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어과였던 내가 인도로 간 진짜 이유
너 어제 뉴스 봤어? 인도에서 팔다리가 8개인 아기가 태어났대
많은 사람에게 인도는 기상천외한 일들이 일어나는 '이상한 곳'에 불과했다. 팔다리가 8개인 아기부터,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살인 사건이 일어나는 곳이었다. 대부분이 '인도'를 주로 '해외토픽'감으로만 다루는 미디어로부터 나온 인식이었지만, 이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인도를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심지어 인도어과를 들어가기 전의 나조차도 '인도'는 그저 더럽고 이상한 곳이라고 생각했다. 경제 발전이 빠른 것도 그나마 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있어서일 뿐, 그 이상의 이유는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
인도어과에 입학한 후, 나는 비로소 인도에 관해 배우기 시작했다. 인도에 관해 전혀 모르던 나는, 인도의 영화인 '볼리우드' 영화를 통해 문화를 접했고, 전공 수업을 통해 언어와 사회를 배웠다. 그리고 미디어에서 보여주던, 그리고 내가 알고 있었던 인도는 상당히 한정된 모습이면서도 편향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인도에 관해 배운 나는 미디어에서 생산하던 인도를 향한 부정적인 시선에 의문을 갖기 시작했고, 이러한 인식에 변화를 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나는 사람들이 가진 인도의 편견에 '도전'하기로 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인도의 '진짜' 모습, 혹은 편향되지 않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조금이라도 인도에 관한 인식이 개선되는 방법을 고민했다. 고민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은 '유튜브'였다. 비록 그 당시에 내가 영상을 제작할 능력은 없었지만, '영상'이라는 매체가 가장 파급력 있고도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전달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영상을 통해 인도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준다면, 사람들이 가진 편견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문제는 '영상'을 어떠한 내용으로, 어떠한 곳에서, 그리고 어떠한 방식으로 제작하느냐였다.
때마침, 내 계획을 실현할 기회가 생겼다. 바로 '어학연수'였다. 우리 학과에서는 한 학기 동안 '힌디어'를 배우러 인도로 가는 어학연수 코스가 있었다. 사실 나는 처음에 인도에 갈 생각이 없었다. 내가 생각해왔던 꿈은 '기자'였고, 아무리 인도어과라고 하더라도 굳이 인도에 가서 힌디어를 배울 필요는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영상을 통해 인도에 대한 편견을 바꿔보겠다는 생각을 한 이후로, 인도에 직접 가보는 것은 꽤 괜찮은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 인도에 관한 영상을 제작하는 것보다도, 인도에 가서 사회와 문화를 직접 체험해보고, 현장에서 나오는 생생한 모습을 영상을 통해 보여주는 것이 더욱 효과적일 것이라 믿었다. 결국, 나는 곧바로 4개월간의 '어학연수'를 결정했다.
나는 델리대학교에서의 힌디어 연수와 영상 제작을 병행하기 시작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영상의 콘텐츠, 즉 '내용'이었다. 영상을 제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영상의 기술이나 연출 면에서는 많이 부족했지만, 부족한 부분을 알찬 내용으로 메꿀 수 있다고 생각했다. 먼저, '인도'에서만 찍을 수 있는, 혹은 '인도'에 있어야만 보여줄 수 있는 내용을 고민했다.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많은 사람이 가진 인도에 관한 의문이었다. 나는 인도가 정말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미개'한 나라인지와 같은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를 위한 해결책은 인도의 '사회'와 '문화'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영상을 제작하기 전에 나는 사전 조사를 철저히 하는 데에 주력했다. 예를 들어, '인도의 지하철 여성전용칸'에 관한 영상을 제작할 당시에는 각 나라의 여성전용칸 현황과 우리나라에서도 벌어졌던 '여성전용칸' 논란에 관해 다뤘다. 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이 자주 발생하고 여성 인권에 관한 인식이 상대적으로 낮은 인도가 '여성전용칸'을 도입하게 됐는지, 그리고 그것이 우리나라와 연관해 어떠한 의미를 가졌는지를 설명하기 위해 노력했다. 실제로 영상은 많은 사람이 시청했고, 인도가 여성의 낮은 인권과 수많은 여성 대상 범죄를 해결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고 있는지를 보여줄 수 있었다.
또한, 방문한 지역에 있어서도 그 지역의 역사와 어떠한 사회적 문화가 나타나고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보여주고자 노력했다. 파키스탄과 인도의 접경지인 '와가 보더'에서는 우리나라처럼 단순히 삼엄한 대치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국기하강식을 중심으로 양 국가의 의식이 치러지는 곳으로 유명하다. 실제로 인도인들을 포함해 많은 관광객이 찾는 관광 명소이기도 하다. 이 영상을 제작할 때에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대립, 그리고 와가보더의 역사 등에 다루고, 영상을 보는 사람들에게 이 국기 하강식이 단순히 재미있는 관광으로 소비되는 것이 아니라 양국의 극한 대립을 풀어내기 위한 일종의 '충격 완화' 방식이라는 것을 이해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특히, 많은 여행 관련 유튜버들이 보여주지 못하는, 비교적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는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노력했다. '카리 바올리'라는 곳은 우리가 커리 하면 흔히 생각하는 '향신료'를 파는 델리의 유명한 시장이다. 사실 이곳은 사람들이 여행이나 관광의 목적으로 찾기보다는 실제로 향신료를 구매하러 온 인도 현지인들이 많이 찾는 곳이다. 나조차도 '카리 바올리'라는 곳이 있는지 잘 알지 못했지만, 인도어과의 교수님으로부터 그러한 곳이 있다는 말씀을 들었고 그곳에 관한 영상을 제작해보면 좋겠다는 조언을 들었다. 나는 이에 관한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교수님의 자문을 받아 조사한 뒤, 직접 카리 바올리에 방문해 영상을 촬영했다.
영상을 제작하면서 한계를 실감했던 적이 있었다. 당시 나는 영상을 제작하는 능력이 지금보다 상대적으로 부족했고, 이로 인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있어도 이를 세련되게 전달할 수 있는 '도구'가 부족했다. 유튜브에 있는 영상의 조회 수는 생각보다 많이 나오지 않았고, 나는 이 영상 작업을 계속해도 되는가에 관한 고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 나는 인도에 왜 왔는지에 대한 목적을 떠올렸다. 물론 힌디어를 배우기 위한 목적도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영상을 통해 사람들의 생각을 조금이나마 바꿔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인도에 체류하면서 최대한 많은 영상을 제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나는 연수를 끝마치기까지 최대한 영상을 제작하기 위해 노력했고, 결국 4개월 동안 총 24편의 영상을 제작할 수 있었다.
지금 유튜브에 올라와 있는 내 영상을 직접 보면, 사실 자랑스러움보다는 부끄러움이 앞선다. 지금과 비교하면 현저히 낮은 영상 편집 실력, 그리고 부실한 내용이 먼저 보인다. '왜 저런 식으로 영상을 만들었지'라는 후회부터, '왜 내용을 더 깊이 있게 다루지 않았지'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나는 그러한 도전을 해봤다는 것 자체에 만족하고 있다. 이후로도 많은 사람이 인도에 관한 영상을 제작하고 있지만, 나는 단순히 인도를 여행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보다도 좀 더 깊이 있는 내용의 영상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했다. 영상으로 사람들의 생각을 직접 바꿔보겠다는, 어떻게 보면 '무모한 도전'이었지만, 이 도전은 훗날 내가 어떤 식으로든 발전하는 데에 분명히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