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광
나는 걸레, 반은 미친 듯 반은 성한 듯 사는 게다
三千大千世界는 산산이 부서지고
나는 참으로 고독해서 넘실넘실 춤을 추는 거야
나는 걸레
南漢江에 잉어가 싱싱하니
濁酒 한통 싣고 배를 띄워라
별이랑, 달이랑, 고기랑 떼들이 모여들어
별들은 노래를 부르오
달들은 장구를 치오 고기들은 칼을 들어
고기회를 만드오.
나는 탁주 한잔 꺾고서
덩실 더덩실 신나게 춤을 추는 게다.
나는 걸레
작년에 중광스님이 작고한 지 20년이 되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았다. 예술의 전당에서 중광스님 작고 20주기 특별전이 개최된다는 타이틀 기사가 눈에 띈 것이다.
요즘의 BTS처럼 젊었을 때 난 중광의 열렬한 팬이었다. 서울서 직장 생활할 때 그가 나타나는 행사장에는 꼭 가보곤 했다.
걸레 같은 사람에게 내가 왜 빠져들었는지 지금 생각해 봐도 불가사의한 일이다. 옛 기억도 되살릴 겸 전시회에 가보고 싶었지만, 거주지가 장승포라 서울까지는 너무도 거리가 멀었다.
중광은 자유롭고 거침없는 행동파 인물이다. 그를 본 사람의 인상은 이랬다. 목욕은 언제 했는지 모를 지저분한 행색, 누더기 조끼와 낡아빠진 군복 바지, 중공 시절의 당 간부나 썼을 법한 빵모자, 땟국 흐르는 가방을 메고 휘적휘적 거리를 쏘다닌다.
불교 종단에서 쫓겨나 파계승 신세가 됐지만, 그러나 반대로 중광이 조계종을 내친 것이다. 획일적이고 규율적인 조직에서 무슨 道를 깨닫겠는가?
道는 세상만물과 어울리면서도 자신의 주체성을 잃지 않는 자유정신이다. 고기 잡는 배가 산에 있으면 고기를 잡지 못하고, 심마니가 바다에 있으면 약초를 구할 수 없다.
중생을 구하고자 하는 道는 중생과 떨어져서는 얻을 수 없다. 중광이 세상 속에서 자유 분망하게 살았던 이유는 아마도 그러한 道를 깨달았기 때문이 아닐까? 그러나 중광이 중생을 구제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자신이 먼저 구제받아야 할 처지처럼 보였기에.
사실 그가 절에서만 쫓겨난 것이 아니다. 학교에서 쫓겨나고 사회에서 쫓겨나고 세상 사람들에게서도 쫓겨났다. 심지어 자신에게서조차 쫓겨났다. 본래 중광은 조계종 중앙 종단회의 의원까지 지냈던 점잖은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갑자기 걸레로 탈바꿈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그는 3년간의 토굴 생활을 하면서 철저하게 자기 자신을 버리기로 마음을 굳힌다. 모든 것이 집착과 욕심, 그 허울 껍데기를 뒤집어쓴 부조리한 것으로 여겨졌다.
말과 행동이 다른 위선적인 정치인들은 둘째치고 자신이 몸담았던 불교조직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이 출가한 것도 따지고 보면 무엇을 얻기 위한 집착과 욕심 때문이 아닌가? 이 또한 세상의 욕심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그리하여 중광은 출가의 출가를 결심한다. 세상의 어떠한 것에도 구속되지 않는, 진정한 자유를 위한 재 출가의 길을 나선다.
어떤 것에도 구속되지 않겠다는 그의 의지는 기행으로 나타났고 세상 사람들은 그를 미친 중으로 인식했다. 그는 위선을 걷어 낸 마음으로 골짜기에 흐르는 물처럼 세상 속에 뒤섞이기 시작했다.
중광은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도자기를 굽기도 했다. 그가 만든 작품은 하나같이 기존 예술의 틀에서 벗어난, 장난인지 작품인지 모를 헷갈리는 모습으로 일반에게 비쳤다. 제멋대로이지만 그러나 생명력이 넘치는 예술, 중광은 땡중인가? 선지식인가?
도(道)의 경지에 들어선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선화도라는 것이 있다. 그 경지에 들면 붓을 그냥 던져도 그림이 된다고 한다. 그 수준에서 기교나 기술은 오히려 창작에 장애가 된다고.
이것은 소 잡는 일에도 도(道)가 있다는 전국시대 양나라 때 이야기(庖丁解牛)와 비슷하게 느껴진다. 백정 포정이 소 잡는 모습을 보고 문혜군이 도(道)가 무엇인지 깨달았다는 장자에 나오는 이야기다.
소 잡는 모습은 피가 튀기는 잔인한 장면이다. 그러나 문혜군은 포정의 작업에서 잔인함을 느끼지 못하고 오히려 귀신에 홀린 듯한 아름다움을 느꼈다고 한다. 중광도 그러한 부류일까?
중광은 술과 담배를 즐기고, 여자를 탐하기도 했다. 벽지와 문짝에는 “좆”이라고 써 갈긴 욕과 음담패설이 가득하다. 공초 오상순에 드리는 시에는 “좇도 싱싱 씹도 싱싱 하늘도 싱싱”이라고 썼다.
작품에 성기가 노출된 그림을 자주 그렸고, 실제로 자신의 성기에 붓을 매달고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타락인지 해탈인지 반은 미친 듯 반은 성한 듯 그의 삶은 그랬다.
성(性)에 대한 해석도 독특하다. 그는 성교(性交)를 성교(聖交)로 봤고 애욕을 모든 걸 원활하게 돌아가게 하는 인간 에너지의 원천으로 봤다. 여성을 최고의 스승으로 모시는 페미니스트이기도 했다.
『섹스는 자연스럽게, 남이 알건 말건, 보건 말건, 개처럼 닭처럼 돼지처럼 장소 가릴 것 없이 정직하게 하면 죄가 되지 않는다. 개나 돼지들은 우리보다 나은 선지식(善知識)들이다. 섹스와 명예에서 해방되지 않고는 절대 자유인이 될 수 없다. 다만 마지막으로 지킬 것은 양심의 혼뿐이다. 그다음이 무아(無我)이다. 무아만이 율사(律師)가 된다.』
무아(無我), 자기의 존재를 망각하는 것, 무언가에 몰입하며 멍 때리는 상태를 말하기도 하지만, 무엇이 멍 때리는 가에 따라 해석이 달라질 수 있다. 그것이 “생각”이라면 치매일 수도 있고, “정신”이라면 정신 나간 상태일 수도 있다.
그러나 불교에서의 무아(無我)는 마음이 디폴트 된 상태를 말한다. 마음속에 쌓여있는 분별심을 포맷시켜 버린 상태. 꾸미거나 치장하지 않은, 선악을 구분할 수 없었던 어머니 뱃속에 있었을 때처럼 처음의 순수한 상태가 무아(無我)다. 중광의 작품에서 “천진무구”함이 느껴지는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천상병이 귀천하고 중광마저 소풍을 끝냈고 최근에 이외수도 세상을 떠났다. 기인 3인방으로 불렸던 도적놈 셋이 이제는 세상에 남아있지 않다.
그들이 떠나버린 지금, 그러지 않아도 삭막한 우리의 세상은 더더욱 우울한 유원지 같다.
두통스런 지식의 오염과 먼지의 소음으로 피곤해진 우리의 심성! 그 더러움을 닦아주던 걸레... 우리는 더 이상 깨끗해질 수 없을 것 같다. 걸레가 가버리고 없으니.
언젠가 자신을 찾아온 수녀보고 중광은 “멋있게”가 아니라 "맛있게 생겼다"며 태연하게 인사를 건넸다나? 참으로 배울 점이 많은 푼수였다.
우리네 인생, 30을 지나 40, 50, 60이 되고.... 그리고 그 뒤에 남는 것은 무엇일까? 삶에 있어서 마지막으로 남게 되는 명제! 그것이 던져주는 의미는 무엇일까?
그의 말대로 세상이란, 괜히 왔다 가는 것일까? 푼수 같은 이 한마디가 삶의 정곡을 찌른다. 삶에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그는 진작 깨달았는지도 모른다. 그가 코를 후비며 무심코 내뱉은 허튼소리가 정작 모든 이의 말문을 막아 버린다. 허튼소리가 허튼소리처럼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지금이라도 명복을 빈다면, 그는 분명 허튼 지랄 말라고 책망할 것 같다. 그러나 그가 타계하고 없는 지금의 세상이 지랄 맞도록 심심하기도 하다. 세상의 재미를 그가 전부 가져가 버렸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