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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 휴머니즘

by 그냥잡담

브런치 휴머니즘


요즘 휴머니즘에 푹 빠졌다.

유튜브에 “은둔”이라는 키워드로 검색되는 동영상을 자주 본다. 최근에 77세 노인이 산에서 비닐 천막치고 산다는 내용을 봤다. 수도도, 전기도 없는 깊은 산속. 그는 끼니도 컵라면에 찬물을 부어서 먹는다.

3년 동안 산에서 살면서 불을 피운 적이 없다고 한다. 컵라면을 익히는 게 아니라 불려서 먹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번.

길 위에서 사는 사람 사연도 있다. 27살부터 떠돌기 시작해 34년 동안 집 없이 떠돌며 살았다고 한다.

유튜브에 나온 영상은 그가 4차선 도로 다리 밑에서 천막치고 살고 있을 때 촬영한 모습이다. 일용직으로 전전하면서 살다 지금은 나이가 들고 해서 외진 곳에서 자급자족하면서 혼자 산다고 한다.

10년 동안 공중화장실에서 살았다는 사람도 있다. 70대의 나이에 시장과 대형마트 화장실을 전전하며 그 안에서 숙식을 해결했다고 한다. 기가 막힌 것은 가족에 의해 실종 사망 처리되어 주민등록도 말소된 상태, 그녀의 신분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살아있는 유령인 셈이다.

이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많은 사연과 이유 때문에 선택인지 운명인지 모를 “은둔”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은둔이 이슈로 떠오른 이유는 나 역시 은둔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중이 "은둔"이라는 키워드를 떠오르게 한 것이리라.

이혼한 지 꽤 되었고 아이들은 독립해서 자기들 나름대로 살고 있다. 특별한 일이 아니면 형제들과 연락하는 일도 드물다. 사업 실패한 이후 대학 동기나 알고 지냈던 지인과의 연락을 모두 끊었다. 한동안 비정규직으로 일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채용하는 곳도 드물고 돈 쓸 일이 없다 보니 일할 필요성도 느껴지지 않는다. 연금만 가지고 생활한다.

주로 전자책과 낚시로 시간을 보낸다. 여행이라면 지금 살고 있는 거제도 한 바퀴 둘러보는게 전부다. 블로그가 세상과의 유일한 소통인 셈이다. 유튜브뿐만 아니라 블로그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 삶을 들여다본다. 마치 재래시장에서 펼쳐지는 5일장 구경하는 기분이다.

예전부터 시장 구경을 즐겼다. 잡다한 물건 구경하는 재미도 있지만, 활기찬 모습 때문이다. 그 속에 있으면 나도 덩달아 생기가 넘치는 기분이 들었다. 간식 먹으며 돌아다니면, 관광지가 따로 없다. 블로그를 구경하는 느낌도 그것과 비슷하다.


현실에서는 생판 모르는 사람과 잡담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 블로그에서는 그렇지 않다는 점이 매력이다. 나 또한 잡담이나 주접을 늘어놓을 수 있으니 소일거리로는 딱 그만인 셈이다.

그러나 잡담이라 하더라도 글을 쓸 때 정성을 들이려고 노력한다. 시간에 쫓기는 원고 쓰는 것도 아니고, 펑펑 남아도는 시간을 죽이는 것이 목적인데 대충 쓸 이유를 찾기 힘들다. 작가 서랍에 넣어 두고 천천히 몇 번이고 퇴고한다.

글을 쓸 때면 젊었을 때 수없이 떨어졌던 신춘문예 생각이 난다. 자료를 찾아보니 신춘문예 당선자에 50~60대가 심심찮게 보인다. 심지어 서울신문에 70대가 당선되었다는 기사도 있다. 70대면 나보다 10년 이상 더 낡으신 분이다.

그러나 써 봐서 알지만 문학은 그리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70대 나이에 당선된 그분은 괴물도 보통 괴물이 아니라 생각된다. 젊었을 때 데었던 휴유증 때문일까? 그 정도까지 펜 노동에 시달리고 싶지는 않다.


블로그에서 문학작품 수준의 글을 찾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는 식이지만, 가끔은 그런 기대를 가지고 검색해 볼 때가 있다. 브런치가 “작가 공간”이라는 취지를 내걸었기 때문이다.

그런 작품은 없지만, 대신 “휴머니즘”이 강하게 느껴지는 글들을 발견하게 된다. 난치병 투병일기를 쓰는 분들이다. 픽션이 아닌 논픽션이기에 그분들 글은 문학작품 이상의 드라마틱한 감동이 철자에서 뿜어져 나온다. 감동 드라마가 따로 없다. 읽는 내내 간장이 졸여지다 못해 타들어 간다.

예전에 “슬픈 영화”라는 타이틀을 건 영화를 몇 편 본 적이 있지만, 별로 슬프지 않기에 과장 광고한 것으로 느껴지곤 했다. 누구나 한 번쯤 읽어봤을 “베르테르의 슬픔”과 같은 식이다. 고등학교 때 읽었던 것으로 기억나는데, 전혀 슬픈 느낌이 안 들어서 슬픈 내용이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인지 책 첫 장부터 볼펜으로 줄 쳐가며 뒤져보기도 했다.


그러나 브런치 휴머니즘은 정말로 가슴 찢어지게 아프다. 희귀 난치병 있는 환자가 또 다른 희귀 난치병에 걸렸다면 눈물 나지 않을 독자가 있을까? 이중으로 난치병에 걸리는 경우는 처음 봤다고 의사가 말했다고 한다. 그 분은 “설마 그렇게까지 재수가 없을까? 했는데 진짜 그렇게까지 재수가 없었다. -강마루 작가-”고 썼다.

특히 내 딸과 연령이 비슷한 분(김소민 작가)이 쓴 글을 보면, 철딱서니 없는 내 딸도 은근 걱정되기도 한다. 난치병 걸리는 사람이 정해져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생활공간은 은둔이지만 감정만큼은 은둔이 아닌 삶을 살고 있다. 블로그를 통해서 많은 사람들과 감정을 나누고, 같이 슬퍼하고 같이 기뻐하기도 한다. 삶은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미식가가 먹는 것이나 노숙자가 먹는 것이나 나오는 배설물은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러나 인식이나 감정은 다르다.

“사람들은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욕심내서 정작 가지고 있는 것을 망치곤 한다. 지금 가지고 있는 것도 한때는 자신이 갖고 싶어 했던 것임을 잊지 마라. -에피쿠로스-”


브런치 휴머니즘을 읽고 나서 에피쿠로스 말이 황금처럼 느껴진다.

지금의 나 자신이 CRPS에 걸렸다가 완치된 사람이라고 생각해 보자. 여기서 무엇을 더 바라고 욕심을 내야 할까? 작가 두 분께 감사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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