다는 느낌이 들면 치우는 데에 익숙한 사람과 한 이불을 덮고 있기에 휴직 초기 일종의 합의가 필요했다. 하루의 마무리가 되는 설거지 보다,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설거지가 갖는 의미에 대해 아내는 분명 궤변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못 이기는 척 의도적 패배가 아닌 전술적 후퇴를 선택한 아내는 그저 관망할 뿐이었다. 그리고 입원, 수술, 퇴원.
아내의 루틴을 깨버리고 난 셈에 없던 육체적 휴식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시간이 한 달이었으니, 나도 나지만 아내의 답답함과 피곤함이 오죽했을까.
정신을 차려보니 삼월. 때맞게 새벽부터 비도 내린다. 봄의 흙냄새를 알아차리기엔 아직 겨울의 공기가 차갑고 무겁다. 곧 걷히고 올라올 시간의 흐름을 기다리며 심호흡 한번 하고 부엌으로 향했다. 그렇다. 이것도 익숙지 않은 나에게는 다짐과 결의가 필요한 일이었다. 부끄러움은 뒤로 하고, 일단 현실을 바라봐야 한다. 이 당연한 작업에 나름의 목적이 있지 않았던가.
자유부인이 들고 올봄의 소식, 화분. 기왕이면 짧은 시간 동안 분주하게 움직일 그 발걸음들이 가벼웠으면 싶은 나의 바람을 생각하며 요란한 설거지를 시작한다. 티를 내도 너무 낸다. 사운드며 흔적까지. 따라갈 수가 없다 아내의 내공은. 그럼에도 꿋꿋하게. 그러고 보니 오늘은 공휴일이네.
결혼 전 네 식구의 주말 늦은 아침은 엄마의 사골 떡만둣국이었다. 오랜 기간 할아버지를 모시고 살며 가족의 음식은 늘 간이 덜 되어 있는 심심함 그 자체였고, 이를 주기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공식적인 시간이 만둣국과 조우하는 휴일, 그리고 주말 늦은 아침이었다. 식후에 곧장 설거지를 하시던 엄마.
그때 엄마의 설거지는 어땠을까? 무슨 의미였을까? 판에 박힌 지루한 일상을 덜어내는 리츄얼이었던 적은 없었을까? 축 늘어진 젖은 행주를 힘껏 돌려 짜고 정리하면서 하루 동안 가족에게 좋은 것을 먹이기 위한 당신의 수고를 스스로 칭찬해주지는 않았을까? 가끔 치고 들어오는 아버지의 설거지에 한 번쯤 크게 웃어주셨을까? 그리고... 지금의 나처럼, 혹시. 엄마의 엄마를 생각했을까?
그 만둣국이 그립다. 만둣국 뒤에 설거지는 늘 엄마의 몫이었다. '잘 먹었습니다'의 인사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그리고 건방진 아들의 소심한 인사였다. 내가 하겠습니다 버전은 결코 출시될 수 없었던 것일까. 후회스럽다. 두고두고 후회스럽겠지. 엄마니까 그래야 한다고 생각하며 산 세월이 삼십오 년.
그리고 장가를 갔고 이제야 바라보기 어려워지는 엄마가 아닌 할머니의 모습. 한 번쯤 내가 엄마의 버거웠던 시간에 설거지 같은 존재였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봤다면. 완벽하게 채워질 수 없는 보답이, 효라고 하는 것이라며 내 생각의 우주에서 미뤄두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좀 더 큰 어른이 되어있었을까.
울컥하다 정신을 차린다. 방 안에서 달그락 소리에 스멀스멀 이불을 걷어내는 두 아이의 느릿한 움직임이 들려왔다. 아내는 화장을 한다. 궁금한 것이, 비 오는 날 화장은 잘 먹을까 바보 같은 생각도 하며 간만의 설거지에 의미를 부여하며 마무리해본다.
깨끗하게 닦아보자 신경 써도 아내의 눈에는 나의 부족함이 보일 것이다. 그리고 좀체 난 나아지기 어렵겠지. 하지만 지금 있는 그대로 행복하다 느껴지는 것은, 이곳이 내가 있는 자리이고 언제나 생각나는 부모가 있고 가족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어설프더라도, 두 번 손가는 일이라 해도, 그렇게라도 내가 있음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방과 후 떡볶이에 순대를 기다리는 여고생 마냥 아내는 들떠있다. 알아주길 바라는 나의 과업은 어묵 국물 1cc 정도의 비중이겠지만 괜찮다. 나는 내가 해야 할 일을 했으니. 저녁 6시의 무거운 구름이 떠 있는 이른 아침이라도 아내는 즐거울 것이다. 그리고 그게 내가 바라는 것이다. 나의 설거지가 아내에겐 오늘의 시작이 된 셈이다.
어떤 화분을 들고 올지 모르겠지만, 새로운 한 달의 시작을 그리고 봄을 기다리는 의미로 무엇이든 괜찮고 충분하다. 아무튼, 설거지로 시작된 3월의 시작. 그리고 오늘의 아침은, 만둣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