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의 출발점
철학을 한다는 것, 그것은 무엇에 대해 질문을 던지거나 답하는 철학적인 작업, 곧 정신적인 노동이라고 볼 수 있다. 질문을 한다는 것! 철학의 대상이 무엇이든지 간에 일단 질문이 철학 작업의 선행조건이 된다.
만일 질문이 없다면 의구심이 없다는 것이고, 의구심이 없다면 사고할 대상이 없다는 것이므로 이는 철학의 작업 대상이 소멸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작업 대상의 소멸은 곧 철학 행위의 실효성을 부정하게 된다.
따라서 학문으로서의 철학, 그 존재성은 "질문"이라는 작업 대상을 필요로 한다. 때문에 "질문"은 철학의 출발점이다.
그렇다면, 철학의 질문으로서의 질문은 무엇인가? 질문하기 위해 어떤 질문이 필요한가? 어떻게 질문을 질문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의 방법과 질문의 형식을 질문하는 부수적인 질문들이 뒤따른다.
또한, 질문이 질문이 되기 위한 성립조건이 있는가? 질문이 질문으로 되기 위한 충분조건들, 그것에 대해 질문할 수 있는 질문은 있는가? 질문 자체에 내재하는 질문의 성질을 질문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의 속성이나 질문의 타당성에 대해 질문할 수도 있다.
질문의 대상은 무제한적이고 무한하다. 질문 그 자체가 또 다른 질문의 대상이 되기 때문에 질문의 한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질문의 특성은 "질문한다."는 데에 있다. 질문에 대해 질문되어지는 모든 질문은, 질문 그 자체에 모두 존재한다. 왜냐하면 바로 그것이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출발점은 더 이상 질문될 수 없는 질문이다. 물론 출발점에 대해 또다시 질문되어서 질 수가 있다. 그러나 출발점에 대해 질문한다 해도 그 역시 질문이다. 질문, 그 자체 스스로가 모든 질문을 수렴하는 것! 그것이 바로 질문에 내재하는 질문의 성질이다.
또한 질문 자체가 무한하기 때문에 그 어떤 질문도 제한을 받지 않으며, 이는 곧 질문이 질문으로서의 타당성을 갖는다. 따라서 질문은, 철학의 출발점으로써 필요한 모든 조건을 만족한다.
당신은 질문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철학에 입문한 것이다.
당신은 질문을 이해할 수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철학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당신은 질문에 대해 아는 것이 있는가? 있다면 당신은 철학에 대해 식견이 많은 편이다.
그러나 질문에 대해 아는 것이 쥐뿔도 없다면, 그렇다면 당신은 비로소 진정한 철학자가 되었다.
철학자! 그의 머리는 언제나 백지로 남아있다. 항상 질문에서 시작해서 질문으로 끝나기에.
철학은 완벽한 것, 그 꼴을 보지 못한다. 때문에 철학은 질서를 세우기보다 파괴하는 작업에 더 가깝다. 파괴하지 않으면 관념의 진화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관념의 진화가 진전할 수 없을 때, 더 이상의 질문이 존재하지 않을 때 철학은 종말을 맞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