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트로피
- 엔트로피를 통해서 본 생명과 우주 -
엔트로피
내 인생에서 가장 강하게 각인되었던 지식을 꼽으라면 아마도 양자역학과 엔트로피일 것 같다.
이 지식들은 뇌 속에 기생충처럼 터를 잡고 그동안 알게 모르게 내 사고방식을 지배하는 알고리듬으로 작용해 왔을 것이다. 공학도 출신이라 이들 지식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양자역학이 신비의 여신 메로우와 닮았다면, 엔트로피는 진리의 여신 아테나를 닮았다.
감각 친밀도로 본다면 양자역학은 멀리 떨어져 있는 별처럼 보인다. 인간의 감각이 도저히 닿을 수 없는 그런 곳에 있다. 반면에 엔트로피는 너무도 가까이에 있다. 우리의 감각이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우리의 운명이 비껴갈 수 없는 곳에 같이 뒤섞여 있다.
엔트로피는 에너지 질서를 규율하는 물리법칙이다.
이것은 물리계뿐만 아니라 생체나 심리계 심지어 문명시스템을 설명하는 도구로도 이용된다. 에너지가 관여되는 곳에는 그것이 무엇이든 엔트로피법칙이 적용된다. 엔트로피 하나의 개념만 가지고 우주의 탄생에서 종말까지 설명한 책(엔드오브타임)이 있을 정도다.
오늘날의 의학은 스트레스를 엔트로피 관점에서 접근하고 분석한다. 정보이론에서는 정보통신 네트워크 설계나 운용에 관한 논리 도구로 엔트로피를 이용한다.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를 이용하여 사회나 경제학에서 나타나는 많은 현상을 설명하기도 한다, 생명의 진화나 인간의 의식도 엔트로피를 통해 분석하는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다.
엔트로피에 매력을 느꼈던 이유는 시간에 대한 담론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물리법칙 중에서 시간의 의미를 설명할 수 있는 것은 엔트로피가 유일하다. 어떻게 보면 엔트로피는 철학보다도 더 철학적이다. 우리의 인생과 우주의 운명도 엔트로피를 통해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르트르는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서 벽돌만큼이나 두꺼운 “존재와 무”라는 책을 썼지만, 그러나 “존재”가 무엇인지 엔트로피로 설명한다면 한 페이지면 충분할 것이다. 그것도 오만가지 난해한 용어가 아니라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수학적인 방법으로.
시간은 “변화”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시간은 변화의 전후를 비교해서 얻어지는 정보값이다. 변화되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면 시간이 흐른다는 것을 알 방법이 없다. 예를 들면, 전신마취된 환자는 시간을 느끼지 못한다. 변화를 알아챌 수 있는 감각기관이 모두 마비되어 시간 정보를 얻을 수 있는 통로가 막혀 있기 때문이다. 즉 전신마취된 환자에게 시간은 소멸되어 있는 것이다.
만일, 물질을 이루는 모든 원자들이 요동을 멈추고 움직이지 않을 때 우주는 전신마취되는 상태와 같아진다. 이때의 상태를 물리학에서는 “열적평형상태”라고 부른다. 우주의 온도가 0도 K(-273℃)가 되면 이 상태에 도달하게 된다. 이 온도에서는 모든 원자들이 얼어붙어 요동을 멈추고 더는 움직이지 않게 된다. “열적평형상태”는 더 이상 변화가 일어날 수 없는 상태를 말한다. 시간이 사망 선고를 받는 시점이다.
존재(질량)에 대해서도 같은 해석이 적용된다.
모든 원자들이 얼어붙어 요동을 멈추고 움직이지 않을 때, “존재”한다고 인식할 수 있는 존재는 우주에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된다. 우주 전체가 전신마취된 환자와 같은 상황이 된다. 우리가 인식하고 있는 존재는 모두 소멸하고 대신 그 자리에 無가 들어선다.
결국 시간이나 존재는 엔트로피가 작동하는 범위 내에서만 정의될 수 있는 물리적 상태인 것이다. 이것은 곧 엔트로피가 시간과 질량(존재)의 목줄을 쥐고 있는 운명의 여신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많은 철학 책들이 존재와 시간을 이야기하지만. 그러나 그 내용들은 지루하고 모호한 추상화만 그릴뿐이다. 그에 반해 엔트로피는 그것이 무엇인지 사실화로 보여준다. 이것이 매력이 아니면 무엇이 매력일까?
생명은 엔트로피 알에서 태어났다.
태양 에너지가 지구에 공급되면서 어느 화합물에 확률밀도 “특정값”이 집중되었다. 특정값의 교란으로 화합물이 발작을 일으켰고, 발작의 몸부림으로 분자들의 배열이 소용돌이치면서 수억 년 동안 반죽되었다. 그 반죽 과정에서 고분자 칩이 생성되어 나오기 시작했다. 고분자 칩이 생명의 씨앗이 된 것이다.
확률밀도가 일반적이지 않은 특정한 값에 집중된 것을 “특정값”이라고 한다. 정규분포에서 코털처럼 삐죽삐죽 튀어나온 곳이 있다면, 그것이 특정값이라고 볼 수 있다.
가령 번개는 아주 짧은 시간에 고밀도 에너지가 집중되어 나타난 현상이다. 깨끗한 피부에 두드러기가 생겼다면, 두드러기도 확률밀도 “특정값”으로 인해 발생한 것이다. 카지노에서 잭팟이 터지거나, 로또 1등이 당첨되는 이유도 확률밀도가 “특정값”에 몰려서 발생하는 현상이다.
말하자면 생명은 지구의 두드러기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이 오랜 시간 곪고 곪아서 종기가 터져 마침내 생명체가 탄생한 것이다. 엔트로피 자체가 확률(통계)개념이기 때문에 두드러기 같은 비정상적인 상태나 우연은 우주 어디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이것은 일종의 물리적인 버그 현상이다.
이 버그로 인해 지구에는 “인류탄생”이라는 작은 이벤트가 열린 셈이다. 그러나 이벤트는 이벤트일 뿐, 45억 년의 지구역사에서 인간은 폭죽 하나가 하늘에서 터지는 순간만큼이나 짧은 시간을 살다 간다.
엔트로피가 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아마도 비가역성일 것이다. 엔트로피는 타임머신을 허용하지 않는다.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운명이 엔트로피에 세팅되어 있다. 때문에 엔트로피에는 “시간의 화살”이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엔트로피의 비가역성은 시간뿐 아니라 존재(질량)도 예외 없이 적용된다. 시간과 질량은 서로가 묶여 있기에 개인플레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시간이 비가역성이면 존재도 비가역성인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다시 돌아올 수 없듯이 존재(생명)도 같은 운명을 걷는다. 여기서 종교에서 말하는 윤회나 영생이 하나의 환상이라는 단서를 인지할 수 있다. “시간의 화살”이 뒤돌아 보는 경우는 없기 때문이다.
엔트로피의 또 다른 정보는 생명에 대한 모습이다.
생명은 확률밀도 특정값에 의해 발생된 현상이다. “특정값”은 평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것은 지구만 봐도 알 수 있다. 지구 질량을 100으로 봤을 때, 지구에 있는 생명체 전체의 질량은 지구의 0.0000001%도 안된다. 비율만 놓고 봐도 지구에서 가장 자연스러운 상태는 무생물이다. 생명체는 극히 예외적인 비정상적인 상태다.
따라서 자연에서 무생물(죽음)이 가장 정상적이고 안정적인 상태다. 이것은 곧 “죽음”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가장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것뿐이다.
아직 인간은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많다.
인간의 지식이 비약적으로 도약하기는 했지만, 개구리가 이제 막 우물을 벗어났다고 해서 세상일을 다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엔트로피는 우주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지 단서를 제공한다. 마치 운명을 예측할 수 있는 수정구슬과도 같다. 물론 운명을 시간마다 맞출 수는 없다. 현대 물리학으로는 수십억 년 단위로 우주의 운명을 예측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모든 원자들이 소멸하는 절대적 열적평형상태 이후에는 무엇이 있는지 우리는 아직 알지 못한다. 아직 은 지식으로 알 수 있는 영역이 아니기에 어쩌면 비밀번호로 잠겨있는 우주의 폴더처럼 보인다.
가끔은 그 폴더를 생각하고 상상하곤 한다. 쓸데없는 생각이지만, 쓰잘데 없는 잡념으로 하루를 도둑맞는 날도 있다. 잡념에 빠지는 날은 정말로 하루의 시간이 사망 선고를 받는 날이다.
“영원”이란 단어의 뜻풀이가 사전에도 있지만 나는 물리학적인 뜻풀이를 더 신뢰한다. 그것의 의미는 아마도 “열적평형상태”일 것이다. 시간과 질량 모든 것이 존재하지 않는, 영원이라는 용어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는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영원”이라는 느낌을 준다.
천체물리학자 닐 디그래스 타이슨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과학의 좋은 점은 믿든 말든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이다.” 엔트로피의 매력이 여기에 있다.
추운 겨울밤, 끄적끄적 글을 쓰다 보니 어느새 새벽이다. 잠시 키보드를 멈추고 고요함과 마주한다, 인기척 없는 방안은 마치 열평형상태에 이른 듯하다. 창밖에 잠들어 있는 세상을 바라본다.
소음과 먼지가 깨끗이 제거되어 있는 세상, 엔트로피도 이런 세상을 원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엔트로피에게 소음과 먼지는 다름 아닌 시간과 존재다. 시간으로 인해 역사는 소란스러워지고, 존재로 인해 세상은 부딪치는 것들이 많다. “열적평형상태”는 이런 소음과 먼지들을 서서히 제거해 나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시간과 존재가 존재하지 않는 “영원”의 상태에서 엔트로피는 안식을 취하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창밖에 깨어 있는 것은 차가운 바람뿐이다.
나는 창문을 두드리는 그들을 초대한다. 따듯한 것을 그리워하기라도 한 듯, 추위에 냉동된 공기들이 방 안으로 밀려들어 온다. 나는 그들의 방문을 환영하고, 바람은 포옹하듯 내 몸을 감싸 안는다.
바람 속에서 콤팩트 입자의 향기롭고 포근한 냄새가 난다. 그것은 아마도 수학적 모습의 엔트로피가 아닌, 진리의 여신과도 같은 엔트로피의 따듯한 품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